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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복냥이

Triigger warning

: 유혈

 

본 글은 모두 픽션임을 알려드립니다.

 

 

2020년, 대한제국 163년

 

나라에 괴이한 역병이 돌고, 사람들은 점점 이상한 모습으로 변해간다. 그것은 썩은 내를 풍기며 가축, 짐승, 사람 가릴 것 없이 물어뜯고 물린 것 역시 그것과 똑같은 모습으로 모든 생명을 물어뜯는다. 물어뜯긴 것들의 몸은 썩어가고 우리는 그 역병이 어디에서 시작된 것인지 알지 못한다. 대한제국은 멸망하기 시작했다.

 

 

 

“정 팀장.”

“네.”

“과연 언제쯤 이 역병이 수그러질까.”

 

 

석진의 물음에 호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땅의 모든 생명들이 괴물로 변해가고 괴물로 변하지 않은 사람 모두 얼마 지나지 않아 배고픔과 추위에 죽어갔다. 더 이상 새 생명의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더 이상 희망이라는 것은 없었다.

 

 

“폐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그저 지독한 악몽을 꾸는 것입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람들의 비명과 울음소리가 난무하는 궁의 외부와는 달리 궁의 내부는 조용하고 한적했다. 궁의 외부를 지키는 창살에는 이미 괴물로 변한 사람들의 시체가 걸려있었다. 석진은 지금 이 나라에서 제일 안전한 곳에 있으면서도 제일 불안에 떨고 있었다.

 

 

“야 민윤기! 뭐 좀 찾았어?”

“죄다 통조림뿐이야.”

“재수도 더럽게 없지.”

 

수능 날 좀비 피해서 먹을 거 찾으러 다니는 게 말이 되냐.

 

 

윤기가 찾은 통조림을 뒤적거리던 태형이 바닥에 침을 뱉으며 불만을 토해냈다. 우리 잘난 황제 폐하는 뭐하고 계시려나. 궁에 처박혀서 지 혼자 놀고먹고 하겠지 뭐. 태형의 비아냥거림에 대충 맞장구를 친 윤기가 유통기한이 남은 통조림들을 가방에 챙겼다. 비어있던 가방이 가득 채워지니 어깨가 무거워졌다.

 

 

“민윤기!”

“왜 인마.”

“오랜만에 한 잔?”

 

 

그러던가. 윤기의 말에 방긋 웃은 태형이 외투 주머니에 맥주를 넣었다. 오늘은 날이 좋구만.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태형이 바닥에 놓은 야구 배트를 챙긴다. 나무 사이사이에 박힌 못에는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의 살점이 걸려있었다. 윤기는 그게 썩 좋은 구경거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뭐가 그리 신이 나는 것인지 발음도 못하는 팝송을 흥얼거리는 태형을 보던 윤기가 자신의 활과 화살을 챙기고 밖으로 나섰다.

 

 

“어우, 씨발 냄새 개오지네.”

“왔냐?”

“어.”

“뭐 좀 가져왔어?”

 

 

윤기가 내려놓은 가방을 뒤적이던 정국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이거 스팸 아냐?! 뭐?! 스팸?! 스팸이라는 말에 화장실에서 쪼르르 달려 나온 지민이 정국의 손에 있던 통조림을 가로챘다. 고작 햄 하나일 뿐인데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던 윤기의 눈이 예쁘게 휘어졌다. 김석진도 스팸 좋아하는데... 문득 떠오르는 석진의 얼굴에 윤기는 웃음을 지웠다.

 

 

“안내 문자는 오늘 오후 10시에 보내주세요.”

“네.”

“살아있는 사람이 있다면 좋을텐데...”

 

 

석진이 작게 한숨을 폭 내쉬었다. 호석은 그런 석진에게 짧게 목례를 한 후 방에서 나왔다. 혼자 남은 석진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머리가 아파왔다. 대체 누가, 어떤 이유로 이런 짓을 한 건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가만히 앉아서 멍 때리던 석진이 뻑뻑한 눈을 느리게 깜빡거렸다. 그러고 보니 오늘 수능이었구나. 작은 탄식처럼 쏟아져 나온 말들이 석진의 눈가를 적셨다. 석진은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오늘은 포식이다!”

 

 

태형을 필두로 아이들 모두 맥주 캔을 땄다. 밤, 술, 친구. 작은 일탈을 하는 기분이었다. 오늘 몇 명의 좀비를 죽였는지 무용담을 펼치는 태형을 바라보며 모두들 웃고 있었다. 비록 전등이 깜빡이고 보일러도 켜지지 않는 단칸방이지만 넷이 함께라면 좀비 따윈 두렵지 않았다. 그렇게 술이 내가 되고 내가 술이 될 때 즈음에 모두의 휴대폰이 동시에 울렸다.

 

 

「 어딘가에 살아있을 국민들에게 알립니다. 정부는 더 이상의 희생을 방지하고자 2020년 11월 26일 오전 8시, 각 도의 도청 앞에서 여러분을 데리고 궁에서 보호하고자 합니다. 생존하신 국민 여러분들은 오전 8시까지 각 도의 도청 앞으로 모여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생존을 희망하며 부디 이번 밤은 무탈하기 바랍니다. 」

 

 

“뭐냐 이거...”

“이거 진짜 맞아?”

“재난 문자니까 장난은 아니겠지.”

“미친...”

“도청이 여기서 얼마나 걸리더라.”

“걸어서 20분 조금 넘을걸.”

 

 

갑작스레 온 문자에 모두 당황했다. 태형은 한참동안 문자를 바라보았고 정국과 지민은 지도를 꺼내 길을 살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좀비들은 해가 비치지 않을 때에만 활동을 하였다. 그로 인해 낮과 밤의 생활이 바뀌어서 당장 아침에 일어날 수 있을지가 걱정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한겨울이라 아침 8시 까지는 날이 어두웠다.

 

 

“무슨 생각해?”

“별 생각 안했는데.”

“거짓말. 너 지금 엄지손가락 못살게 굴고 있잖아.”

 

 

정국의 말에 정신을 차린 윤기가 입에서 엄지손가락을 빼냈다. 민망함에 뒷머리를 긁적이던 윤기가 주머니 깊숙이 숨겨둔 담배를 꺼내 물었다. 정국은 윤기가 담배 피는 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아무 말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괜히 으스스한 풍경에 혀를 찬 윤기가 바닥에 담배를 비벼 껐다.

 

 

“민윤기.”

“왜 인마.”

“너 처음 좀비 나왔던 날 기억해?”

“당연하지.”

 

 

그냥 평범하게 날씨가 좋은 날이었다. 말 그대로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깨끗한 날이었다. 곧 있으면 열릴 양궁대회에 연습을 하던 중 김태형이 허겁지겁 달려와 도망가야 한다며 제 손을 잡아 이끌었고 나는 영문도 모른 채 김태형의 손에 이끌려 도망가기 바빴다. 그러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살아있는 시체처럼 변해버린 친구들이 이성을 잃고 다른 친구들을 물어뜯고 있었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살인을 저질렀다.

 

 

 

 

 

“폐하. 이제 일어나셔야 합니다.”

“응...”

 

 

석진은 바랬다. 다음 날 눈을 뜨면 언제나처럼 평화로운 아침이 오기를. 그러나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느리게 눈을 깜빡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석진은 오늘도 창밖을 내다보며 바깥 상황을 지켜보았다.

 

 

“정 팀장님.”

“네.”

“백성들이 많이 굶주렸을 것입니다. 수라간에 가서 음식을 넉넉히 준비하라 일러주세요.”

“네.”

 

 

해가 뜨지 않은 시각이었다. 지민은 지도를 보며 길을 찾았고 윤기와 태형은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정국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챙겨온 짐을 들고 지민과 함께 길을 찾았다. 작은 소리에도 날을 세우며 빠르게 걸어오니 어느새 도청에 도착했다.

 

 

“정말 우리 다 살 수 있어요?”

“글쎄요. 일단 버스에 타세요.”

 

 

시린 바깥 공기와는 달리 따뜻한 안 공기에 피로가 몰려왔다. 너무 오래 추운 곳에 머물러 있었다. 아이들은 하나 둘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지난 밤 설렘과 걱정에 설친 잠을 자기 시작했다. 그렇게 버스는 아이들을 태우고 궁으로 향하였다.

 

 

“다음 분 성함 말씀해주세요.”

“민윤기.”

 

 

조금 따끔해요. 주사 바늘이 윤기의 살갗을 파고 들어간다. 이질적인 느낌에 미간을 잔뜩 구긴 윤기가 태형을 바라보았다. 저거 또 난동 피우겠네. 얼마 지나지 않아 태형은 엉엉 울며 검사실에서 나왔다. 윤기야 나 아파써. 호 해줘. 지랄.

 

 

“김태형 아직도 우냐?”

“이제 안 울거든!”

“밥이나 먹어. 시끄러워.”

 

 

생각보다 살아있는 사람들이 적었다. 윤기는 이리저리 주변 사람들 눈치를 보며 밥을 먹자니 체할 것 같았다. 태형은 오랜만에 먹는 진수성찬에 불만 없이 밥을 먹었고 지민과 정국 역시 입에 맞는 듯 조용하게 밥을 먹었다. 즉석식품이 아닌 갓 지은 밥은 따뜻하고 맛있었다. 윤기는 만약 지금 일어나는 이 모든 것이 꿈이라면 영원히 깨어나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했다.

 

 

“진짜 개맛있다.”

“그러게.”

“등도 따시고 배도 부르고... 평생 여기서 놀고먹고 싶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지민이 누워있는 태형의 이마를 아프지 않게 때리며 핀잔을 주었다. 모두의 눈이 반쯤 감겨있을 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문에서 가장 가까이 있던 윤기가 문을 열자 석진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방은 마음에 드십니까?”

“네. 근데 무슨 일로...”

“그냥... 다들 제 또래라고 해서...”

 

그래서 궁금해서 와봤습니다. 저는 또래 친구들을 사귀어 본 적이 없어서...

 

 

자신을 바라보는 눈동자에 석진의 귀가 붉게 물들었다. 순식간에 얼굴까지 붉게 물든 석진을 본 윤기는 석진의 얼굴이 꼭 사과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둘의 눈이 마주치고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시선을 돌렸다. 석진과 눈이 마주친 윤기의 얼굴 역시 사과처럼 붉게 물들어갔다.

 

 

“내일 네 방에 놀러가도 돼?”

“당연하지. 나 이제 가볼게 내일 꼭 놀러와.”

“응. 잘 가. 석진아!”

 

 

석진이 나가고 윤기는 한참동안이나 석진이 나간 문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점점 날이 저물어가고 어느새 시계의 긴 바늘과 짧은 바늘이 모두 12 위로 얹어지고 종이 12번 울렸다. 윤기는 감기지 않는 눈을 깜빡이며 컴컴한 천장을 바라보았다.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이 다 꿈만 같았다. 푹신한 침대에 따뜻한 밥, 안전한 곳. 윤기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활을 바라보았다. 이제 저건 필요 없겠구나. 영양가 없는 미래에 대한 생각들이 윤기의 머릿속을 괴롭혔다. 결국 침대에서 나온 윤기는 푹신한 슬리퍼를 질질 끌며 방을 나왔다.

 

궁에 들어 온지 보름이나 지났다. 윤기는 보름 내내 새벽에 산책을 나왔다. 궁의 새벽은 윤기의 생각보다 훨씬 추웠다. 윤기는 옷 사이사이로 파고드는 찬 공기에 팔짱을 끼며 궁을 돌아다니다 밖으로 나왔다. 윤기의 숨결에 새하얀 입김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렇게 한참을 서성이던 윤기는 이름 모를 꽃들이 잔뜩 핀 온실을 발견했다.

 

 

“아...”

“이리 와. 춥겠다.”

“어...”

 

 

아무도 없을 것이라는 윤기의 생각과는 달리 온실 안에는 석진이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석진의 부름에 윤기는 천천히 석진의 곁으로 걸어갔다. 그렇게 둘은 석진이 책을 다 읽을 때까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어색한 침묵에 괜히 민망해진 윤기가 뒷머리를 긁었다. 석진은 그런 윤기를 보며 살풋 웃어보였다. 석진의 작은 웃음에 윤기의 얼굴이 다시 붉게 물들었다. 나 왜 이러지. 윤기는 해답을 찾으려고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 사이 종이 한 번 울렸다. 어느새 하루가 지나있었다.

 

 

“윤기야.”

“응.”

“너는 학교 다닐 때 뭐했어?”

“양궁...”

“양궁?”

“응.”

 

 

별 영양가 없는 말들이 오가고 어느덧 세 번의 종이 울렸다. 석진은 초조해졌다. 곧 있으면 정 팀장님이 제 방에 들어가 제 존재의 여부를 확인할 것이었다. 서론은 이정도면 충분했다. 이제는 본론으로 들어갈 차례였다.

 

 

“너도 연애 같은 거 해봤어?”

“연애...?”

“응. 너도 알다시피 내가 자유롭지 못하잖아...”

 

 

아. 윤기의 입에서 짧은 탄식이 나왔다. 석진은 최대한 불쌍해 보이는 표정으로 윤기를 빤히 바라보았다. 석진의 시선에 윤기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부지런하게 움직였다. 윤기의 귀 끝이 붉게 물들었다.

 

 

“나도 연애 해 본 적이 없어서...”

“정말? 그럼 나는 어때?”

“어...?”

“나는 너 처음 볼 때부터 마음에 들었는데.”

 

 

작게 벌어진 윤기의 입술 위로 석진의 입술이 닿았다 떨어진다. 윤기는 밀어낼 틈도 없이 그대로 당했다. 윤기 네가 내 첫 뽀뽀 가져간 거야. 석진은 맑게 웃으며 내일을 기약하고 온실을 빠져나왔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눈만 마주치면 빨개져서 피하기 바빴던 사람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바뀐 것이 놀라우면서도 말랑한 입술의 감촉을 되새김질 하였다. 이로써 혼란스러운 마음이 한 문장으로 정의되었다. 민윤기는 김석진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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