햇살지기
W. 익명
형이랑 싸웠다. 잘 싸우지 않는 우리가 간만에 고함을 겨뤘다. 열나게 따져봤자 이 모든 건 형 탓이 맞았다. 내가 뻔히 걱정할 걸 알면서 그런 결정을 하다니. 한국에 의사가 한둘이면 또 모른다.
“제비뽑기로 뽑혔다고 한 건 내가 사과하겠다고 했잖아.”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지민아.”
“왜 형이 가야만 하냐고 묻고 있는 거예요. 나는.”
종국엔 목소리도 덜덜 떨렸다. 형은 의사로서 짊어져야 할 기본적 책임을 다하고자 이런다고 했을 뿐이다. 내가 원하던 ‘가지 않겠다.’ 또는 ‘결정을 물리겠다.’라는 말은 돌아오지 않았다. 단출한 짐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서는 형을 배웅하지 않았다. 차의 시동 소리가 들리고서야 번복도 불가한 결정을 가장 응원해줘야 하는 옆 사람이 나임을 깨달았다. 형을 외치며 달려 나가는 동안 수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제껏 형은 내가 무얼 하든 그러라고만 하던 사람이었다.
“형!”
신발도 신지 않고 현관문을 박차고 뛰쳐나왔을 땐 이미 엔진소리가 사라진 뒤였다.
“다녀올게.”
차 문에 기댄 채 배웅을 기다리던 형은 내 얼굴을 보고서야 문고리를 당겼고 나는 형의 패딩을 당겼다. 겨울이 한창인 이른 아침이라 모든 게 시렸다. 서둘러 형을 끌어안았다.
“얼른 다녀올 거죠?”
“2주만 채우고 올 거야. 나도 겁난다니까?”
그러는 사람이 병원 전체 공지가 띄워지자마자 1등으로 자원했다는 걸 안다. 동거한 지 곧 1년째인 남자친구에게 상의조차 하지 않고 말이다. 같은 의사라지만 응급 상황이 생기면 우선 뛰어들고 보는 형의 결단력은 학생 때나 지금이나 적응하기 어려웠다.
“매일 전화해요. 꼭.”
“흠.”
“흠? 이게 부탁으로 들려요? 명령이거든요??”
눈을 뜨고 감을 때, 밥을 먹을 때, 내 생각이 날 때. 아무쪼록 시간 되는 대로 전화하라 잔소리했더니 형이 웃으며 내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날이 갈수록 박지민의 사랑이 엄청나서 김석진은 무지 부끄럽고 좋단다. 입을 맞추고 싶어 고갤 들었다.
“발 시려. 어서 들어가.”
파랗게 굳어가는 맨발을 내려다보는 형의 얼굴을 들어 올려 입술을 물었다. 우리가 입을 맞출 때면 형은 언제나 귀를 쑥스럽게 물들였다. 그러다 느지막이 눈을 감았다. 주택가 너머로 동이 뜨는 게 보이고 형이 온통 덜 익은 빨강으로 물들었다.
2주만 채우고 온다던 사람을 기다린 지 3주째가 되었다. 파트 특성상 형보단 내가 핸드폰을 붙잡고 늘어질 시간이 적었는데 이젠 그 반대였다. 평생 기회가 없었을 장거리 연애를 얼떨결에 하게 된 나는 수술실에 들어갈 때가 아니면 수시로 형을 찾았다. 전국구로 의사를 뽑아간 정황으로 미루어 보아 형이 있는 곳은 바쁠 게 자명한데도 말이다.
_도대체 메시지를 몇 개나 보내는 거야.
_형이 볼 때까지요.
_까딱하면 핸드폰 방전되겠다. 순전히 너 때문에!
그래서 지금 나한테 그러지 말라고 시비 거는 거냐고 매섭게 타자를 치는데 전화가 왔다. 발신인은 형이다. 삐진 척 좀 해주려고 3초쯤 텀을 두었다.
-내 전화를 감히 늦게 받아?
-저도 사정이라는 게 있어요.
-무슨 사정. 너 방금까지 나랑 카톡 했잖아.
-어? 형이 나를 의심해?
-그래. 의심해. 나보다 어리고 잘난 남자친구라 하루도 맘 편할 날이 없다!
삐진 척하려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형이 잘 하지 않던 내 칭찬을 마구 한다. 아마 약속했던 시간보다 더 오래 떠나있는 게 미안해서일 거다. 근무시간이 다르고 활동 반경이 겹치지 않더라도 우리는 항상 집이라는 공간에서 함께였는데 그것마저 제약이 걸려버렸다.
-형 얼굴 까먹었어.
-이 친구 기억력이 많이 상했네!
-셀카라도 보내줘요.
-보내면 맨날 이상하게 찍었다고 박제하면서 무슨.
-장난 아니고 진짜 진짜 까먹게 생겼다고요. 집에 언제 올 거예요.
-다음 주 내로 근무자 전원 교대한대. 형이 좀 유능해야 말이지. 소아과 닥터는 나밖에 없다고 어찌나 붙잡는지~
형은 소아과 전문의다. 어린 애들을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이 소아과를 고집하겠다 했을 땐 말리기도 했었다. 그러고 보면 나도 피를 싫어하는 외과 닥터였다. 피가 싫어서 suture 속도가 남다른 게 장점이라면 장점인.
근래 한국엔 원인을 알 수 없는 전염성 질환이 유행이었다. 위생 시설이 낙후된 환경은 주의가 요구된다고 WHO가 발표한 게 벌써 한 달 전 일이다. 바다와 하늘을 어떻게 건넜는진 모르겠지만 제일 커다란 감염원은 사람이 틀림없었다. 형은 그 바이러스 진원지에 자원해서 들어갔다. 내륙으로 연결된 몇 개의 다리를 제외하면 죄다 바다뿐인 그곳은 무서운 속도로 감염자가 늘어나고 있었다.
-나 가면 지민이가 해주는 밥이 먹고 싶은데.
-누가 해준대요?
-어어. 보인다. 김치찌개랑 스팸을 굽는 박 선생님이 보인다!
-우리 형 많이 피곤하구나?
발은 이미 주방으로 걷고 있는 주제에 괜히 한번 뻗대봤다. 스팸이 하나도 없어 마트에 들러야겠다고 생각을 하다 형에게 곧이곧대로 말하고 말았다. 위에 칸 말고 아래 칸 확인해보라는 소리에 찬장을 열었더니 4개나 쌓인 햄이 보인다.
-올해 설에 받은 거 아직도 남았지?
-이럴 때마다 형이 좀 똑똑하다는 생각을 해요.
-야. 나 의사거든?
-와. 나도 의산데. 이거 엄청 운명이다.
-뭐래. 언제적 작업이야.
-작업이라니. 요즘 애들은 그런 말 안 써요. 형.
약을 살살 올렸더니 형의 목소리가 한 톤 높아진다. 나이 먹는 건 너나 나나 마찬가지인데 해가 갈수록 이런 식으로 놀리기 있는 거냐고 역정을 내는데 잘 참던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열이 한껏 오른 형은 내 웃음소리에 아마 목도 빨갛게 달궜을 거다.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웃었다. 형 얼굴을 못 본 이래로 제일 즐거운 날이다.
-형.
-부르지 마.
-혀엉.
-뭐!
-얼른 와요.
머그잔부터 술잔까지. 형과 같이 고른 물건들로 가득한 선반을 보며 진심을 담아 말했다. 얼굴 절대 까먹을 리 없으니 얼른 돌아오기나 하라고. 몇 주간 고생해서 조금 못생겨졌어도 다 모르는 척 넘어가 줄 테니까 빨리 와서 같이 밥 먹자고. 화가 남지 않은 목소리가 보고 싶다고 속삭인다. 형의 숨소리 말고는 수화기 너머가 조용하다 못해 적막했다. 형이 어떤 일을 도우러 갔는지 막연한 불안이 생긴다. 국제적으로 급증하는 추세인 미지의 바이러스를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사람이 상대한다는 게 못마땅하다. 형이 말하던 의사로서의 기본적인 책임은 이기적으로 저버린 지 오래다.
-다음 주에 보자.
당장 돌아오라는 말은 하지 못한다. 박지민은 김석진의 저런 면에 단단히 코가 꿰였으니까. 면허도 따기 전인 대학생 시절부터 형은 이따금 명의처럼 굴었고 나는 그런 모습에 줄곧 가슴을 떨었다. 걱정도 고민도 많던 나는 형의 의사다운 행보를 반도 따르지 못했다. 외과 전문의가 된 것도 순전히 내 실력이 그것에 맞아서였다. 내 재주에 맞지 않는 어렵고 까다로운 파트는 장래로 고려하지조차 않았다. 하지만 형은 달랐다. 형은 언제나 어렵고 까다롭고. 옳은 것만을 골랐다.
-밥해주는 거 잊지 마.
컨디션이 안 좋아 일찍 퇴근하게 됐다는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다음 날 점심이 될 때까지 카톡이 없었다. 오후엔 병원에서 새로운 자원자를 모집한다는 문자가 왔다. 3일간 모집한다는 공고를 읽으며 혹 형이 불어난 욕심이 미안해서 내게 연락하지 못하나 했다. 굳이 해외에 갈 필요 없이 국내에서도 충분히 훌륭한 봉사를 할 수 있다고 설파하던 형의 목소리가 아른거린다. 만약 정말 그런 생각으로 내게 연락을 하지 않는 거라면 화는 나지만 조금은 기다려줘야 할 문제였다. 물론 이번엔 혼자 있을 수 없게 할 작정이었다. 불같이 화를 내며 뜯어말릴 거라 예상한 내가 흔쾌히 승낙하면 형이 어떤 표정이 될까. 더구나 예고도 없이 형이 일하는 곳에 들이닥치는 나를 만난 형의 얼굴은? 상상만으로도 너무 재밌고 좋아서 형의 무소식을 즐겼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모집 공고에 명시된 마지막 날 아침이 되자마자 형에게 전화했다. 전화가 꺼졌다는 안내를 듣자 뒤늦게 불안해졌다. 아무리 고민이 돼도 그렇지 하루에 한 번도 연락을 안 하는 건 너무하다고 장문의 카톡도 보냈다. 오전 수술이 밀려 바쁜 와중에도 계속 핸드폰을 확인했지만 답장은 없었다. 이상했다. 노골적으로 불안해하는 나를 형은 이런 식으로 대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일부러 전화를 하면 더 했지 절대 날 방치하는 사람이 아녔다.
<0**-***-1012>
형이 파견 나간 지역 번호로 전화가 왔다. 뒷번호는 요즘 모든 매체로 광고하다시피 하는 네 자리 숫자다. 특이 증상이 있으면 병원을 우선 찾지 말고 전화하라던 그 번호. 받아야 하는데 받고 싶지 않았다. 받아야 하는데. 이런 식으로 내게 기별을 넣는 형은 처음이라서 망설여졌다.
-여보세요?
-김석진 씨 동거인 되십니까.
-네?
-김석진 씨와 동거 중이신 박지민 씨 핸드폰 아닙니까.
-맞아요. 제가 박지민입니다.
이어지는 말이 한 문장을 넘어가자 귀가 먹먹하고 세상이 아득해졌다. 몇 번을 되물었는지 모른다. 여전히 귀에 들어오는 말이라곤 김석진과 박지민이라는 글자가 다였다.
-가족보다 박지민 씨에게 먼저 연락을 취해 달라 부탁하셨습니다.
-어떤, 어떤 연락 말씀하시는 거예요?
-김석진 씨가 금일 오전 6시 13분경에 사망하셨습니다.
-…예?
-정확한 사인은 부검을 해봐야 알겠지만, 유가족 동의가 있어야 하는 부분이라 당장은 설명해 드리기 어렵습니다.
-착오가 있으신 거 같아요. 저희 형 요즘 어디 의료 봉사 갔거든요? 아무래도 다른 김석진이랑 착각하신 거 같애요.
-92년 12월 4일. 김석진. 아닙니까.
-아녜요. 이름도 생일도 똑같은 사람인가 보죠. 다시 확인하고 전화해주실래요? 아니다. 제가 형한테 전화할게요. 아까부터 전화를 안 받아서,
-박지민 씨.
혼란스러운 마음인 건 십분 이해하지만 시신 처리 문제로 연락한 거니 속히 답변 바란다는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겼다. 점심시간이라고 어깨를 치며 지나가는 동기가 사색이 된 날 보고 무슨 일 있냐고 물었다. 석진 형이 죽었다고 전화를 받았는데 이건 당연히 실수일 거라고 말했더니 자기가 확인해보겠다고 그가 잠시 기다리란다. 의자에 앉지도 못한 채로 얼마간 기다리자 그가 탈의실로 돌아왔다.
“지민아. 형,”
“그치? 거기 실수지?”
“동명이인도 없더라.”
“…그래서?”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냐고 읊조렸다. 재차 어깨를 두들기는 손이 느껴졌다. 점심 먹으러 가자고 부르던 손길과 똑같았다. 소름이 돋아서 그 손을 쳐냈다. 슬프진 않았다. 슬플 일이 없었으니까. 망할 번호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담당자와 연결해드리겠다는 사무적인 목소리가 들리고 금방 통화를 했던 남자와 연결되었다.
-당신 어디 소속 누구야. 장난도 정도가 있지. 지금 나한테 무슨 짓 했는지 당신이 알아?
-저는 김석진 씨의 마지막 부탁을 따르는 것뿐입니다. 결정을 계속 미루시면 저희도 어쩔 수 없습니다. 유가족에게 결정권을 넘기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 결정. 유가족. 의사로서 몇 번 입 밖에 내본 적 있는 단어였다. 그런데 이토록 비현실적이라니. 직접 겪어보지 않았던 끔찍한 일을 하루아침에 겪게 된 내 꼴이 우스웠다. 전화기 안과 밖에서 날 부르는 소리가 계속됐지만 그 어떤 것도 결정할 수 없었다. 화장을 권고드린다는 말에 정신이 돌아왔다.
-아니요. 절대. 싫어요.
-시기가 시기인지라 그것 말고는 마땅한 절차가 없습니다.
-싫다고 했습니다.
주소지를 확인하는 목소리에 기계적으로 대답했다. 형이 쓰던 전부를 돌려받게 되었다.
몸도, 물건도.
국내 특송이라도 되는지 형이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왔다. 땅을 딛고서야 할 두발이 기다랗고 묵직한 상자 어딘가에 감춰져 보이지 않았다. 너무 보고 싶었다고 나를 끌어안아야 할 두 팔도. 청소는 도대체 언제 한 거냐고 잔소리해야 할 입술도. 시신 처리에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는 명함 한 장을 끝으로 형과 나만이 집에 남았다. 형은 집에 돌아왔고,
내 곁엔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
차마 상자를 열어볼 용기가 생기지 않아 옆에 쭈그리고 앉아 무릎에 고개를 묻었다. 그들이 형이라고 주장하는 시신의 얼굴을 확인해야 화를 내든 인정을 하든 할 텐데 조악한 잠금장치로 봉합된 상자를 나는 열 수 없었다. 일어난 지 12시간이 넘었는데 카페인을 입에 대지도 않은 거치곤 몸 상태가 좋았다. 잠은 오지 않았다. 어깨도 무겁지 않았다. 또다시 어깨를 두드리던 동기의 손길이 생각나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이 모든 게 현실이 아니어야만 했는데 어깨를 두들겼던 그의 행동이 너무나 평범해서. 그래서. 꿈이고 싶은데, 그걸 꿀 수 없었다.
형이 어떻게 죽었는지. 왜 죽었는지. 추측만 몇 개를 늘어놓던 무료한 목소리를 되감다 얼핏 잠이 들었다. 이딴 상황에서도 잠이 오는 내가 병신 같아서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목을 뒤로 젖히며 잠을 쫓다 뒤통수를 상자 뚜껑에 부딪쳤다. 연 기억이 없는 상자가 열려있었다. 허술한 자물쇠가 나무째로 뜯겨 나갔다. 누가 그랬는지에 대한 공포보다 그 안에 형이 진짜 누워있으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컸다. 전신이 벌벌 떨리고 숨이 모자라 가슴이 뛰었다. 비척거리며 일어나 사람이 겨우 빠져나올 만큼 비스듬히 열린 틈을 들여다보았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커다랗게 숨을 뱉으며 뚜껑을 집어 들어 상자를 마저 다 열었다. 역시나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애초에 형은 이 안에 들어있지 않았던 거다.
'삐걱.'
목조 주택인 형과 나의 집은 지하 1층과 지상 2층을 더한 3층 건물이었다. 노후하진 않았지만 나무집의 특성상 계단을 오르내릴 때면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곤 했다. 우리는 개도 고양이도 키우지 않았다. 하물며 입양한 아이도 없거니와 함께 사는 다른 가족은 더더욱 없었다. 계단을 삐걱거리게 만든 범인은 생판 남이란 얘기였다. 집주인이 곤히 자는 틈을 타 빈집털이라도 할 속셈인가. 어떤 연유로 빈 상자를 뜯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열어준 건 나로선 고마웠다. 형은 상자 안에 없었다. 내가 그리던 움직이지 않는 형은 그 안에 없었다. 모든 건 누군가의 착오였다.
소리를 감추지 않았던 침입자를 따라 나도 그냥 걸어 계단을 올랐다. 손엔 비닐도 까지 않은 야구 배트가 쥐어진 채였다. 휘두를 일이 없길 바라며 2층 복도에 오르자 형과 내가 썼던 침실 문이 열려있는 게 보였다. 다른 곳도 아닌 그곳을 골랐다는 사실이 불쾌함을 끌어올렸다. 며칠간 밀려있던 불안과 짜증이 배트를 쥔 손에 힘을 실었다.
“누구 있어요?”
들으라고 한 말이었다. 누가 있으면 알아서 기어 나오라는 경고였다. 안방에 딸린 화장실이나 드레스 룸을 확인할 필요도 없이 침입자가 어디서 매복하고 있는지 훤히 보였다. 침입 목적이 금전이 아닌 괴상한 것이었나 보다. 다른 데도 아닌 침대에 버젓이 누워있다니. 불룩 솟은 이불을 보며 이를 갈았다. 누구냐고 한 번 더 물으며 뛰듯 걸었다. 그새 잠들었을 리가 없는데 침대가 잠잠했다. 신경질적으로 이불을 걷으며 보다 강하게 소리를 지르려다 멈칫하고 말았다.
“…형?”
형이었다. 비스듬히 열려있던 상자의 문과 엉망으로 뜯겨있던 자물쇠가 떠오르고 이중으로 잠겨있던 현관문과 아무런 흔적도 없던 지하실의 뒷문이 차례로 떠올랐다. 바깥사람이 들어온 게 아니라면 안에 있던 누군가가 밟았기 때문에 계단이 삐걱거렸을 거다. 사망 통보를 들었던 형이 이런 식으로 내게 돌아올 줄은 몰랐다. 어깨를 흔들어 깨우려다 어쩌면 이쪽이 꿈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시작과 끝인지 알 수 없는 지독한 악몽. 많이 피곤했는지 형은 숨도 쉬지 않고 자고 있었다. 3일을 꼬박 새운 사람처럼 안색이 파리했다. 한참을 기다려도 숨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죽은 사람 같았다. 그렇지만 그는 형이 맞았다. 항상 그랬듯 두 손을 포개 뺨을 기대고 구부정하게 옆으로 돌아누워 자는 이 남자는, 정말 내 김석진이 맞았다.
조심스레 손목을 짚어 맥을 확인했다. 맥박이 잡히지 않았다. 몸은 아주 차가웠다. 숨소리도 없거니와 배가 부풀거나 코도 움직이지 않는다. 검지를 들어 콧김을 확인하고 손가락 두 개로 목덜미를 짚었다. 맥박도 자가 호흡도 없는 사망 혹은 심정지 상태였다. 눈꺼풀을 들춰 동공 반사도 확인해야 할까. 이 거지 같은 꿈을 깨려면 그게 최선일까.
“누구세요?”
자다 놀란 목소리로 형이 깼다. 곤히 자는 듯해 머리를 쓰다듬는다는 게 과한 행동이 되었다. 흑자는 정상이었으나 흰자가 조금 누렜다. 물기가 부족한 눈동자는 다소 뻑뻑해 보였다. 그래도 감겼다 뜨이자 잠깐 반짝였다. 침대 헤드로 형이 엉덩이 걸음을 걸어 도망친다. 손에 쥔 배트가 형을 겁먹게 했나 보다. 땅을 구르는 배트가 둔중한 소리를 낸다. 죽은 무언가가 쓰러지는 소리처럼 들려 소름이 끼쳤다.
“형. 나 지민이에요.”
혼란스러워하는 눈동자가 나를 관찰한다. 침대 옆 스탠드를 켰다. 불이 밝아 형이 눈을 왈칵 감는다. 형은 빛에 민감해 암막 커튼 없이는 잠을 자지 못했다. 내게서 도망친 거리만큼 형을 쫓았다. 팔을 붙잡자 차갑다는 느낌이 먼저 들었지만 무시했다. 어리둥절 해하는 형을 끌어안았다. 차가웠다.
“형. 얼른 올 거라면서. 누가 이제 오래요.”
“저기….”
“나 기다렸잖아. 아까는 어떤 이상한 사람이 전화 와서 형이 죽었다는 거예요. 내가 무슨 착오가 있는 거라고 그랬는데도 계속 그러는 거 있죠?”
편안히 안기지 못하는 형이 싫어서 더 꼭 끌어안았다. 마른 몸이 시리기까지 하자 더는 형이 나보다 큰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목에 코를 묻고 힘껏 숨을 들이켰다. 그리웠던 냄새가 나야 하는데 실습 때나 맡았던 죽은 몸의 냄새가 났다. 싫어서 숨을 참았다. 참고 참다가 못 견디고 결국 공기를 들이마시자 또다시 죽은 몸의 냄새가 피어났다.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일들의 연속이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냥 형을 끌어안고만 있었다. 부자연스럽던 팔이 어색하게 움직이더니 내 등을 마주 끌어안는다. 가만가만 내 뒤통수를 쓸어내리는 손이 형과 같으면서 달랐다.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앞이 일렁였다. 딱딱한 몸을 황급히 품에서 떼어냈다.
“나 1층에서 잘게요. 형 오랜만에 집에 온 거니까 침대 넓게 써요. 좋죠?”
대답은 듣지 않았다. 이게 꿈이라면 깨면 그만이었고 만약 현실이라면 영원히 자면 그만이었다. 도망치듯 방문을 나섰다. 나무 계단의 끔찍한 비명보다 내 꼴이 처참했다. 굴러떨어지기 좋은 속도로 계단을 내려왔다. 장시간 밤을 새우다 보면 불면이 몸에 배곤 했었기에 집엔 항상 약이 있었다. 베개와 이불이 놓인 거실 소파에 앉아 수면유도제를 한 움큼 입에 털어 넣었다. 죽을 정도의 양은 아니지만, 충분히 깊고 오래 잘만한 양이었다. 물컵을 입가에 대는데 조용히 계단을 내려온 형이 내 앞에 재등장했다.
“저….”
입을 열 수가 없어 눈만 들어 반응했더니 베개를 안은 그가 고개를 숙이며 난처해했다. 형은 베개를 중요시하는 사람이었고 집을 떠나 자야 한다면 반드시 챙겨 가곤 했었다. 지하실에 쌓인 짐 어딘가에 형의 베개가 있었다. 그가 부끄러워하며 끌어안고 있는 베개는 내 것이었다.
“같이 자고 싶어요.”
쓴맛이 우러나는 입을 휴지통에 뱉었다. 약에 비할 수 없이 현실이 썼다. 물컵을 단숨에 들이켜고 소파에 돌아눕자 그가 내 등에 엉겨 붙었다. 숨소리가 없어 잠이 들었는지 확실치 않았지만, 그는 아마도 눈을 감았을 거다. 집안의 유일한 온기인 내 등을 움켜쥔 채. 아니. 이 집구석에서 유일하게 살아있는 나를 붙잡은 채. 나도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땐 지금보다 뭐든 나아지길 바라면서. 형이 죽어 내가 미쳐버린 거라면 차라리 나았다. 제대로 죽지도 못한 형을 보는 게 내 환상이라면 그건 오직 나만의 괴로움으로 그치면 되는 일이었다.
꿈을 꿨다. 형이 죽었는데 다시 살아났다. 몸도 눈도 차갑고 숨조차 쉬지 않는 시체로 되살아나는 악몽이었다. 형은 날 기억하지 못했지만 내게 호의적으로 굴었다. 나는 그런 형에게 모질게 굴지 못했다. 형은 자주 하얗게 웃었고 내 속은 종종 까맣게 썩어갔다. 그러다 집에 누가 찾아왔고 형이 다시 죽게 되었다. 피는 보이지 않았다. 또다시 시체가 살아날 거라 생각했다. 근데 아무리 기다려도 형이 되살아나지 않았다. 그래서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앗.”
따듯한 옆자리를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나뿐인 소파는 바라지 않았다. 심장이 철렁했으나 형이 놀라는 목소리가 들려 금방 괜찮아졌다. 날카로운 금속이 바닥에 추락하는 굉음이 연달아 들렸다. 빠르지 않은 걸음으로 주방에 가자 형이 어쩔 줄 몰라 하며 오른손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손바닥이 크게 베여있었다.
“다쳤어요?”
“아, 괜찮습,”
팔을 너무 세게 당겨 그가 아픈 소리를 내는데도 나는 손바닥을 들여다보기 바빴다. 가로로 기다랗게 찢긴 상처에서는 피가 흐르지 않았다. 피부 안의 붉은 속살이 보이는데도 아무런 징조가 없었다. 그가 재차 괜찮다고 말하며 반대편 손으로 내 손을 붙잡았다. 형의 왼손등엔 내가 꿰맨 상처가 있었다. 응급실에서 술 취한 환자를 돌보다 얻은 영광의 상처였다. 소아과 닥터가 다 큰 어른에게 곤욕을 치렀다고 그는 유세를 떨었다. 그걸 꿰매면서 내가 얼마나 울었는지 다 알면서 최근까지도 우스운 자랑을 해댔다. 자고 일어나 단내가 나는 입안이 아프도록 쓰게 변했다.
“뭐하는 짓이에요?”
“네?”
“뭘 하면 이렇게 다치느냐는 말이에요.”
“그냥, 지민 씨한테 밥해주고 싶어서….”
형은 평생 나를 저렇게 부른 적이 없었다. 간밤에는 누구시냐고 놀라더니 하룻밤 새 내가 기억나기라도 했을까. 뭐든 부족한 기억력이었다. 그러니 나긋한 말투에 속아 내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알지 못하는 거다. 손이 덜덜 떨리고 가슴이 먹먹했다. 눈썹을 찌푸리자 드디어 그가 내 낌새를 눈치챈다. 영문도 모르고 미안하다고 하는 목소리가 터무니없이 작았다. 화를 삭이기 위해 눈을 감았다. 연달아 들리는 미안하다는 목소리가 직전보다 조금 커져 있었다. 형이 이유를 따지지 않고 내게 사과를 한다. 투덜거리는 목소리도 아니다. 이건 꿈이 아니다. 난 이미 그걸 알고 있었다.
형이 죽었다.
근데 다시 살아났다.
멀쩡한 건 아니었지만 형이 집으로 돌아왔다.
내게, 돌아왔다.
“울지 말아요… 내가 잘못했어요….”
체온이 식은 손이 내 뺨을 어른다. 축축한 눈가를 닦곤 어쩔 줄 몰라 발도 동동 구른다. 눈을 감아도 나무 바닥이 울리는 게 생생했다. 빈속이 쑤시고 신물이 올라와 눈시울이 더 뜨거워졌다. 형이 날 만지고 말을 하는데도 나는 형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형이 죽었다. 내 김석진이 죽었다. 꿈이면 깨고 싶었고 꿈이 아니라면 새로 꾸려고 해봤지만 잘되지 않았다. 눈을 떴다. 파란 기운이 짙어져 안색이 좋지 않은 형을 보자 도로 눈을 감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형이 죽었다.
“이거 꿈이에요?”
“…….”
“그럼 이거… 진짜예요? 진짜 형이야?”
그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나는 입으로 울었다. 애처럼 엉엉 울자 그가 날 끌어안아 달래기 시작했다. 죽은 몸의 냄새가 나를 감싼다. 맡기 싫은데 전신을 이용해 나를 끌어안는 그 때문에 안 맡을 수가 없었다. 바닥으로 추락하는 나를 따라 그가 무릎을 꿇었다. 아침 햇살을 받은 눈동자는 간밤보다 건강해 보였다. 누렜던 흰자가 아주 조금 맑게 개어있었다.
“형 죽었다면서. 나한테 관째로 돌아왔으면서.”
나만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뭉개진 호소였다. 근데 그가 다 알아들었다는 듯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차 문에 기대있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다.
“이게 뭐야. 나한테 왜 이래. 형 죽었잖아. 거짓말. 사실 다 꿈인 거죠. 그쵸.”
“…….”
“왜 대답 안 해요? 숨은 안 쉬어도 말은 했었잖아. 거짓말. 거짓말이잖아. 형이, 나한테 이러면 안 되잖아….”
“미안해요….”
“미안하다고 하지 마!!”
뺨을 매만지던 손이 흠칫 떨리더니 내게서 멀찍이 떨어진다. 다시 마주하게 된 오른손바닥의 상처는 붉은 속살이 더욱 벌어진 상태였다. 소금기 섞인 눈물을 마구잡이로 닦아낸 그의 손바닥이 햇살에 윤이 났다. 손목을 뺏듯 쥐어 손바닥에 입술을 묻었다. 형이 아닌 걸 아는데 형이라고 불렀다. 눈물은 짰고 피가 흐르지 않는 상처는 철 맛이 났다. 따끔하지도 않은지 그는 내게 손바닥을 내어주고만 있었다. 차차 눈물이 멎어갔다. 형이 죽었는데 나는 살아있었다.
“아프면 말해요.”
작게 끄덕이는 고개를 보며 바늘을 찔렀다. 리도카인 크림을 듬뿍 발랐다지만 아플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죽은 몸은 통증도 잊었는지 그는 태평하기만 했다. 피도 나지 않는 상처를 마치 출혈이 싫어 몸서리라도 치는 듯 엄청난 속도로 꿰맸다. 붉은 속살이 감춰지고 그가 신기해하며 손바닥을 몇 번 접었다 폈다. 왼손을 슬며시 붙잡자 그가 날 바라보았다. 눈을 마주치지 않고 왼손등의 상처를 쓸어내렸다. 간지러운지 그가 손가락을 움츠렸다. 약지의 반지가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내가 지민이라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
“냉장고 사진에 이름이 쓰여 있어서 알았어요.”
“…기억나는 건 뭐예요?”
대답하지 않아도 좋다고 그만 손을 놓으려는데 그가 내 손을 붙잡아왔다. 눈을 맞추자 그럴 리 없는 그의 뺨이 발갛게 달아올랐다는 환각이 보였다.
“당신을 그리워했다는 거요.”
“…….”
“나는 당신을 아주 보고 싶어 했고… 밥도 같이 먹고 싶어 했고….”
같은 침대를 쓰고 함께 잠이 들고 싶었다 말하는 그의 표정은 죽은 것의 생기로 치부하기엔 다소 과한 면이 있었다. 물도 마시지 않고 시원하게 운 건 잘한 일이었다. 눈시울이 뜨거웠으나 눈물은 곧장 쏟아지지 못했다. 입만 마르고 속은 쩍쩍 갈라졌다. 같이 밥 먹지 않겠냐고 묻는 그의 표정은 형의 얼굴로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데이트 신청이라도 하는 뉘앙스다. 고개를 끄덕이다 소파를 벗어나려는 그의 팔을 붙잡아 도로 자리에 앉혔다.
“돌아오면 내가 해주기로 했었어요.”
“아.”
“조금만 기다려요. 금방 하니까.”
김치찌개는 꽤 자주 만들어 먹던 메뉴였다. 그런데도 난 형이 그걸 먹자 했기 때문에 굳이 연습을 했었다. 냉장고에 붙은 사진을 봤다면 내가 여러 번 고쳐 쓴 레시피도 봤을 거다. 몇 주 전과 달리 나는 능숙하게 찌개를 끓일 수 있었다. 레시피를 버리지 않은 건 형이 돌아오면 내가 이만큼 형을 생각했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어서였다. 미리 썰어놓은 대파 봉지를 열자 눈이 매웠다. 그래서 눈물이 나왔다. 고작 내 이름 하나를 추억하게 된 그에게 나는 바라는 게 많았다. 형이 돌아오면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게 많았는데 나는 겨우 김치찌개를 끓이면서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연습했던 게 아무 소용이 없었다.
“햄 내가 잘라줄까요?”
흠씬 운 얼굴을 감출 새도 없이 아래 찬장을 열던 그가 날 보고 놀란 표정이 되었다. 알려준 적이 없는 햄의 위치를 그가 안다. 새 실밥이 생긴 오른손과 오래된 흉과 반지가 남은 왼손이 다시 나를 끌어안는다. 냄비가 다 탈 때까지 그의 품에서 울었다. 머리가 어지럽고 숨도 잘 쉬어지지 않도록 계속 울기만 했다. 얼마나 더 울어야 형이 내 형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할지 모르겠다.
“울지 마요. 지민 씨.”
“…….”
“…지민아.”
대답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부름에 눈물이 멈췄다. 그가 떠다 준 물을 마시고 햄이 전부인 아침이자 점심을 억지로 먹었다. 눈이 붓고 전신이 노곤해서 침대가 급했다. 커튼도 치지 않은 안방으로 그가 날 끌어다 침대에 눕혔다. 해가 높게 떠 햇살에 눈이 부셨다. 눈가를 살그미 쓸어내리는 손에 잠이 쏟아졌다. 햇살을 머금은 죽은 몸은 미지근하고 자애로웠다.
장판도 켜지 않고 자서 침대가 싸늘했다. 품에 안긴 형은 그와 비슷한 온도로 차가웠지만 잠이 깬 김에 더 꼭 끌어안았다. 사실 형은 움직이고 말을 한 적이 없는 게 아닐까. 모든 건 내 착각이자 환각이 아닐까. 그러나 맞잡은 그의 오른손엔 내가 새로 만든 흉터가 있었다. 영원히 뗄 수 없는 우둘투둘한 실밥. 차가운 손바닥. 다 죽지 못한 형.
물을 마시고 지하실로 내려가 컴퓨터를 켰다. 네이버를 점령한 괴이한 단어들을 모두 클릭해 기사를 훑었다.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시체가 살아났다는 얘기는 없었다. 금방 끝날 거라 예상했던 전염병은 팬데믹이란 타이틀이 붙어 거대해져 있었다. 범지구적으로 유행하는 질환에 다들 겁에 질려있었다. 나는 그가 두렵지 않았다. 여전히 형이 죽었다는 사실에 적응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지민 씨?”
불을 켜지 않아 그런지 그의 발이 굼떴다. 천천히 컴퓨터 근처로 걸어온 그는 나를 보자 안심한 얼굴이 되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형이 이런 식으로 날 찾은 적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반대인 상황은 많았다. 가끔 박지민은 김석진이 이유도 없이 필요하곤 했다. 형은 그럴 때마다 아무 말 없이 내 곁에 있어 주었다. 이미 곁에 있는 나를 형은 구태여 찾을 필요가 없었다.
“시간이 늦었는데 어디 갔나 했어요.”
“…왜요?”
“혼자는 무섭잖아요.”
시선을 내리자 약지의 반지가 번뜩이며 나를 노려보았다. 더 자고 싶지 않다고 고개를 저었는데도 그가 나를 떠나지 않았다. 용건이라도 있는 거냐고 물었다.
“딱히 그런 건 없지만,”
“그럼 나 잠깐 혼자 있게 해줄래요?”
혼자 있으면 무섭다고 말한 지 5분도 되지 않았는데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계단의 소음이 유난히 큰 밤이었다. 쥐 잡듯 인터넷을 뒤지고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근황을 물었다. 형이 죽었다는 사실은 소수의 사람만 알고 있는 비보였다. 이대로 그를 두면 되는 걸까.
악성코드가 감지된다는 알람을 무시하고 들어간 사이트에서 나와 비슷한 상황을 겪은 사람을 찾았다. 죽은 줄 알았던 동생이 살아서 돌아왔단다. 근데 너무나 죽은 게 맞아서 더 괴로웠다는 울분이 글에 담겨있었다. 결국 동생을 정말 죽게 했다는 문장이 마지막이었다.
목이 타는 거 같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1층에 다 오르기도 전에 계단에 걸터앉아 잠이 든 그를 발견했다. 가디건을 걸쳐도 추운 밤인데 그는 얇은 잠옷 차림이었다. 형 또한 너무나 죽은 게 맞았다. 더 괴로웠다는 말이 맞는 말이듯이. 하지만 나는 모질지 못했다. 체온으로 데워진 가디건을 벗어 형에게 둘러주었다. 그가 느릿하게 눈을 떴다. 깜빡 잠이 들었다고 놀란다. 밤새도록 도서관에서 버티던 우리 같았다.
“죽기 전 일은 기억이 나요?”
그가 고개를 저으며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오로지 기억이 나는 것은 박지민이라는 사람에 대한 조각들이 전부란다. 형이 바깥으로 티 내지 않았던 부분들을 그는 맹목적으로 따르고 있었다.
“형이랑 나는 대학교 때 처음 만났어요.”
자리에서 그를 일으켰다. 주방에 들러 물을 한잔 더 마시고 그의 손을 잡았다. 2층으로 가길 바라는 듯한 그의 몸짓을 무시하고 지하로 내려갔다. 책장에 꽂힌 졸업 앨범 두 권과 그간 다녔던 여행 사진들을 하나하나 보여주었다.
“나 형 쫓아다니다가 학고도 먹었었어요.”
“학고?”
“학사 경고요. 하마터면 의사 못 될 뻔했어요.”
“…….”
“근데 형이 의사 아니면 안 만날 거라고 그래서 죽어라 공부했었어요.”
손을 꼼지락대며 말을 고르는 그가 언젠가의 형처럼 보였다. 고백은 거절해놓고 내 앞을 떠나지 못하던 과거의 형이다.
“당신한테 남은 게 나밖에 없다면.”
형은 남은 게 나밖에 없었다. 심지어 형은 내가 직접 자신의 마지막을 결정하도록 했다.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결혼도 하지 못하는 우리가 연인과 동거인이라는 딱지로 서로의 죽음까지 감당해야 하는 현실이.
“내가 도와줄게요.”
뭘 돕겠다는 건지는 모르겠다. 꿰맨 살이 썩지 않게 잘 소독하겠다는 건지. 잠이 많은 그를 위해 침대를 언제든 내어주겠다는 건지. …걸어 다니는 시체라는 비밀을 세상에 감춰주겠다는 건지.
“대신 하나만 약속해줄래요?”
“…네.”
“다시는 멀리 가지 말아요.”
왼손 약지에서 반지를 빼내자 그가 슬픈 얼굴이 되었다. 몇 월 며칠에 우리가 이걸 맞췄는지 기억이나 할까. 쭈뼛대는 오른손을 끌어당겨 반지를 새로 끼워주었다. 오른손 약지는 왼손보다 조금 굵었다. 반지가 빠질 틈 없이 딱 맞았다.
“살아 돌아온 건 형이니까 다시는 어디 가지 말라구요. 너무 무리한 부탁이에요?”
눈을 내리떴어도 그가 고개를 힘차게 젓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부끄럼에 움츠렸던 손으로 깍지를 만드는 그는 파랗고 시렸다. 가만히 받아주고 있자 용기가 생겼는지 그가 내 왼손도 덩달아 깍지를 껴왔다. 형은 잔인했다. 죽어서도 나를 설레게 했다. 억울함에 고개를 드는데 서툰 입맞춤이 스쳤다.
“방법을 몰라서….”
무슨 방법인지는 묻지 않고 그저 스쳤던 입맞춤을 천천히 입술을 포개 새로 가르쳤다. 사람 체온에 미약하게나마 열이 솟은 손바닥이 느껴졌다. 보라색으로 굳어가는 입술이 녹길 바라며 오래도록 입을 맞췄다. 겉과 달리 안은 축축하고 보드라웠다. 젖은 소리가 나고 숨이 찰 리 없는 그가 먼저 고개를 피할 때까지 계속 입술을 비볐다. 죽은 뺨이 장밋빛 생기로 들끓었다. 환상도 환각도 아닌 진짜였다. 죽은 몸의 냄새가 옅어지자 형에 대한 그리움이 거꾸로 멈추었다.
제대로 된 역학조사를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형이 죽었던 환경을 고려해보자면 역시 신종 바이러스가 원인일 가능성이 컸다. 백신이 상용되기까지는 통상적으로 2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약이 개발된다 해도 그게 형을 되살리는 백신이 될지는 미지수였다. 의약품이 상용된다는 건 그만큼 다양한 케이스를 상대로 실험을 했다는 뜻이다. 동물에 이어 진짜 사람에게도 무조건 많이 써봐야 했다. 미지의 약이 대다수의 사람을 옳은 결말로 이끌 때까지.
“밖에 나가고 싶어요?”
“아니요.”
양옆으로 젓는 고개가 느릿했다. 시체는 부패하지 않았다. 다만 형은 눈에 띄는 속도로 몸이 굼떠지고 있었다. 모든 감각이 뒤처지기 시작한 그는 빛과 소리에만 유독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어쩌면 과거의 습관이 남아있는 거라 추측했다. 창밖을 내다보느라 정오의 햇살을 독식한 몸은 따듯했다. 품에 가득 끌어안았다. 해가 싫어 눈을 감았으면서 왜 매일 창 앞에 주저앉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커튼 쳐줄까요?”
“으응. 아녜요.”
“너무 밝아서 눈도 못 뜨잖아요.”
옆구리를 끌어안은 내게 표정을 숨기고자 그가 내 가슴에 얼굴을 감췄다. 뭐라고 말하는 거 같은데 가슴팍이 서늘해지기만 하고 문장이 들리질 않았다. 품에서 살짝 그를 떼어내 눈을 맞췄다.
“응?”
“그러면 지민 씨가 추우니까….”
“…….”
우리 집은 온돌이 없었고 형과 나는 라디에이터와 전기장판으로 겨울을 연명했다. 그러나 그가 내 곁에 온 후로 나는 모든 난방 기구를 쓰지 않고 있었다. 감각이 저하된 그가 혹 화상이라도 입을까 걱정됐던 게 먼저였다. 그다음은 죽은 몸에 대한 염려였다. 온도가 너무 따뜻해서 어딘가 짓무르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었다.
속이 들켜 뜨끔했다. 햇살에도 하얗게 질려있던 그가 귓가만 아주 조금 붉어진 모습으로 수줍게 웃었다. 죽은 살갗 대신 내 속이 썩은 내가 나고 있었다. 형이 있던 전처럼 행동하려고 했는데 그게 너무 어려웠다. 기온이 떨어지는 저녁에 맞춰 해가 지면 우리는 두꺼운 이불을 덮고 침대에 누웠다. 숨소리가 잦아들면 그는 조심스레 자리에 앉아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가 잔다고 하는 그의 행동을 나는 전부 다 알고 있었다. 그건 언젠가의 형을 쏙 빼닮아있었다.
*
마음을 고백해도 요지부동인 형을 보며 포기를 결심한 적이 있었다. 밀린 공부를 하다 도서관에서 죽은 듯이 졸았던 어느 날. 누가 날 만지는 손에 잠이 깼던 그 어느 날이 없었다면.
‘이러니 나 쫓아다니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누누이 말했던 건데.’
절대 나와 사귈 수 없다던 형이 나 몰래 옆자리에 앉아 내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밥은 먹고 다니는 건가. 집도 멀다면서….’
웃음이 나오려다 말아서 기침이 나왔다. 깬 걸 들킬까 놀랐는데 오히려 형은 이러다 감기 드는 거 아니냐고 걱정을 했다. 내가 깨어있다고 생각지 못한 눈치였다. 하긴 그랬다면 내게 이만치 다정하게 굴지 않았겠지.
‘누군들 네가 안 좋겠니.’
‘그럼 나 좋아요?’
‘깜짝아!’
‘형 그럼 나 좋아요?? 네???’
‘뭐야! 너 안 잤어?’
‘잤는데 형 때문에 깼어요. 근데 형도 나 좋아하는 거예요?’
그래서 형을 포기하지 않았다.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다지도 사랑스러운 사람을 포기하는 법을 나는 배운 적이 없었다. 그날부로 우리는 사귀게 되었다. 오로지 도서관에서만 데이트할 수 있다는 조건을 내걸고서. 형 덕분에 천정부지로 쌓아 올린 성적이 졸업 이후에도 그 옆에 머물 수 있도록 해주었다. 형이 없었다면. 형이 아니었다면. 박지민은 영영 형의 사람이 될 수 없었을 거다.
*
회상에 잠겨 낯빛이 어두워진 나를 보고 그가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첫날 이후로 나는 더 이상 울지 않았지만, 이따금 괴롭도록 쓸쓸한 얼굴을 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없는 눈물을 닦아주겠다는 태세로 나를 주시했다. 조금이라도 살아있는 티를 내려 노력하는 그를 안다. 해가 없으면 식을 대로 식어버리는 몸을 매일 이런 식으로 감춘다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데도 여태 모른 척했다. 알아채면 더 비참하니까. 근데 더는 외면할 수 없었다. 이런 면까지 너무나 형인 걸 알아버렸다. 형은 내게 정말 잔인하도록 다정했다.
“지민 씨?”
“…미안해요.”
“네?”
갑작스러운 사과에 그가 당황했다. 하지만 설명을 해줄 입은 부족했다. 해를 견디지 못하는 눈을 가려주고자 그를 더 커다랗게 품었다. 햇살이 닿지 않아 따듯하지 못한 그의 나머지, 그 전부를.
“안 따듯해도 괜찮아요. 나 안 추워요.”
“…….”
“그리고 밤마다 나 자는 거 기다리지 말아요.”
“…알고 있었어요?”
“그냥 같이 누워있어요. 꼭 안 자도 되니까.”
그를 깊이 끌어안은 채 머리칼에 입을 맞추자 햇살에 비벼진 먼지 냄새가 났다. 그저 죽은 몸의 냄새라 느껴졌던 그의 향기가 비로소 그냥 당신의 냄새가 되었다. 새로 만난 형. 다신 없을 형. 형처럼 굴지만, 절대 내 형이 아닌 형.
“내가 많이 좋아해요.”
“…….”
“진심이에요. 당신이 믿을지는 모르겠지만, 나….”
“믿어요.”
“…….”
“나는 나보다 지민 씨를 더 믿어요.”
만약 지민 씨가 아니라 자기가 날 쫓아다녔다고 알려줬어도 그걸 믿었을 거라고 그가 웃었다. 하루 온종일 우리의 과거를 추억하며 보냈는데 그가 그걸 전부 믿고 이해한다고 말한다. 먼저 기억해내지 못해 미안하다는 사과가 나릿하다. 또 잠이 오는지 그의 몸이 나른하게 풀린다. 점점 더 느려질 당신도 나는 안다. 아직은 아니지만 언젠가 정말 당신마저 나를 떠나게 된다면. 버티고 버티다 당신마저 내가 잃게 된다면. 비었던 상자가 결국 비지 않게 된다면. 그때는 망설이지 않고 따라가야지. 형이 뭐라 하든, 그래야지. 두 번이나 이걸 견딜 수는 없었다. 자신이 없었다. 두 번째 형마저 너무나 아끼게 된 나는. 그럴 자신이 없었다.
우리는 매일 침대에 올라가기 전 1층 소파에 앉아 라디오로 뉴스를 들었다. 날이 갈수록 바깥은 암울해졌다. 잃을 게 없는 나만이 온전했다. 생필품이 떨어질 걱정은 당분간 하지 않아도 괜찮아서 더 그랬다. 형을 죽이고 살린 바이러스가 더는 한 지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여럿이 죽고 살아났다. 마스크와 손 씻기. 공기 중에 뿌리는 소독약과 손에 바르는 소독제까지 연일 품절이었다. 그와 지겹도록 입을 맞추고 살갗을 비비는 내가 운이 좋은 케이스였다.
-백신 개발에 박차를 가한 영국이 현재 한국 정부에 공식 협조를 요청해왔으며,
‘똑똑똑.’
-…실험과 관련된 협의는 조만간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앞집 총각 안에 있나?”
간만에 듣는 다른 사람 목소리라 반응이 느렸다. 깜빡 졸고 있는 형을 품에 안은 채 대답을 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앞집 할머니인 듯했다. 이사 온 첫날부터 우리를 살갑게 맞아주던 분이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작년에 남편과 사별한 이후로 개를 키우고 있다는 사실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우리 집 개가 등이 찢어졌다. 총각, 의사라고 하지 않았나. 안에 있으면 좀 도와도.”
고민은 길었지만 뒤이은 행동은 빨랐다. 소파에 형을 눕히고 소리 없이 걸어 현관문을 열었다. 품에 개를 안은 할머니는 마지막 기억보다 왜소하고 꾀죄죄했다.
“할머니.”
“안에 있어 다행이다. 나는 집에 안 들여보내 줘도 된다. 우리 강생이만 좀 봐도. 내 이리 부탁하께.”
“제가 의사는 맞는데요, 개는….”
가로등에 불이 들어오지 않아 문을 더 열자 현관 센서 등이 할머니 품을 비추었다. 무언가에 물린 건지 등이 크게 찢어진 개는 신기하게도 출혈이 없었다. 마치 손바닥이 베였던 형처럼.
“…할머니. 얘 언제 다친 거예요?”
“이거는 오늘 난 게 맞다.”
“…….”
“이상한 짓은 안 해. 지금은 내가 약을 맥여놨다, 등만 쪼매 꼬매도.”
“…….”
“나도 얘 가면 갈 기다. 정말이다. 가기 전까진 같이 있고 싶어가. 의사 총각.”
소파에 누워 죽은 듯 자는 형을 보고도 할머니는 놀라지 않았다. 유일하게 남은 가족인 개에게 이미 경험한 듯한 모습이었다. 부엌 의자에 할머니를 앉히고 개는 식탁에 눕혀 등을 살폈다. 수의사도 아닌 내가 개의 상처를 꿰매도 되는지 의문이었지만 손을 닦고 바늘을 잡았다. 최대한 흉을 작게 만들기 위해 평소보다 뜸을 들여 상처를 꿰맸다. 장갑에 피가 묻었지만 그다지 싫지 않았다. 사람이 아니어서 그랬을까.
“참말로 고맙다.”
“할머니. 제가 말씀드리긴 좀 그렇지만, 만약 얘가 제대로 죽은 게 아니라면….”
“괜찮다. 뭔 일 나면 나도 죽는 게 다지 뭐.”
이틀에 한 번 상처에 뿌리라고 소독약을 챙겨드렸다. 현관을 나서는 할머니가 웃으며 고맙다고 쾌활히 말했다. 자기가 현관 바깥 등을 켜놓으면 아직 살아있는 거라고 알아달란다. 밥도 물도 넉넉하니 혹시 필요하면 제게 건너오라는 말도 한다.
“개 사료도 먹을 만 하데이.”
“네?”
“장난이다. 내도 아직 사람 밥 남았다. 껄껄.”
해도 가로등도 없는 저녁의 주택가를 할머니가 홀로 거닌다. 품에 안은 가족이 깨어났는지 그녀가 짧은 산책을 허락한다. 목줄 없는 산책이 평온하기 그지없다. 알던 길로만 가는 개를 할머니가 기특하다고 쓰다듬는다. 다 쉰 목소리로 개가 짖는다. 황량했던 주택가가 단란해진다. 장갑에 남은 핏물이 빨갛고 까맸다. 산소 함량이 모자란 죽은 혈액이었다. 그러나 담요에 쌓인 개는 따듯했고 할머니는 살아있었다.
형은 정오에 일어나 초저녁이 되면 잠을 잤다. 수면 시간이 늘어날수록 그의 행동과 감각이 무뎌졌다. 하지만 날 보는 눈빛은 살아있었다. 햇살을 쫓는 형을 이젠 내가 쫓았다. 둘이 가만히 해를 맞고 있노라면 아무것도 불안하지 않았다. 연신 입을 맞추고 종일 같이 웃었다. 함께 깨어있을 때면 집안엔 잔잔한 음악이 흘렀다. 형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듣는 것이라면 뭐든 좋아했다. 부끄럽다고 잘 불러주지 않던 노래를 하루에 한 번씩 귓가에 흥얼거려주었다. 그럴 때마다 발간 귀를 내 입술에 가까이 붙여오는 그가 귀여웠다. 오늘은 괜히 짓궂은 맘이 들어 실수인 척 그의 귓바퀴를 물었다. 그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로 자빠진다. 예상치 못한 큰 반응에 덩달아 놀라 그를 감싸다 나도 바닥에 쓰러졌다.
“안 다쳤어요?”
“아, 네, 아….”
“…….”
“안, 안 다쳤어요. 네.”
온통 빨개진 그는 처음이었다. 조금 다른 박자로 가슴이 두근거려 눈만 빠르게 감았다 떴다. 그는 제일 예민한 눈을 꼭 감고 새빨개진 귀를 손으로 감싸고 있었다. 차차 짙어지는 햇살 농도에 맞춰 그가 물들어갔다.
나 좀 보라고 말하는 대신 코끝을 마주 대고 잠시 뜸을 들이다 입을 맞추었다. 바들거리며 뻗어진 손이 내 어깨를 꾹 쥐며 단단해지기에 눈을 감았다. 사람의 체온이 너무 더운지 그는 내 손이 닿을 때마다 전신을 크게 떨었다. 내 심장 같았다.
“…사랑해요.”
조심스레 눈을 뜨는 그는 저문 해에 맞춘 잿빛이었다. 식어버린 몸과 딱딱하게 굳어가는 살결. 익숙해졌다 여긴 살 내음이 생소하게 다가왔다.
“나는, 저기… 나는요… 지민 씨가….”
생동이 넘치는 눈동자가 이리저리 도망을 친다. 어디서 기운이 샘솟았는지 그가 너무나 활기찼다. 맘이 이상했다. 상의를 들춰 배에 입술을 비비자 그가 겁을 집어먹은 숨소리를 냈다. 눈만 들어 싫냐고 물었다. 입술을 묻은 자리만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전부 스치고 핥아 그렇게 만들고만 싶었다.
시선을 길게 맞추던 그가 얼굴을 싸매며 비음을 흘렸다. 풀리지 않는 문제를 마주쳤을 때 형이 내던 소리였다. 하지만 이젠 그저 그가 곤란해서 내는 소리로 들렸다. 입술로 배를 더듬어 온 군데 입을 맞추었다. 긴장으로 오므렸던 그의 다리가 살그미 힘을 풀었다.
“지민 씨….”
“네.”
“방, 방법을, 내가, 몰라서….”
귀여운 짓만 골라 해대는 그를 더는 참을 수가 없어 속히 입술을 물며 내 혀를 구겨 넣었다. 등이 배길까 허리를 끌어안아 자리에 앉히자 그가 또 놀라 눈을 왈칵 감았다. 삼키지 않고 모조리 뱉어 웃었다. 미미하게 열기가 오르는 그가 신기하고 좋아서 가슴이 저렸다. 침대까지 갈 여유를 잃고 소파에 그를 내려놓자 다시금 눈이 마주쳤다. 숨이라도 찼는지 그의 눈이 물기가 어려 초롱초롱했다.
“천천히, 나, 처음이니까요….”
“…네.”
“조금 많이 서툰데 미안해요, 앗.”
형은 내가 처음이 아니었는데 그는 내가 처음이란다. 심장이 잔뜩 조여와 아팠다. 싫은 게 아니라 좋아서였다. 뭐든 내가 처음인 그가 좋았다. 사랑한다는 말을 했을 때, 사실 나는 반만 날 믿고 있었다. 나의 전부를 믿는다는 그에겐 미안하지만 나는 날 믿을 수가 없었다. 언제까지고 그에게서 형의 흔적을 찾을 나를 알았기에 그럴 수 없었다. 배려 없이 살을 물어뜯고 괴롭히는 나를 그가 나무라지 않는다. 아프지 않아 그러는 게 아니라 그저 내가 그랬기에 내버려 두는 것이다. 이기적인 나는 포기할 수 없는 게 또 생겨버렸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만들려는 그의 혀를 그럴 수 없도록 옭아매고 줄곧 놔주지 않았다. 그 말까지 들어버리면 무언가 돌이킬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조금만 더. 하루만 더. 단 몇 시간 만이라도 김석진을 잊은 죗값을 짊어질 수 있게.
멍이 맺힐 게 분명한 목덜미에 머리칼을 비비며 사과했다. 끝엔 졸음이 쏟아지는 그를 몰아붙여 눈도 감지 못하게 했다. 늦은 밤까지 이어진 행위에 나는 땀마저 흘렸다. 얼마 만에 느끼는 끈적끈적함인지 겨울이 무색할 정도였다. 거의 기절 직전인 얼굴로 나를 품에 안은 그는 괜찮다는 말만 했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맨가슴에 더운 숨을 뱉으며 입을 맞췄다. 간지럽다고 그가 웃자 나도 웃음이 나왔다.
평소보다 밤이 어두웠다. 깊은 잠에 빠져 소파에 누운 그를 한번 돌아보고 거실 창에 서서 밖을 둘러보았다. 몇 집 건너에 항상 보이던 노란불이 오늘은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의 집이었다. 2층 창문과 거실 창문에서도 빛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하루 깜빡했거나 다른 사정이 있을지도 모른다.
‘나도 얘 가면 갈 기다.’
‘뭔 일 나면 나도 죽는 게 다지 뭐.’
죽은 개가 정말 죽은 걸까. 그게 아니라면 할머니 신변에 지대한 문제가 생긴 걸까. 뭐든 가보지 않으면 풀리지 않을 의문이었다. 만약 개가 죽은 거라면 어떤 이유로 시체가 다시 죽은 건지 궁금했다. 뭔 일이 난 거라면 그 일이 우리에게 생기지 않는지도. 불이 하나 더 죽어버린 주택가는 어제보다 을씨년스럽기만 했다. 할머니를 걱정한답시고 이런 추측을 해대는 내 마음이 그런 거처럼.
“자고 있으면 다녀올게요.”
“위험하면 어떡해요? 가지 말아요.”
“괜찮아요. 우리 계속 창밖 봤잖아요. 여기 사람 거의 없을 거예요.”
현관문을 잠그는 법을 알려주기 위해 그를 깨워야만 했다. 잠에 취해 비몽사몽 하던 그는 내가 밖에 다녀오겠다고 하는 말을 듣자 자리에 벌떡 일어서며 잠을 이겨냈다. 안된다고 고개를 젓는 그를 포옹으로 무마시키며 고집스레 문고리를 잡았다.
“얼른 와요.”
“…얼른 다녀올게요. 나도 겁나요.”
“응. 얼른, 꼭 얼른.”
문밖에 서서 그가 문을 잠글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 크게 숨을 들이켜고 할머니 집을 향해 직선으로 걸었다. 손에는 야구 배트와 핸드폰이 있었다. 걷는 동안 간간이 불빛이 새어 나오는 집들이 보였고 커튼을 급히 닫는 손도 보였다. 문을 여는 소리나 누군가 다가오는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노크해도 답이 없어 문을 밀자 현관문이 쉽게 열렸다. 할머니를 부르며 발을 들여놓았는데도 이렇다 할 환대가 없었다. 핸드폰을 뒷주머니에 찔러 넣고 배트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할머니? 안에 안 계세요?”
‘끼잉….’
우리 집과 흡사한 집안 구조 덕에 개 소리가 어디서 나는지 단숨에 파악됐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몹시 어두웠으나 전등 스위치를 찾을 수가 없어 결국 도로 핸드폰을 손에 쥐어야 했다.
“할머니?”
‘낑, 끼잉….’
“여기 계세요, 할머니?”
낑낑대던 개의 가냘픈 울음소리가 성대를 사납게 긁자 흉포했다. 사람도 개도 배트를 휘두르고 싶지 않았지만, 손의 힘이 자연스레 강해졌다. 겨우 찾은 전등 스위치를 켜자 지하실 바닥에 쓰러진 할머니가 보였다.
“할머니!”
“왈!! 왈!!!”
내게 달려드는 개에 놀라 배트를 손에서 놓치고 말았다. 맹렬하게 달려오는 개를 손이나 발로 거둬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한데 아프지 않았다. 슬그머니 눈을 뜨자 내 신발 냄새를 맡은 그가 꼬리를 살랑거리고 있었다. 일전에 산책하는 그와 할머니를 마주친 적이 있었다. 되살아난 사람과 비등한 죽은 기억력이었다.
냉큼 할머니에게 달려가 상태를 살피자 어디에 부딪친 건지 머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호흡은 남아 있어 일단 근처에 보이는 천으로 그녀의 뒷머리를 눌렀다. 등을 커다랗게 꿰맨 개는 연신 우리 주변을 맴돌며 낑낑거렸다.
“아이고….”
“할머니!”
“이게 누고. 의사 총각 아인교.”
“무슨 일 있으셨어요? 어디 부딪쳐서….”
“아니다. 갑자기 웬 놈이 뛰쳐 들어와가 그 담부턴 내가 기억이 없다. 뒷문을 제대로 안 잠갔나 봐.”
“…….”
“오야. 우리 복실이도 놀랐나!”
적지 않은 나이에 피까지 흘려 기운이 없을 텐데도 할머니는 품에 달려드는 개를 소중히 안아 뺨을 비볐다. 그러다 어지럽다고 하시기에 서둘러 상처를 살폈다. 꿰맬 정도로 심하게 찢어지진 않았지만 당분간 소독과 약이 필요했다.
“후시딘이라도 바르고 계셔야 해요. 피는 거의 멎었어요.”
“살긴 살았나. 껄껄.”
“머리를 다치신 거라 뇌진탕이나 다른 증상이 있을 수도 있는데 여기서는 검사를 할 수 없으니….”
“괜찮다! 내 또 불 안 켜면 의사 총각이 이리 달려와 주겠구마!”
“할머니!”
“온 김에 감자 몇 알 갖고 가라. 내 혼자 먹기엔 양이 많다.”
그늘진 곳에 둬서 아직 싱싱하다고 말한 할머니가 자리에서 씩씩하게 일어났다. 구석진 곳을 둘러보던 그녀는 혀를 차며 눈에 잘 보이는 먹을 것들은 다 훔쳐 갔다고 탄식했다. 열심히 뒤진 건 아닌지 외진 곳에 쌓여있던 통조림이나 개 사료는 그대로였다.
“인심이 야박하다. 내가 저번에 바깥에 나가서 그런가. 아휴.”
순간 혼자 있을 형 생각이 났다. 개를 품에 안고 재회의 기쁨을 나누는 할머니에게 죄송하다고 말하며 계단 난간을 잡았다. 어여 가보라는 말에 다시 찾아오겠다고 소리치며 달렸다. 설마 이런 식으로 일이 생길 줄은 몰랐다. 생필품의 사재기가 늘었다는 말을 뼈에 새겼다.
“형!”
손이 떨려 문을 바로 열지 못했다. 잘 하지 않던 쌍욕을 지껄이며 겨우 문을 열고 안에 뛰어 들어가자 거실에서 날 기다리고 있을 거라 여겼던 형이 거기 없었다. 짧지 않은 거리를 달려와 숨이 찼지만, 형을 부르며 집안을 빨리 걸었다.
“형!!”
‘안 돼요!’
“형!!!!”
지하. 또 지하였다. 뒷머리를 얻어맞아 바닥에 쓰러진 할머니가 재생되고 연달아 형이 죽어버리는 장면이 반복됐다. 어두컴컴한 계단을 급히 뛰어 내려가다 넘어지고 말았다. 아프긴커녕 스스로 한심하기만 했다.
“지민 씨!”
심상찮은 발목 통증에 이를 악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작은 불이 켜진 지하에서 형은 뒷문 밖 누군가와 대치하고 있었다. 문을 억지로 열려고 하는지 형이 온몸으로 버티고 있다.
“누구야!”
“오. 뭐야. 진짜 다른 사람이 있잖아?”
걸걸한 남자 목소리였다. 할머니를 덮쳤다던 괴한일지도 몰랐다. 주변을 두리번거려 무기가 될 만한 것을 찾았으나 마뜩잖았다. 켠 지 오래된 벽난로의 부지깽이를 쥐었다. 손은 떨리지 않았다. 개도 때리지 못하던 내가 뒷문을 잡은 사람 손을 망설임 없이 휘갈겼다.
“악!”
“꺼져. 죽고 싶지 않으면.”
“이거 너무 하잖아~ 나는 아직 아무 짓도 안 했다고?”
“죽여 버릴 거야. 당장 손 떼.”
“이 새끼 무서운 놈이잖아?”
아프긴 했는지 손이 냉큼 문짝 밖으로 사라진다. 이중으로 문을 잠그고 근처 일인용 소파를 끌어다 앞을 틀어막았다. 많이 놀랐는지 형이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바닥에 주저앉는 그를 보며 카펫 위로 무기를 떨어트렸다.
“여긴 왜 내려온 거예요!!!”
“무슨 소리가 나길래….”
“내가 나 기다리라고 했잖아요. 형이 뭘 할 수 있다고 이런 데 내려와요?”
“미안,”
“또 내 눈앞에서 죽으려고 그랬어요?”
“…….”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뒤도 생각 안 하고 이런 짓을 할 수가 있어요?”
다 하고 보니 심한 말이었다. 폭력으로 과열된 호흡에 고함까지 질러 머리가 어지러웠다. 이마를 짚으며 자리에 주저앉자 그가 무릎으로 바닥을 걸어 소심하게 날 살폈다.
“지민 씨. 괜찮아요?”
“…….”
“미안해요. 내가 생각이 짧았어요. 그냥 어디 숨어있을 걸 그랬어요.”
“…….”
“여기에 당신이 소중히 하는 게 많아서… 지키고 싶었는데….”
또 내가 나쁜 놈이 된다. 이기적이고 인정머리 없는 박지민. 형은 내가 소중히 생각하는 김석진의 짐과 우리의 앨범과 갖가지 추억을 지키고자 했다고 말한다.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해 정당하게 의사 가운을 입은 나는 쓰러진 사람을 보고 놀라 달려들었을 뿐, 그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만약 할머니가 저절로 깨어나지 않았다면 개도 그녀도 그곳에 내버려 두고 형에게 달려왔을 거다. 먼 훗날 우리의 식량이 떨어진다면 할머니의 뒷머리를 치는 역할은 내가 될지도 몰랐다.
허겁지겁 형을 끌어안았다. 할머니의 새빨간 피가 묻은 손이 보기 싫어 주먹을 움켜쥐고 눈도 감았다. 나를 반가워하던 개를 괴물 보듯 했다. 사납게 짖고 달려들어 날 물어 죽이는 상상을 했다. 그러다 혼자 남겨진 형이 보였고 또다시 날 떠나는 형이 보였다.
“멀리 안 가기로 했잖아요.”
“…미안해요.”
“나 두고 어디 안 가기로 했잖아. 왜 나 아프게 해요. 왜.”
두 문장 가득 서러움을 토하고 나머지 말로는 내 잘못만 나열했다. 혼자 둬서 미안하다. 당신이 그거 싫어하는데 내가 또 그랬다. 항상 날 먼저 생각해주는 당신에 비해 나는 내 이기심만 채우느라 그걸 모른 척했다. 등을 쓸어내리는 손길이 애틋해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묵혀왔던 내 잘못도 모조리 고백하고야 말았다.
“당신이 미웠어요.”
“…….”
“형 대신 나한테 온 게 당신이라 밉고 싫었어요.”
“…….”
“근데 이젠 사랑해요. 너무, 너무 사랑해요. 당신이 필요해요.”
몇 년간 의사 김석진의 뒤만 쫓던 나는 실은 그런 직업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얘기도 했다. 피가 싫고 아픈 사람을 돌보는 매일이 싫었다고. 하지만 김석진의 옆을 지켜야하는 박지민은 그런 사람이어야 했다고. 소임을 다하기 위해 날 떠나는 형에게 싫은 소리를 하다 말 정도로 나는 나한테 자신이 없었다고.
“이젠 못 참겠어요. 당신한테는 그런 행동 못 하겠어요. 너무 무서워요. 또 내가 혼자가 될까 봐.”
“…지민 씨.”
“내가 다 잘못했어요. 이제 그러지 않을 테니까 제발, 다시는…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말아요….”
“…….”
“미안하다고도 하지 말아요…. 당신이 나한테 그럴 때마다 차라리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제발, 제발….”
몇 년간 묵혀왔던 속을 죄다 뒤집어엎었다. 그가 내 전부를 이해하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더는 속에 감춰둘 수 없어 토해내야만 했다. 거꾸로 몽땅 쏟아내고서야 숨이 다시 쉬어졌고 그의 냄새가 맡아졌다. 햇살이 없어 차갑게 식은 몸을 따라 서늘히 피어오르는 냄새. 그립던 형의 체취가 이젠 기억나지 않았다.
“할머니 집에 같이 가봐요.”
“싫어요.”
“하지만 할머니 다쳤다면서요. 도와드려야죠.”
“싫다고 했잖아요. 다시는 밖에 안 나갈 거예요.”
“지민 씨.”
형과 똑같은 얼굴이 엄한 눈을 한다. 학고를 먹었던 내게도 형은 저런 눈을 했었다. 형의 왼손등을 꿰매며 펑펑 우는 내게도. 형이 나 때문에 가족과 의절하게 됐다는 얘기를 듣고 이별을 말했을 때도 형은 날 저렇게 쳐다봤었다. 너무나 옳았던 형은 내게 가끔 엄하게 굴었다. 나는 그런 형이 어렵고 까다로웠다. 결국 그의 옳은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을 만큼.
“불도 켜놨는디 둘이 같이 왔나. 이거 내가 괜한 걱정을 끼쳤노.”
“…상처 제가 봐 드릴게요.”
“허허. 역시 의사 총각은 다르다. 심성이 곱상해.”
혹시 몰라 챙겨왔던 구급 약품들로 할머니의 상처를 돌보는 동안 형은 개를 안고 있었다. 본디 형은 사람보다 동물에 애정이 있는 사람이었다. 난생처음으로 개를 만난 그는 진실로 웃으며 신이나 있었다. 상처가 깊지 않아 간단한 소독과 드레싱만으로 처치가 끝났다.
“온 김에 같이 저녁도 먹고 뉴스도 듣고 가라.”
“…….”
“뭘 그리 멀뚱히 서 있노. 죄지은 사람마냥.”
“할머니, 사실 저….”
“떽. 의사 총각이 나 살렸다는 거 이 동네 사람들이 다 안다. 괜찮다.”
우리 복실이도 아는 걸 본인이 모르면 어떡하냐고 할머니에게 한 소리 들었다. 남이 해주는 밥이 몹시 낯설어 목구멍으로 아무것도 넘어가지 않았다. 내가 그러는 동안 형은 할머니의 장난에 개 사료를 한 알 집어먹고 눈이 동그래져 있었다.
“진짜 먹을 만 한데요?”
“그렇다니까! 원 속고만 살았나!”
“하하. 아니에요. 개를 키워본 적이 없어서 그래요~”
형은 본가에 아주 오랫동안 키운 개가 있었다. 언젠가 만취한 형이 그를 찾으며 크게 울었던 걸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다른 건 다 괜찮은데 우리 강아지 어떡하냐고 울며 내게 안겼었다. 그런데도 한사코 개 키우기를 거부한 건 또다시 이별을 겪는 게 두려워서였다. 내가 조금 더 형의 마음을 헤아려서 그를 설득했어야 했다. 개를 돌보며 나와의 시간을 줄일 그가 싫어서 하다 말았었다. 미안했다. 형의 가족에게도 그 개에게도. …형에게도.
-임상 시험의 발 빠른 진행을 위해 정부는 민간의 도움을 적극 수용하기로 했습니다. 군의관을 중심으로 전국구 임상 시험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참여 자격에 제한은 없으며 감염 여부에 상관없이 간단한 동의서 작성만으로도 연구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이게 뭔 소리고. 약을 그냥 준다는 거가?”
“그런가 봐요. 효력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복실이 등짝이 이제 다시 붙는다고?”
“…병이 낫는다면요.”
테이블 아래로 스치던 그의 오른손이 내 손을 붙잡아온다. 우둘투둘한 실밥이 만져지고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방긋 웃는 얼굴이 죽은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도 괜찮았다. 더는 날 속이지 않고 솔직해지기로 했다. 나는 그 어떤 도전도 실패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만 지내고 싶었다.
“뭐라구요?”
“나 그거 참여하고 싶어요.”
“…뭘 참여해요?”
“아까 뉴스에 나온 거요. 임상 시험한다는 거.”
“그걸 왜 당신이 해요?”
“당연히 낫고 싶어서 하는 거죠.”
말이 나오지 않았다. 집으로 걷는 내내 손을 꼼지락대며 무언가를 주저하던 그가 현관문을 잠그자마자 저런 소릴 해댔다. 정부가 백신 개발에 정식으로 착수한 지는 채 한 달도 되지 않았다. 다른 나라가 얼마나 많은 도움과 성공적 결과를 얻어냈는진 몰라도 상용되기엔 머나먼 약이었다.
“절대 안 돼요. 그러다 잘못되기라도 하면 그건 누가 책임져요?”
“그치만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거잖아요.”
“안된다고 했어요.”
“지민 씨.”
“도대체 왜 그러는 거예요!!!”
솔직해지겠다고 결심한 지 만 하루도 안 됐는데 이렇게 크게 터질 줄은 몰랐다.
“왜 자꾸 그래요. 뭐가 그렇게 불만족스러운 건데요. 뭐가 문제에요. 내가 싫어요? 그래요?”
“그게 아니라,”
“나는 이대로가 좋아요. 더 이상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했잖아요. 할머니한테 가서 웃고 떠들었음 됐지 뭘 더 바라는 건데요!”
“…당신에게 돌아가고 싶어서요.”
“…….”
“내가 아니라 진짜 당신에게 돌아가야 할 사람으로 그러고 싶어서요….”
순식간에 화가 식자 머리가 텅 비며 세상이 뒤틀렸다. 바닥에 쓰러지듯 주저앉으니 드디어 발목이 시큰거리며 아팠다. 바지 바깥으로 느껴질 만큼 부은 발목은 열이 나고 있었다. 역시 나는 의사가 되기엔 한참 모자란 놈이었다.
“이거 어떡해요. 지민 씨 많이 아파요? 지민 씨!”
“얼음 좀 가져다주세요.”
“네, 네!”
“그냥 가져오지 말고 비닐에 넣은 다음에 수건으로 싸서.”
부리나케 달려가는 그를 보며 거실 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헛웃음이 나왔다. 형이 내게 돌아올 거란 생각은 해본 적 없었다. 이미 죽어버린 형이 내게 다시 올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물며 임상 시험이 그렇게 성공적인 성과를 낼 리도 없었다.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바이러스를 무찌르는 백신이라니. 그런 게 개발됐다면 암암리에 소문이 돌았을 거다. 원래 그랬다. 일반인보다 우리는 조금 더 빨리 그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이렇게 하면 돼요? 네?”
“맞아요.”
“아파요?”
“괜찮아요. 가만히 있으면.”
“어떡해요. 이제 못 걸어요?”
“석진 씨.”
“네.”
“이건 시간이 지나면 나아요.”
“…….”
“뼈가 부러진 것도 아니니까 정말 괜찮아요, 나.”
안 그래도 찬 손이 더 파랗게 질리는 게 보기 싫어서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몸을 움직이자 다리가 흔들렸는지 발목이 욱신거리며 아팠다. 얼음을 뺏어 들며 양말을 벗었다. 바지는 붓기가 좀 가라앉으면 벗어야겠다.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는지 다 잊은 듯 그는 내 부상에 사색이 되어있었다.
“석진 씨.”
“…네.”
“괜찮아요.”
그가 곧 울 듯한 얼굴이 되었다. 코가 찡그려지고 입술이 튀어나왔다. 아이처럼 울상이 된 그에 괜스레 웃음이 나왔다. 나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게 실감 났다.
“약이라고 다 좋은 게 아니란 말이에요. 무슨 말인지 알아요?”
“…….”
“거짓말 아니고 나는 정말 지금이 좋아요. 이대로도 충분해요. 나중에 진짜 약이 만들어졌다고 하면 그때 가서 그걸 써도 되는 거잖아요. 원래 실험이라는 게,”
“그래도 하고 싶어요.”
“…….”
“하루라도 빨리 지민 씨가 웃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나는 그게 필요해요.”
얼음을 단단히 고쳐 쥐는 척 고개를 숙였다. 내가 그렇게 웃음에 박했나. 네가 좋다고, 사랑한다고. 필요하다고까지 고백했는데 그는 내 마음을 저 밑바닥까지 꿰고 있었다. 형이 돌아오면 안 좋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나 사랑하는 내 형이 내게, 돌아온다면.
“나쁜 말은 없었으니까 기회가 왔을 때 나는 도전해보고 싶어요.”
그러니까 지민 씨가 꼭 허락해줬으면 좋겠다는 말에 결국 안 된다고 하지 못했다. 형을 또 잃고 싶지 않았다. 이미 잃은 형을 다시 내게로 돌리는 방법은 위험 요소도 너무 많았다. 하지만 형이 그걸 원한다. 형을 실험 도구로 쓰는 건 싫다. 하지만 형이 그러고 싶어 한다. 형은 이제껏 옳았었고 나는 그걸 따르고 싶었다.
연일 이어진 방송에서 수없이 많은 참여자의 도움으로 연구에 굉장한 진척이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매일 더 나은 약이 개발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많은 참여를 바란다는 아나운서의 멘트는 다소 격앙되어 있었다.
-속보입니다. 바이러스의 중요 인자가 전세계에서 한국 최초로 채취됐다는 희소식입니다. 이는 백신 연구에 훌륭한 기여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자세한 소식은 OOO 기자가 전달해드리겠습니다.
산골도 아닌 우리 동네로 차례가 돌아오는 게 시일이 깨나 걸렸다. 감염자가 많은 지역부터 연구진이 돈다는 말이 있긴 했다. 하루 내내 뉴스를 틀어놓고 있었더니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았다. 하지만 그는 뭐든 소식을 듣고 싶어 했다. 작고 크게 기뻐하는 그를 보고 있노라면 앞으로도 그가 원하는 바를 내가 감히 말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내가 늦잠을 잤다. 발목의 붓기가 좋아졌다 싶었는데 밤새 통증이 심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봄이 다가오자 햇살은 더욱 따스해졌다. 장판을 켜지 않아도 아침이 되면 침대에 훈기가 감돌았다.
“석진 씨?”
옆자리가 비어 의아했다. 발목이 다친 이후로 그는 날 혼자 두는 일이 거의 없었다. 바깥이 소란스러웠다. 확성기 소리인지 듣기 싫은 목소리가 새삼스레 아침을 깨우고 있었다.
“아. 일어났어요?”
“어디 가요?”
외출복을 입은 석진이 밝게 웃으며 창밖을 가리켰다.
“밖에 왔어요. 약이요.”
“아.”
“지민 씨가 너무 곤히 자길래 나 혼자 얼른 다녀오려고 했죠!”
“같이 가요.”
정말 혼자 두고 갈까 두려워 침대에서 일어나다 다친 발로 바닥을 디뎠다. 아픈 소리를 내는 내게 그가 달려왔다. 날이 아무리 따듯해져도 여전히 그는 차가웠다. 하지만 더는 그게 불편하지 않았다. 허리를 감아 몸을 기댔다.
“겉옷만 입고 같이 나가요. 부축 좀 해줄래요?”
“알겠어요.”
“어떻게 혼자 갈 생각을 해요. 혼자 있는 거 싫다고 한 건 석진 씨잖아요.”
미안하다고 사과할 줄 알았는데 그는 내가 그 말을 하지 말라고 한 이후부터 절대 그 단어를 쓰지 않았다. 말없이 웃는 얼굴이 왜인지 슬퍼 보였다. 어디 멀리 가는 사람처럼. 차 문에 기댄 채 배웅을 기다리던 형도 저 정도로 쓸쓸해 보이진 않았었다.
난간과 그의 도움으로 계단을 내려오고 나서 잠깐 숨을 돌렸다. 한데 그가 날 소파에 앉히더니 홀로 현관 앞에 섰다.
“석진 씨?”
“나 사실 가기 싫어요.”
“…네?”
“약 맞기 싫어요.”
소파와 현관은 거리가 꽤 됐기 때문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크게 반문하자 그가 숙였던 고개를 들며 환히 웃었다.
“그거 맞으면 나 이제 또 다 까먹게 될까 봐. 조금 많이 무서워요.”
“…….”
“사실 나 지민 씨가 알려준 모든 게 너무 좋았거든요. 그래서, 좀 많이 무서운데….”
“…….”
“근데 지민 씨한테 그 사람이 필요하니까. 나 잠깐 참고 다녀올게요. 기다리고 있어요. 알겠죠?”
행동이 느려 문을 여는 게 더뎌 다행이었다. 아픈 다리를 아랑곳하지 않고 달린 덕분에 그의 외출을 막을 수 있었다. 딱딱한 손을 잡아 내리고 도로 문을 잠갔다. 햇살 한 줌 받지 못한 시린 등을 터질듯 꼭 끌어안았다.
“싫으면 하지 말아요.”
“…….”
“나 이대로도 괜찮다고 한 거 거짓말 아니에요. 진심이에요.”
“…하지만,”
“석진 씨 정말 나 두고 갈 거예요?”
“…….”
“형은 갔지만, 석진 씨는 안 그럴 거잖아요. 나랑 약속했잖아요. 기억하죠?”
얼굴을 마주 보지 않기에 그의 몸을 돌려 눈을 맞췄다. 그가 아무것도 남지 않은 표정으로 눈물을 흘린다. 어찌 보면 잔뜩 겁에 질려 보이기도 했다. 물을 흠뻑 머금은 눈동자가 벌벌 떨린다. 앙다문 입술은 짙은 보라색. 가벼이 입술을 맞대며 울지 말라고 속삭였다.
“지민 씨가, 너무, 너무 좋아요… 다시는 까먹기 싫을 만큼….”
“그래요. 까먹지 말아요. 나랑 계속 같이 있어요.”
“하지만 나는, 그 사람이 아닌데. 당신한테 제대로 해줄 수 있는 것도 없고, 나는….”
“석진 씨.”
“…….”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해요.”
“…….”
“나는 그걸 따를 거예요.”
다시 한번 그가 날 등진다면 나는 그를 보내주어야 했다. 더는 그에게 이기적이고 싶지 않았다. 그가 옳아서가 아니라 그냥 그가 원하는 걸 하게 해주고 싶었다. 내가 이제껏 누군가에게 그런 사랑을 받았던 것처럼.
내 입술을 피해 고개를 숙인 그가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눈물을 뚝뚝 흘린다. 물방울이 번진 손을 잡고 엉망으로 젖어가는 뺨에 입을 맞췄다. 씩씩거리며 내뿜는 콧김이 서러움 잔뜩이다. 임상 시험이 전국구로 시작된 지 며칠이 지났다. 그가 얼마나 혼자 속을 썩이며 고민을 했을까.
“미안해요. 울지 마요.”
“무서워요. 지민 씨랑 헤어지기 너무 무서워요.”
“…헤어지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나 이러다 죽으면 어떡해요? 영영 잠이 들면요? 그래서 지민 씨 못 보면? 해가 떠도 눈이 안 떠지면 나는 이제….”
“내가 옆에서 같이 자줄게요. 당신이 깰 때까지 기다릴 거야.”
“…그럼 내가 손끝 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눈만 뜨면요? 너무 느려 터져서 지민 씨가 밥도 먹이고 얼굴도 씻기고,”
“너무 좋아요. 석진 씨 이제 나 없이 못 살겠다, 그쵸.”
“…지민 씨.”
“네, 석진 씨.”
슬픔에 잠긴 파란 얼굴이 드디어 들리고 그가 내 목을 끌어안으며 날 품는다. 뒤로 밀려 발목이 삐끗했지만 아픈 티는 내지 않았다. 허리를 마주 끌어안아 한 치의 틈도 없이 그를 받아들였다. 영원히 해가 지고 그가 다시는 따듯해지지 않는다고 해도 괜찮았다. 내가 그를 끌어안으면 우리는 지금처럼 곧 따듯해질 테니까.
“사랑해요.”
“나도 사랑해요.”
“지민 씨랑 계속 같이 있고 싶어요.”
“나도,”
“그 사람한테는 정말 죄송하고 미안하지만 나도 지민 씨를 많이 좋아해요. 나, 이제 혼자는 싫어요.”
“나도 혼자는 싫어요.”
한동안 서로를 품었다. 문밖에 어떤 기적이 펼쳐지든 지금 우리에겐 그 어떤 것도 대단하지 않았다. 눈물범벅인 그의 얼굴을 닦아주기 위해 소파로 걸었다. 아주 느린 그의 걸음에 속도를 맞추자 다친 발목에도 무리가 가지 않았다. 그게 좋아서 웃음이 났다. 이런 것마저 나한테 딱 맞는 사람이었다.
경과를 지켜보는지 정오가 됐는데도 연구진들이 동네를 뜨지 않았다. 그와 나는 창문 근처에 앉아 바깥 구경에 열심이었다. 할머니의 복실이가 어떤 결과를 얻게 될지 궁금했다. 인파에 휩쓸린 그녀를 놓쳤을까 싶어 미리 아쉬워하고 있었다.
“어! 할머니다!”
“어디?”
“저기 문밖으로 나오고 계세요!”
“정말이네. 우리 안 놓쳤다.”
해가 떠 있을 때 하는 산책이 오랜만인지 복실이는 몹시 들떠 보였다. 그에 못지않게 할머니 또한 한껏 멋을 부린 모습이었다. 복실이의 빨간 하네스와 할머니의 붉은 스카프가 아주 잘 어울렸다. 최고의 단짝처럼 보였다.
감염된 반려동물에게 약 주길 꺼리던 연구진은 할머니의 땍땍거림을 이기지 못했다. 복실이는 엉덩이에 주사를 맞고 크게 깽깽거렸다. 너무 아프게 놓은 것 아니냐는 고함이 내 귀에도 들렸다. 석진과 마주 보며 웃었다. 모든 게 평화로웠다.
“어?”
이상을 먼저 느낀 건 석진이었다. 청력이 보통인 내겐 아무런 것도 잡히지 않았다. 심상찮은 상황이 발생했는지 그의 표정이 심각했다.
“왜요?”
“복실이가, 어….”
“…무슨 일 생겼어요?”
그가 대답하기 전 나는 재차 연구진에게 달려드는 할머니를 목격했다. 그녀의 품에 안겨있던 개가, 방금까지만 해도 살아있던 그녀의 가족이.
“석진 씨 눈 감아요.”
“…….”
“바깥소리 듣지 말아요. 아무것도.”
눈을 감고 귀를 막는 그를 보며 커튼을 쳤다. 한 번 더 그의 귀를 감싸며 되레 내 귀는 세웠다. 할머니의 울분 섞인 고함이 쩌렁쩌렁했다. 복실이가 정말 죽었다. 축 늘어진 몸은 보통 시력인 내게도 잘만 보이는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사람과 개는 구조가 다르니 약의 용량이 문제였던 건지, 아니면 다른 어떤 게 문제였던 건지. 아무튼 약이 그에게 맞지 않았다. 최악의 결과가 도출됐다.
“지민 씨.”
“…네.”
“다들 괜찮을까요? 혹시 사람도 그러면 어떡해요? 이대로,”
“괜찮아요. 아무 걱정 말아요.”
“…….”
“나 믿는다고 했죠? 그럼 계속 믿어요. 우리는 아무 문제 없어요.”
또 다른 연구를 위해 복실이의 시신마저 앗아갔는지 할머니의 울음이 커지기만 했다. 동네에 있던 다른 주민들도 무슨 일인가 싶어 바깥을 살피느라 동네가 시끄러웠다. 연구진을 태운 차량에 서둘러 시동이 걸렸다.
백신이 상용되기까지 통상적으로 2년이 걸린다는 수치가 지금 이 상황에서 제일 믿을만한 정보였다. 만일 그가 저 약을 맞고 우리가 이 상황을 목도했다면? 이루 말할 수 없는 끔찍한 심정이 되었다. 그가 현관 앞에서 솔직해져서 -형에게 이기적으로 굴어주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나는. 또다시. 내 사람을 잃어야 했을지도 몰랐다.
“지민 씨….”
“우리 오늘은 일찍 잘까요? 아니면 그냥 침대에 누워있다든지. 어때요?”
잘게 고개를 끄덕이는 그와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로 향했다. 앞으로 어떤 소문이 퍼져 세간이 시끄러울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감염자와 비감염자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 실험이 될지도 알 수 없었다.
“할머니는 어떡해요?”
“…….”
“할머니….”
“조금 이따가 같이 가봐요. 머리 상처도 봐 드릴 겸 해서.”
개가 자길 떠나면 자기도 뒤를 따를 거라던 할머니의 말은 나만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예전 형이었다면 당장 그녀의 안위를 위해 달려 나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의사다운 행보를 뒤쫓는 건 진즉에 포기했다. 내가 포기하지 않은 건 이제 그가 유일했다. 그렇게나 사랑했던 김석진도 나는 포기했다. 내 품의 또 다른 김석진을 위해서.
“얼른 자요.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지민 씨도 잠 와요?”
“조금요. 석진 씨가 하도 잘 자니까 나까지 잠이 오네?”
“뭐야.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여기 있잖아요.”
살금살금 입을 맞추고 머리를 쓰다듬자 얼마 안 가 그가 잠이 들었다. 졸음이랄 게 없는 청명한 정신인 나는 열심히 머리를 굴리는 중이었다. 할머니의 상태가 어떤지, 언제 그녀를 찾아 마음을 써드릴지에 대한 궁리가 아니다.
“석진 씨는 이대로 있으면 돼요.”
곧 떨어질 식료품과 장기전에 부적합한 소지품들을 추린다. 할머니에게 가긴 해야겠다. 그가 자는 동안 아주 조용히. 실의에 빠진 그녀가 내게 무엇을 내놓을지는 미지수였지만 최소한 방금 겪었던 일에 대해서는 들을 수 있을 터였다.
“자고 있어요. 내가 얼른 다녀올게요.”
야구 배트 대신 부지깽이를 쥐고 밖을 나섰다. 돌아오는 길엔 나름의 수확이 있길 바랐다. 바깥의 소란은 모두가 봤을 테고 나보다 이성적으로 구는 사람은 이곳엔 없을 것이다. 노크를 하고 초인종을 눌렀다. 답이 없길 바라면서. 그리고 문이 잠겨있지 않길 바라면서.
“할머니?”
침입자에게 달려들 개조차 없는 집의 문을 열었다. 길게 잡아 2년 동안만 이러면 되는 거다. 아마 상황은 더 빨리 나아질 것이다. 사람은 장기전에 능숙하지 않았다. 형을 쫓던 나도 1년이 한계였다.
“의사 총각?”
“아. 할머니!”
“이게 무슨 일이고. 이게….”
할머니는 아직 살아계셨다. 석진 씨가 울 일은 줄어들었고, 나는 할 일이 조금 늘었다. 이제 어떡할지 새로 생각해보기로 한다. 할머니가 내게 무얼 주는지. 제일 소중하다고 했던 무언가를 잃은 그녀가 내게 어떤 정보를 주는지.
“같이 사는 총각은 괜찮나?”
“…네. 석진 씨는 아직.”
“그래. 다행이다. 다행이야.”
그녀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석진 씨가 아니었어도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라는 평을 할 수 있을 만큼. 마지막 식구를 잃으면 곧 뒤를 따라가겠다던 할머니가 언제 그렇게 할지. 아니면 그러지 않을지. 만일 석진이 그녀를 몹시 안타깝게 여겨 계속 마음을 쓴다면 다른 각도로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복실이의 뒤를 따르겠다는 말을 본인이 실행할 의무는 없었다. 하지만 일단 기다리기로 한다. 1년도 참았었으니까 며칠 또는 몇 주는 그럴 수 있어야 했다. 석진 씨에게 너무 빨리 전부를 알리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예요? 복실이는….”
형이 죽었을 때를 생각했다. 가슴이 미어지고 눈가가 뜨거워졌다. 눈물을 참는 거처럼 보였을까. 할머니는 날 보더니 흘리던 눈물을 굳세게 닦았다. 사내자식이 이런 일로 왜 우느냐는 소리도 했다. 역시 할머니는 좋은 사람이었다. 망자의 뒤를 따르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을 정도로.
“연구원들이 뭐래요? 근데 복실이는요?? 다… 데리고 간 거예요?”
부지깽이를 내려놓았다. 나는 할머니를 해치지 않을 거다. 들을 얘기도 있고 수요가 요긴한 물건도 천지였다. 여차하면 개 사료도 좋았다. 할머니의 얘기를 들으며 집안 곳곳을 살폈다. 석진 씨가 좋아할 만한 장난감이 여러 개 보였다. 뭐든 처음인 그는 앞으로도 즐거울 일이 많아야만 했다. 김석진 중심의 박지민은 이기적이지 않았다. 그를 위해서면 뭐든 할 거니까. 제한적 이타주의. 날 위해서가 아니라, 그를 위해서. 그러니까 다 괜찮았다. 더는 죄의식에 시달릴 염려가 없었다. 너무 사랑해서 이러는 것뿐이다. 다시는 그를 잃고 싶지 않았다. 나도 그도, 서로가 전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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