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썸머 하프 데쓰

w. 비젼

처음에 반쯤 죽은 그것이 나타났을 때는 정말 끔찍했다. 시내에서 사람이 몰려있는 것처럼 거의 모든 곳에서 돌아다니고 있었고 피해다니느라 소리 지르기 바빴으니 초반에 제일 급속도로 피해자가 늘었다. 지금은 대처 방법도 알고 절반 이상으로 줄어 골목 같은 곳에 가끔, 또는 버려진 도시에 있으니 현저히 줄었지만.

 

 

이렇게 수가 줄고,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고, 제도도 정비됐지만 이상하게 계속 수는 늘었고 몇인지 파악하기도 힘들어 사라질 기미는 보이지 않다는 게 문제였다.

 

 

그래서 그것을 죽이기 시작했으니. 좀비 킬러, 그것이 나의 직업이었다.

 

 

직업이 이런 만큼 나는 매일 좀비를 죽이러 밖에 나가는데 특히 좀비가 많고 사람이 적은 위험 구역에 자주 간다. 이 일을 하면서 제일 귀찮은 게 뭔지 아는가. 총을 되도록이면 쓰면 안 된다는 것? 아니다, 사람이 있으면 구해야 된다는 것.

 

 

그의 티셔츠 뒤쪽을 잡고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곧바로 칼로 머리를 찌르니 좀비는 쓰러졌다. 나한테 안기다시피 된 그의 시선이 느껴져 보니, 헤어진 이후로 본 적 없는 박지민이었다.

 

 

 

 

“너… 왜 여깄어?”

 

 

“굳이 얘기해 줘야 될 사이야?”

 

 

“허…”

 

 

 

 

그 반응을 보여야 될 건 나인데. 그때 지민의 손에 들린 형광 연두색 액체가 담긴 주사기가 눈에 띈다.

 

 

 

 

“이건 뭐야.”

 

 

“좀비 기절시키는 거.”

 

 

“구경해도 돼?”

 

 

 

 

지민은 자신의 집으로 나를 데려왔다. 아까 쌀쌀맞게 대하던 거랑은 천지 차이어서 당황스럽긴 했지만. 방 안 선반을 이상한 약물들이 가득히 메우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리면서 저게 뭐냐 묻자 하나씩 설명해주기 시작한다. 저건 사랑에 빠지게 하는 약, 저건 좀비 치료제, 저건 뭐… 아무튼 이상한 것들이었다.

 

 

 

 

“살래?”

 

 

“아니….”

 

 

 

 

솔직히 정부에다 신고할까 고민했다. 굳이 해야 되나 싶어 접었지만. 이후로 용액들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봤는데 잘 대답해 줬다.

 

 

 

 

“야, 여기 왜 이래?”

 

 

 

 

이제 보니까 오른손 약지가 없었다.

 

 

 

 

“좀비한테 물려서 그런 거야?”

 

 

 

 

지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온몸에 퍼지기 전에 잘랐을 터였다. 엄청 웃다가 그러게 왜 나대냐고 하고 나가니까 나갈 때 본 지민은 짜증 난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집에 가면서 생각해보니 우리가 헤어지기 전에는 킬러 짓도 불법 약물을 만드는 짓도 하지 않았는데, 좀비도 없을 때였는데, 어쩌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에 이 세상은 왜 이리 많이 변하고 우리도 왜 이렇게 변했을까.

 

 

 

 

 

 

 

 

 

 

 

 

일상은 계속되었다. 손에, 아니 온몸에 피를 묻히고, 계속 죽은 사람을 죽이는 일상이. 그리고 죽인 것들의 수를 보고하고 돈을 얻어낸다. 오늘 또 그를 만났다. 일상이 지겹지만은 않은가 보다. 그는 저번처럼 또 주사기를 꽂고 다니고 있었다.

 

 

 

 

“너 그러다가 진짜 물려 죽는다?”

 

 

 

 

지민이 반박하려는 듯 입을 땐 순간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렸다. 삐— 동시에 나는 소리에 불안감이 들었다. 내용을 확인하는 순간 표정이 굳어졌다.

 

 

 

 

“씨발.”

 

 

“하아.”

 

 

 

 

[A 도시 좀비 위험 구역에 대해 안내드립니다. 위험 구역 좀비 수가 급격히 늘어 오늘 12시부로 일시적 폐쇄하였습니다. 출입이 모두 제한되니 방문하고자 하는 시민 여러분과 나가고자 하는 시민 여러분께 양해 부탁드립니다. 얼마 전 B 도시의 경우에는 폐쇄를 함으로써 좀비의 확산을 막고 주민들도 모두 안전하게 보호되었습니다. 안심하시길 바랍니다.]

 

 

 

 

나도 그렇고 박지민도 그렇고 위험 구역에 사는 건 아니었지만 좀비가 많아서 각자의 목표로 자주 오가는 곳인데 이렇게 폐쇄가 될 줄이야 알았겠는가. 사람이 은근히 살긴 하지만 나가면 바로 보이는 게 좀비라 여기 사는 건 이사할 수 없는 처지인 게 대부분이다.

 

 

나야 다시 개방할 때까지 어떻게든 살겠지만 쟤는 주사기 꽂는 거 말곤 할 줄 아는 것도 칼 하나도 없는데 그냥 두고 가기에는 인간으로서의 도리가 어긋나기에.

 

 

 

 

“혼자 살 수 있어? 총이랑 칼 쓰는 법 알려줄게 이리 와봐.”

 

 

 

 

이것저것 꽂을 수 있는 허리띠에서 총 하나를 꺼내 적당한 거리의 좀비를 쐈다. 총알은 머리에 관통해 뇌가 터져 나왔다. 소리를 듣고 온 다른 좀비들은 칼로 죽였다. 그러고 박지민 쪽을 봤는데 헛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저런 반응을 보여줄 준 몰랐기에 당황스러웠다. 고개를 들어 나를 보는 표정이 진짜 토한 거 같은 핼쑥한 표정이었다. 괜찮냐 물었더니 고개는 끄덕인다. 하지만 괜찮아 보이지는 않아서 쉬게 놔뒀다. 잠시 뒤 진정이 된 거 같자 총 쏘는 걸 알려줬다. 지민에게 총을 쥐여주고 나는 뒤에서 자세를 잡아줬다. 백허그 같아서 약간 민망했지만.

 

 

 

 

“머리를 쏴. 근데 좀비는 청각 능력이 뛰어나서 조심해야 돼. 칼 쓰는 게 더 좋긴 하지.”

 

 

 

 

칼 쓰는 거까지 다 알려주고 나서 하나씩 죽은 좀비 머리를 베어 모아놓고 사진을 찍었다.

 

 

 

 

“뭐 하는 거야?”

 

 

“돈벌이.”

 

 

 

 

어느새 점점 어두워져 왔고 그러면 좀비가 더 많이 나오기에 불안해져 갔다. 특히 여기는 위험 구역이라 밤에 나가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좀비가 없는 실내를 찾아야 했다. 지민에게 다 설명하니 지인 집이 여기 있다고 가자고 했다. 지인은 지민의 이상한 그 약물을 사는 고객, 윤기였다. 만사 귀찮다 할 거 같으면서도 깐깐해 보였다. 처음에는 별로 반기지 않는 눈치였지만 밤에만 있겠다 하니 흔쾌히 수락했다. 그는 우리 둘을 손님방에 넣어놓고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총과 칼이 내 것밖에 없기도 하고 총알도 부족할 수 있겠다 싶어 내일은 센터에서 빌리기로 했다. 내가 좀비 킬러인 걸 알기도 하고 심지어 구역 폐쇄까지 되었으니 빌려줄 것이다.

 

 

다음날 이르지 않은 아침, 일어나자마자 아침을 먹고 센터로 갔다. 분명 원래라면 열려있을 텐데 잠겨 있었다. 아, 얘네 튀었네. 폐쇄한다 해놓고 본인들 쪽 직원이니까 다 내보낸 거다.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이럴 거면 주민들을 대피시키지 그랬어. 박지민도 나도 상황을 바로 눈치채고 한 마디씩 욕을 던졌다. 어떻게 열까 생각하다 몸을 부딪혔다. 그런데 될 리가. 비밀번호를 쳐야 열릴 수 있는 문이어서 뭐 흔한 0000 1234 이런 거하다 안 돼서 총을 쐈는데 생각보다 쉽게 부서져서 놀랐다. 맨날 센터 들어갈 때마다 봐서 익숙하게 총알과 제일 좋아 보이는 총과 칼을 빼왔다. 하나씩 지민에게 쥐여주고 나머지는 내 허리에 꽂았다.

 

 

이 동네는 다 낮은 건물에 큰 건물은 아예 없고 큰 도로도 거의 없어 골목길만 있다. 그래서 시야가 탁 트여 좀비를 맞추기 좋은 넓은 공터를 찾기 쉬웠다. 지민에게 어제 처음 쏴 보고 머리를 맞추는 건 힘드니 몸통부터 쏴보라고 했다. 예상대로 빗나갔다. 소리를 듣고 좀비는 더 빠르게 다가왔다.

 

 

 

 

“여차하면 내가 처리해 줄 게 겁먹지 말고 쏴.”

 

 

“…….”

 

 

“오.”

 

 

 

 

가슴 밑 부분을 맞췄다. 총을 맞은 좀비는 휘청이며 오는 속도가 느려졌다. 몇 번 더 쏴보더니 대부분 빗나갔지만 이내 머리를 맞췄다. 계속 들리는 총소리에 좀비들은 어느새 몰려오고 있었다.

 

 

 

 

“완전히 안 죽었을 수도 있으니까 입에 총대고 목 잘라. 좀비화되면서 피부가 썩었고 칼도 좋은 거라 잘 잘릴 거야.”

 

 

 

 

그리고 나는 다가오는 좀비들을 죽이러 갔다. 칼 하나 들고. 목 치고 배 찌르고 목 베고, 발로 차니 일어나려고 발버둥 치는 좀비를 가차 없이 목을 벴다. 그렇게 대여섯 개 정도 머리를 자르고 뒤돌아보니 역시 죽은 건 아니었는지 꿈틀거리자 입에 총을 쏘고 힘겹게 목을 잘라내는 지민이 보였다. 죽인 좀비 머리들을 들고 오며 넌 죽은 애 하나 머리 자를 동안 나는 이만큼 죽이고 왔다고 말했더니 유치하다며 왜 저러냐는 듯 쳐다봤다.

 

 

그런데 지민이 어제오늘로 많이 달라진 걸 보니 비위가 원체 나빴던 게 아니라 이런 걸 볼 일이 없어서 면역이 없었던 거뿐인 듯 아직 보기 힘들어하는 거 같아도 딱히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총도 어제 처음 쐈는데 잘 쏘는 것이 재능인 듯싶었다.

 

 

좀비 머리를 모아 놓고 또 다시 사진을 찍었다. 일단 여기서 살아나갈 수 있을 지가 문제였지만.

 

 

쉬자며 부서진 큰 콘크리트 조각 위에 앉았다. 이제 보니 부서진 이런 조각들과 굴착기가 있는 걸 봐서 집을 부신 것 같았다. 한 쪽에는 산처럼 콘크리트가 쌓여있는데 군데군데 널브러져 있는 것이 모으다가 만 것 같았다. 아마 공사 도중 좀비가 생긴 거겠지. 그래서 소리에 민감한 좀비이기에 공사를 할 수 없었고.

 

 

지민은 앞만 쳐다봤다. 나도 그랬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어쩌다 내가 이렇게 되었는지 생각했다. 그게 아마 박지민이랑 헤어지고부터였나?

 

 

 

 

 

 

 

 

 

 

 

 

여름이어서 일몰 시간이 늦었지만 슬슬 어두워지려해서 집으로 돌아갔다. 저녁은 이미 해두었더라. 제대로 된 밥을 먹는 건 오랜만이었다.

 

 

 

 

“식량이 셋이라 빨리 닳아서 내일은 음식도 구해줘요.”

 

 

 

 

마트 위치는 내일 아침 알려주겠다고 했다. 그러면 내일은 마트에서 음식을 구해다가 바로 집에 오는 걸로 했다.

 

 

어제는 너무 피곤해서 그런지 지민을 신경 쓸 틈도 없이 머리 대자마자 바로 잠들었는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잠이 안 왔다. 침대는 없고 이불 하나에 끝과 끝에서 누워있었다. 전 애인이랑 같이 자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나는 바깥쪽을 보고 박지민은 내 쪽을 보고 있었는데 그걸 생각 못 했다. 창문 앞이어서 창문 밖을 보다 뒤치락 거리며 몸을 돌려 눈을 뜨니 눈이 마주친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매번 그랬 듯이 뭐라 하고 싶었지만 순간 놀라서 얼굴이 홧홧하고 심장이 빠르게 뛰어서 할 수 없었다. 어두워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박지민이 이쪽으로 왔다. 당황해서 최대한 뒤로 가는데 이불이랑 창문이랑 애초에 가까이 있어서 갈 데가 없었다. 바로 코앞까지 와서 얼굴 앞에 앉았다.

 

 

 

 

“얼굴 빨개졌네?”

 

 

 

 

어두운데 어떻게 안 거지? 나는 아무리 그의 얼굴을 봐도 얼굴 색이 어떤 지 모르겠다. 지민은 허리를 숙여서 얼굴을 가까이 했다. 정말 얘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잘생겼다. 입술을 맞댈 걸 참고 있었다. 박지민이 그러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 무안하게 아무 일 없이 멀어졌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선 또 나갔다. 민윤기는 주변에 있는 마트들을 다 알려줬다. 숙식 값은 해줘야겠지 생각하고 군말 없이 나선다. 마트를 가는 길이 어색하다. 어제 일이 계속 생각나였다. 박지민도 어색한 듯 아무 말이 없었다. 어제 쟤는 왜 그랬고 나는 또 왜 반응했을까.

 

 

걸어서 5분도 채 안 되어서 있는 제일 가까운 마트는 좀비로 꽉 채워져 있었다. 누가 일부러 좀비를 가둬놓고 잠가놓은 듯하다. 멀지 않는 곳에 있는 슈퍼마켓은 이미 쓸어가 텅텅 비어있었다. 그다음으로 갈 수 있는 곳은 좀비가 득실거릴 대형 마트. 할 수 있어? 지민이 고개를 끄덕인다. 여기까지 오는 길에 좀비는 지민이 다 죽였다.

 

 

문 뒤 보이는 암흑에 좀비 소굴이겠구나 싶었다. 일단 폰 플래시를 켰다. 잘 안 보이기도 하고 눈앞에 보이는 좀비를 줄여야겠다 싶어 제어실 같은 곳을 먼저 찾아다녔다. 잘 안 보이는데 좀비는 많을 거 같아서 조심히 다니는데 미처 못 본 나머지 좀비를 건들고 말았다. 좀비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내 턱을 잡았다. 허리춤에서 칼을 꺼내 좀비 복부를 인지상정 없이 찔렀다. 하지만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 팔에 날카로운 것으로 찌르는 고통이 느껴졌다. 보니까 칼이었다. 지민이 잘 안 보이니 모르고 내 팔에 찌른 것이었다. 소리 지를 수도 없으니 입술을 물고 참아냈다. 조금씩 들리는 신음소리에 지민은 그제서야 잘못 찌른 것을 눈치챈듯했다. 그 순간 좀비에게서 벗어났다. 힘이 풀려서 무릎을 꿇었다. 찔린 곳을 꾹 잡고 참았다. 상처가 깊게 파여 있었다.

 

 

지민은 좀비를 힘으로 때려눕히고 얼굴을 마구 찌르다 움직이지 않자 머리를 잘랐다. 나한테 와서는 자신의 반바지를 대충 잘라 내 팔에 감았다.

 

 

“불 켜면 치료해 줄게. 조금만 참고 있어. 미안해.”

 

 

“한두 번 다치는 것도 아니고.”

 

 

 

 

이제 일어나려는데 지민 뒤에 덮치려는 좀비가 보여 불을 켜기 전까지는 총을 쓰지 않기로 했었는데 순간적으로 총을 쐈다. 지민도 나도 당황했고 큰일 났다는 생각과 함께 구석 쪽으로 달렸다.

 

 

 

 

“쌤쌤인 거다!”

 

 

 

 

다행히 달린 쪽에는 제어실이 있었지만 잠겨 있었다. 좀비들이 점점 이쪽으로 오는 게 느껴졌다.

 

 

 

 

“너 문 딸 줄 알아?”

 

 

“아니.”

 

 

“나 아니까 문 딸 동안 쟤네 처리해 줘.”

 

 

 

 

지민이 힙색에서 철사 같은 걸 꺼내더니 열쇠 구멍에 넣었다. 나는 왼쪽에 플래시를 들고 오른쪽에 칼을 들어 하나씩 처리했다. 아, 그런데 아까 쌤쌤이라 했던 거 취소하겠다. 왼팔이 너무 아팠다. 오른팔이었으면 칼을 못 썼을 지도 모르겠다. 보이는 족족 죽이고 있는 와중 뒤에서 소름 끼치는 감각이 느껴졌다. 좀비였다. 그 순간 불이 켜졌고 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불이 켜지고 보니 이곳저곳에 좀비가 널브러져 있었다. 몇몇 살아있는 좀비들도 있었지만 느릿하게 어기적 어기적 돌아다니고 있어 위협감은 없었다. 이렇게 보니 제어실이 가까이 있었다. 제어실로 가니 지민이 왜 이렇게 얼굴이 피범벅이냐고 놀랐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피를 쏟아부은 것 같다고 했다. 지민은 힙색에서 조그맣고 형형색색 한 병 여러 개를 꺼냈다. 그러곤 지혈한 천을 풀고 파란 물약을 땄다.

 

 

 

 

“이게 뭔데?”

 

 

“상처 치료제.”

 

 

“안전한 거 맞아?”

 

 

“나도 가끔 써. 조금 아플 거야.”

 

 

 

 

상처 위에 액체를 붓는데 처음 찔렸을 때의 고통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그걸 다 붓고 나서 탈지면 같은 걸로 주변을 대충 닦아냈다. 피도 멈췄고 순간적으로만 아팠을 뿐 지금은 전혀 아프지도 않았다.

 

 

 

 

“금방 나을 거야.”

 

 

“그럼 좀비 치료제? 그거도 효과 있어?”

 

 

“응… 사실 나도 몰라. 구매자 말로는 효과 있다던데. 근데 반좀비까지만 살릴 수 있을 거야.”

 

 

“사기꾼이네.”

 

 

“이제 알았어?”

 

 

 

 

치료도 했겠다, 제어실 밖으로 나갔다. 식품 코너가 2층에 있는 걸 확인하곤 올라간다. 선반이 군데군데 비어있긴 했지만 대형마트라서 꽤 많이 남아 있었다. 사이사이 좀비들이 돌아다니긴 했지만 많지는 않아 신경도 안 쓰인다. 식사류 위주로 털어 넣는다. 전기가 아직 끊기지 않아 냉장고가 돌아가 냉동식품도 넣는다. 워낙이도 큰 배낭이 빵빵해 터질 지경이었다. 물도 챙겨 넣었다. 이제 넣은 만큼 넣었으니 돌아가자.

 

 

어깨에 음식이 한가득 매어있어 몸이 무거우니 힘들긴 했는데 그래도 위협을 가하는 좀비들을 잘 죽이고 피했다. 집에 가는 길이 조용하지는 않았다.

 

 

 

 

“너는 왜 약사하겠다는 애가 갑자기 불법 약물 쪽으로 샜냐.”

 

 

“그럼 너는? 너는 왜 사람 죽이고 다니는데.”

 

 

“…어떻게 알았어?”

 

 

“뭐를?”

 

 

“사람 죽이는 거.”

 

 

“좀비 킬러들이 원래 이름 날리던 킬러라는 거 들었어.”

 

 

“왜일 거 같아?”

 

 

“나는 너랑 헤어지고 힘들었어. 그냥 제정신이 아니었고 정신 차려보니까 이상한 거나 만들고 있더라. 그래서 그냥, 계속 만들었지.”

 

 

“네가 헤어지자 해놓곤ㅋㅋㅋㅋ”

 

 

“…그러게. 마음 다 떴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봐.”

 

 

“나도 똑같아. 어쩌다 보니.”

 

 

“그 마음 여전해? 나는…… 여전해.”

 

 

“다 왔다. 들어가자.”

 

 

 

 

집에 도착하니 민윤기는 거의 몸집만 해진 가방 크기에 놀란다. 수고했으니 내일까지 집에 있으라고 한다. 가방은 그에게 건넸고 자기가 정리하겠다며 들어가 있으라 한다. 차라리 도와줘서라도 지민과 단둘이 있는 어색함을 피하고 싶은데 그의 말투에는 별거 아닌 듯하지만 단호함이 있어 방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너무 어색했고 불편했다. 결국 견딜 수 없어 일어나 문고리를 잡으려는 순간.

 

 

 

 

“야 김석진, 왜 대답 안 해?”

 

 

“……내가 대답해야 될 의무가 있어?”

 

 

“하, 그래 하지 마.”

 

 

“너는 또 왜 어이없어하냐? 내가 틀린 말 했어? 그때 서로 소홀했던 건 맞지만 그래서 나는 어떻게든 헤어지기 싫어서 계속 노력했는데 감정 없이 헤어지자 말해놓곤, 힘들었어? 일방적으로 통보받은 나는 어떻고? 그때부터 다시 너 만나기까지 바보같이 마음 접지도 못하고 내가 구해준 사람이 너라는 걸 알았을 때 혹시 나를 봐주지는 않을까, 다시 날 좋아하지는 않을까. 너는 네 죗값을 받은 거겠지만 나는, 나는 왜 이래야 되는 건데.”

 

 

 

 

의도치 않게, 눈물이 터졌다. 볼 위로 길이 생겼다. 시력이 나쁜 사람처럼 흐릿하게 보이는 시야로 지민의 놀란 표정이 보였다. 그리고 이쪽으로 오더니 나를 꽉 안았다. 어디라도 도망갈까 갑자기 사라져버릴까, 놓치기 싫어서 그런다는 듯.

 

 

 

 

“김석진, 미안해. 진짜 미안해. 헤어지자 한 것도 전부 다 미안해.”

 

 

“나도 미안해, 그리고 너무, 사랑해.”

 

 

 

 

박지민, 나는 그를 너무 사랑했고 그게 큰 문제였다. 나도 내가 바보 같단 걸 알았다. 힘든 시간을 다 지워버리고 너무 쉽게 용서해버리는, 화를 내더다가도 사랑한다고 말하고 이러다 떠나버리진 않을까 걱정하는, 사랑 앞에서 다 무너져버리는 내가.

 

 

와중 지민은 계속 울며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나를 안은 그의 팔을 풀고 똑바로 쳐다보며 볼을 잡았다.

 

 

 

 

“다 잊고 이제 사랑한다는 말만 해줘.”

 

 

“킬러라더니 너 왜 그새 더 물러진 거야. 다신 그러지 말라고 절대 잊지 말라고 해줘. 그리고 네가 날 떠나도 나는 너만 볼게. 사랑해.”

 

 

 

 

눈이 부을 정도로 울다 잠이 드니 아침이었다. 밖에 나가지 않아도 돼 간만에 여유로웠다. 민윤기는 방에서 일하고 지민은 방에서 약물을 정리하고 있었고 나는 거실에서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문소리가 들리더니 민윤기는 거실로 나와 티비를 틀길래 핸드폰을 내려놓고 시선을 티비쪽으로 돌렸다.

 

 

한참보다가 방으로 들어가려 그쪽으로 갔는데 마침 지민이 나와 눈이 마주쳤다. 분위기가 묘해졌다. 지민이 갑자기 샤워해도 되냐고 민윤기에게 묻는다. 그의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보인다. 지민은 그렇게 말해놓곤 나를 데리고 들어간다. 그때까지도 의도를 눈치채지 못하고 당황한 표정으로 지민을 봤다. 지민은 샤워기를 틀더니 세숫대야에 넣었다. 나를 멀뚱히 보더니 입술을 맞췄다. 그제서야 그를 따른다. 혀를 섞는 야설스러운 소리는 물소리에 가려들리지 않았다.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대야엔 물이 가득 채워져 샤워기가 돌아갔다. 덕분에 둘 다 살짝 젖었다. 당황해서 입을 떼는데 눈앞에 흰 반팔티를 입은 지민이 눈에 보였다. 젖은 부분 사이사이로 보이는 몸은 이성을 뒤흔들었다. 마침내 세숫대야를 들고 물을 지민에게 부어버렸다. 샤워기가 떨어지는 소리가 크게 났다. 여전히 물은 계속 나오고 있었다. 지민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젖어버렸다. 그리고 마주친 눈은 아까까지의 풀린 눈이 아니라 사냥감을 발견한 사냥꾼의 눈이었다. 예감이 틀리지 않은 듯 샤워기를 들어 머리 위에 두웠다. 황급히 눈을 감았고 그 순간 지민의 웃음을 보았다. 다시 샤워기를 세숫대야에 돌려놓곤 젖은 머리를 정리해줬다.

 

 

 

 

“이쁘다, 석진아 근데 아깐 왜 그랬어?”

 

 

 

 

 

 

 

 

 

 

 

 

이것 또한 최근의 일상이었다. 혼자가 아니라 둘이라는 점이 일상을 행복하게 했다. 좀비를 죽이는 지민의 실력은 나날이 늘어갔다. 그런데 이런 건 너의 일상이 아니라는 듯 물방울이 하나씩 떨어지더니 이내 비가 우수수 떨어진다. 밤만큼 위험한 게 비 내리는 날이었다. 덜 어둡다곤 해도 시력이 없는 좀비들에게는 이 밝기나 저 밝기나 싶을 거다. 일단 어두운 건 매한가지니까. 망했다고 생각하고는 보이는 실내 아무 곳이나 들어갔다. 가정집이라서 불은 금방 찾고 좀비는 별로 없어 빠르게 처리했다. 운이 좋았다. 그렇게 한숨 돌리나 싶더니 삐— 소리가 나며 문자가 왔다. 싸했다.

 

 

 

 

[A도시 좀비 위험 구역 폭파 안내.

비상 대책 본부에서는 지속적으로 좀비의 수가 늘어나고 일정 수치를 넘은 A도시의 좀비 위험 구역을 소생이 불가하다고 판단하고 폭파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폭탄 투하 장소는 구역 내 한가운데로 구역 밖은 전혀 영향이 없도록 조정을 하였으니 염려 없으시길 바라겠습니다. 위험 구역의 주민 여러분은 내일, 12일까지 입구(좀비 관리 센터 옆)로 오시면 구역 바깥으로 대피시켜드리겠습니다.]

 

 

 

 

헛웃음만 나왔다. 비 오는 날에 다음날 폭발 예정이라니. 문자를 읽은 뒤에는 둘 다 말이 없었다. 들리는 거라곤 듣기도 싫은 빗소리뿐이었다.

 

 

아무리 입구와 끝과 끝이라도, 좀비를 처리하면서 가도 1시간은 안 걸렸다. 문제는 비가 언제 그칠 것이냐. 시기상으로는 장마였다. 언제 그칠지 몰랐다. 사실 그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작은 가능성을 믿어보기로 했다. 내일 해가 지기까지 넉넉히 오후 4시까지 비가 멈추길 기다리기로. 만약 그때까지도 그치지 않는다면 좀비들을 뚫고 지나갈 수밖에 없었다.

 

 

비는 당연히 그치지 않았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끊임없이 물이 떨어졌다. 4시가 되고 현관문을 열었다. 길은 창문으로 봤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좀비들로 가득 차있었다. 마치 처음 좀비가 나타났을 때 같았다.

 

 

한 발짝 내디뎠다. 빗소리가 우리의 기척을 가려주길, 비의 비린내가 우리의 체향을 가려주길 바라며.

COPYRIGHT 2020 ⓒzombiezip_1204 ALL RIGHT RESERVED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