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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든 자들의 도시

w. 호체피

0. Prologue

 

한국에서 첫 번째 증상자가 나온 것은 2020년 9월의 중순, 대학 내 캠퍼스였다.

 

“뉴스 속봅니다. 지난주 첫 감염자가 발생한 ‘급성 수면증’ 신규 확진자가 하루 새 삼천 명이나 증가하였습니다. 질병관리본부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확진자 수를 브리핑하며, 전염병 확산에 따른 대응 단계를 ‘국가 위기 단계’로 격상하였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티비에서 연신 속보로 ‘급성 수면증’에 대해 보도하기 시작하였을 때엔 이미 한국도 걷잡을 수 없을 속도로 병이 퍼지기 시작한 상태라 정부의 갖은 노력에도 빠르게 확산하는 병은 막을 수 없었다.

 

전 세계적으로 급속도로 퍼진 ‘급성 수면증’. 이 병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전염병이다.

운전 중에, 일하는 도중에, 그리고 식사 중에.

이 병은 어느 때건 예기치 않게 찾아와 감염자를 깊게 잠들게 만들었다.

이 병에 걸린 감염자에겐 다른 증상은 없다. 오직 갑자기 잠에 빠져들고 깨지 못하는 증상만 있을 뿐이다.

 

의사들은 환자들의 상태가 뇌사 상태와는 다르다고 말한다.

그저 잠을 자고 있는 것이라고...

하지만 잠에 빠진 이들은 어떠한 자극을 주어도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다.

 

처음 그 병이 시작된 것은 히말라야 산맥이었다.

큰 산사태가 지나간 후 히말라야 산맥 얼음 계곡 아래에서 미이라가 나타났고, 현생 인류와 유인원의 특징을 고루 보이는 미이라는 분명 현생 인류와 유인원의 중간 단계 인류였다.

그렇게 현생 인류와 유인원의 중간 단계의 특징을 담고 있는 미이라의 출현 소식에 미이라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세계 각국의 고고학자들이 열광하며 속속들이 히말라야 산맥으로 모여들었다.

전문가들은 얼음 속에 갇혀 있는 미이라를 보존하기 위하여 각종 화학처리를 진행하며 섬세하게 미이라를 발굴하였다.

그리고, 미이라가 얼음 계곡에서 나와 인도 어느 대학 연구실로 옮겨진 순간- 그 장소에서부터 병이 시작되었다.

미이라를 발굴한 사람들, 미이라를 옮긴 사람들, 그리고 미이라가 옮겨진 대학 연구실 안의 사람들... 그들로부터 병이 시작되었다.

‘급성 수면증’, 그 병이.

 

그 병이 한국에 상륙하는 덴 채 한 달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순식간에,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이 잠드는 덴...

세 달도 걸리지 않았다.

 

다른 증상 없이,

오직 잠에 빠지는 ‘급성 수면증’.

‘급성 수면증’은 2020년 전 세계를 휩쓴 전염병 코로나처럼 바이러스성 질환이었지만... 발병된 지 삼년이나 지났어도 치료법- 아니 백신조차 개발되지 못한 상태였다.

 

그리고. '급성 수면증'이 발병한지 3년이 지난 어느 날, 잠들었던 사람들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경찰서죠? 여기 사람이, 아니, 괴물이, 제발 빨리 와주세요. 저희 좀 살려주세요.">

 

치직-

 

<"도망가요!!! 여기서 나가라고요!!">

 

칙-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제발 문 좀 열어주세요!!">

 

치지직-

 

 

다시 깨어난 사람들은,

이성이 존재하지 않는- 오직 식욕만이 살아있는 괴물이었다.

초점이 없는 풀린 동공과 무표정, 목을 긁는 듯한 소리만 낼 수 있을 뿐 말도 하지 못하였다. 사고라는 것이 불가능한지 문손잡이조차 돌리지 못했다. 당연히 의지라는 것이 있을 리 만무하였다. 그들은 오롯이 식욕만 느끼는 괴물이었다.

살아있는 생물이라면- 반응하며 쫓아가 이로 뜯어 잡아먹었다.

그들은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지 팔이 잘리면서도 공격을 멈추지 않고 먹잇감으로 점찍은 것의 살점을 뜯어먹었다.

 

잠에서 깨어난 그들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었다.

괴물이 깨어나는 순간. 세상은 더 이상 ‘질서’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순식간에... 세상은 혼돈의 카오스로 빠져들었다.

 

 

 

잠든 자들의 도시.

W. 호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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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첫 번째 증상이 나온 것은 9월의 중순, 대학 내 캠퍼스였다.

 

-“뉴스 속봅니다. 지난주 첫 감염자가 발생한 ‘급성 수면증’ 신규 확진자가 하루 새 삼천 명이나 증가하였습니다. 질병관리본부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확진자 수를 브리핑하며, 전염병 확산에 따른 대응 단계를 ‘국가 위기 단계’로 격상하였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유행 중인 이 질병에 대한 대책이-”

 

핏-

 

혼자 재잘거리던 티비가 꺼지자 집 안이 고요로 물들었다.

 

태형은 손에 든 소주병을 다시 입으로 가져가 꿀꺽꿀꺽 들이켰다.

 

“크흣, 욱-”

 

평소 술을 마셔봤자 와인 한 잔 정도밖에 마시지 못했던, 비주류 김태형. 역한 소주가 목을 넘기고 속으로 넘어가자 자신도 모르게 욱-하고 구역질나는 소리를 내었다.

올라오는 토기를 억지로 참아가며 태형은 다시 술병을 입에 대고 꿀꺽꿀꺽 두 모금을 넘겼다.

아무리 술 마실지 모르는 사람이라도... 오늘은 취해 잠들고 싶었다.

 

“씨, 나... 왜에 사냐아... 히끅, 기임태혀엉! 왜 살아아!”

 

마신 건 소주 한 병 뿐이지만 그 정도면 김태형에게는 필름이 끊길 정도의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자신의 휴대폰을 째려보며 연신 왜 사냐고 자신을 타박하던 태형은 픽-하고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술기운이 올라 더 이상 자리에 앉아 있기 버거웠던 것이다. 그는 그렇게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누워 버렸다.

 

“기임서억찌이인~!!”

 

대답 없는 이름을 불러가며 태형은 제대로 술주정 중이었다. 눈물까지 흘려가며.

태형의 눈가에서 흘러 바닥으로 떨어진 눈물은, 금세 새끼손톱 만하게 모이더니, 그가 잠들 때 즈음엔 꽤나 넓은 눈물 자욱이 만들어져 있었다.

 

태형이 이렇게 술에 취해 눈물 바람을 뿌리고 있는 것은... 오늘 그가 같은 팀 멤버인 김석진에게...

 

까였기 때문이다.

 

차인 정도가 아닌, 말 그대로- 까였다.

 

“내가 머가 애 같냐아아~! 나츠러엄 이씨. 나처러엄 형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딨다고오-”

 

태형의 울부짖는 소리가 온 집에 울린다.

 

2020년 초기. 세계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코로나19로 인해 BTS의 상반기 공연 활동이 모두 무산되었다.

그들이 속한 소속사는 코로나19 일로 인해 월드투어가 취소되어 회사 매출에 타격을 받자, 멤버들 군 입대 전까지 그동안 시도해 온 온라인 컨텐츠 및 각종 유료 컨텐츠 제작에 집중하겠다며 하루의 휴가조차 갖기 힘들 정도로 멤버 각자 스케줄 및 팀 스케줄을 만들어 멤버들을 돌렸다.

 

달방 같은 팀 촬영이 진행되며 틈틈이 멤버들 개인 스케줄이 이뤄지고 있었다.

2020년 12월까지 군입대를 미뤄 놓은 석진부터 우선적으로 모든 컨텐츠 촬영이 이루어졌다. 음반, 게임, 화보, 개인 영상 촬영 등등...

그 다음이 윤기, 그 다음은 남준과 호석, 그 다음은 막라 세 명 순으로 입대가 준비되어 있었기에 BTS 멤버들은 군 입대 순서대로 스케줄이 빡셌다. 그들의 군 입대는 한 달 반 간격으로 이루어질 예정이었으며, 그렇게 모든 멤버들의 군 문제를 2년 안에 끝낸다는 계획이, 그들의 소속사와 멤버간의 협의 끝에 이미 정해져 있었다.

 

군 입대를 앞두고 정신없이 바쁜 이 때.

태형이 그간의 짝사랑을 이뤄보고자 진에게 고백한 것이다.

그리고... 분명 태형은 양방형의 관계라 생각하고 고백을 감행한 것인데... 예상과 다르게 태형은... 진에게 차였다...

 

“미안해. 태형아. 난 너랑 못 사겨. 나 바이인 거 너도 알 거야. 근데 내가 바이라도 넌...
하아... 솔직하게 말 할게. 난 너한테 연애 감정이 안 느껴져... 울지 말고 태형아...
미안한데 난... 네가 남자로 안 느껴져...
내가 널 헷갈리게 했다면 미안해 태형아...
태형아 넌... 넌 그냥 나한테 남동생이야...”

 

그 말을 끝으로 진은, 자신은 곧 입대하니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질 거라며, 그동안 마음 정리 잘 해달라고... 너랑 나 같은 그룹인데 이런 사소한 일로 불편해지면 활동하기 어렵지 않겠냐고... 제대하고 웃으며 다시 만나자며 태형에게 악수를 청했다.

 

사소한 일.

태형이 그를 짝사랑한 햇수만 따져도 7년이 넘었다.

그의 사랑은 사소한 일로 치부되기엔 너무도 깊었다.

 

그리고 악수...

경기장에서 경기 전 페어플레이를 다짐하는 주전 선수들끼리의 매너 악수도 아니고...

팀 활동한지 7년이 넘은 그들 사이에서 악수를 청했다.

우회적인 표현으로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거절하기로 유명한 김석진이 그 수를 김태형에게 쓴 것이다.

악수. 그것은 명백한 거절이었고 선을 지켜달라는 경고였다.

 

 

“나 같은 남자 놓친 거~ 후회할거야 김석지인~!”

 

다시 한 번 빈 집에 태형의 외침이 울렸다. 다행히 그들의 숙소엔 오늘 태형 말곤 아무도 없었다. 그의 이런 추태를 아무도 보지 못한 것은 정말 하늘이 도운 것이나 다름없었다. 박지민이나 전정국에게 이 모습을 들켰다면... 아마 군 제대하고 나서도, 아니, 자신의 환갑잔치 때에도 그들에게 이 일로 놀림 당했을 것이다.

 

김석진의 입대를 세 달 정도 앞둔 그 어느 날, 김태형은 그렇게 실연을 당하였다.

 

김태형의 첫사랑은... 이뤄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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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극심했던 코로나19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후, BTS는 다시 월드투어 일정을 잡으려 하였다. 그런데... 그 즈음 새롭게 시작된 ‘급성 수면증’이란 전염병으로 인하여 BTS는 의도치 않게 공백기를 가지게 되었다.

 

BTS 멤버들이 모두 입대한 시기는, ‘급성 수면증’이 창궐하여 진정되기 이전의 시기라 그들의 군입대는 전염병으로 인해 비교적 조용히 치러질 수 있었다. 그들이 입대하자마자 국가 비상사태가 선포되었다. 국가 간 이동도 철저하게 금지되었기 시작하였다.

 

‘급성 수면증’으로 순식간에 절반의 인구의 절반이 잠드는 동안 급성 수면증의 두려움으로 인해 사회가 잠시 기능을 잃었었다.

세계적인 경제대공황이 나타났지만 그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었다. 출근하지 않는 사람들로 인해 기업은 운영을 멈추었고, 돈의 가치가 떨어져 물가가 끝없이 치솟았고, 생필품부터 식량, 식수 모든 것이 부족해졌다. 국가 간 물류 이동이 제한되자 곳곳에서 문제가 나타난 것이다.

감염을 두려워한 사람들이 출근을 하지 않아 공장 가동이 멈추고, 공장이 멈추자 물건이 생산되지 않았다. 살 사람이 있어도 일 할 사람이 부족하여 물건이 없어 공장은 문을 닫았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수입이 없어졌고 치솟는 물가를 감당하지 못해 어려운 생활이 반복되었다. 도시화가 진행될 곳일수록 식량 부족 현상이 심각해졌다. 그리하여 잠들지 않은 살아남은 사람들은 도시에서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으로 점차 퍼져나가기 시작하였다.

 

 

급성 수면증이 창궐한지 3년이 지났지만 아직 그 병에 대한 백신이나 치료제가 전무한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순식간에 전 세계 인구가 잠들어 버린 것이지만..,

 

다행히... 사람들은 절망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였다. 그 희망이... 너무 늦었지만... 그래도 아직 세계 인구의 절반이 살아있었다. 그 절반의 인구라도 보존되어야 했다.

사람들은 우연찮게 아스피린을 꾸준히 복용중인 사람이 급성 수면증의 발병률이 낮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급성 수면증 초기, 전 세계적으로 빈번했던 대규모 집단 발병 사례에서, 아스피린 복용자가 미 감염되었다는 공통점이 발견되면서 밝혀진 사실이었다.

아스피린이 어떤 연쇄 반응을 일으켜 백신과 유사한 효능을 발휘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아스피린을 매일 같이 복용하면 병의 감염을 막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해 하였다.

물론, 백신이 아니기에 모두가 그 약에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무엇이 아스피린의 효과를 가르는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소수의 사람은 아스피린으로도 바이러스 감염을 예방할 수 없어 뒤늦게 그 병에 감염되어 수면에 빠지기도 하였다. 혹은 아스피린으로 감염이 예방되던 사람들이 갑자기 예방 효과가 사라져 병에 감염되기도 하였다.

 

아스피린의 우연한 발견은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이 잠들었을 즈음이었다. 그래도 아스피린 덕에 급성 수면증 사태가 진정되기 시작하였다.

그제야 혼란에 빠진 국가가 진정되고 재정비에 들어갔고, 국가가 나서 관리를 시작하니 금세 생활이 안정세에 들어섰다.

하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문화를 즐길 여유 따윈 없었다.

생존. 먹고 사는 것이 급급해졌고, 살기 위해 일을 하여야 되는 상황이었다.

예전처럼 영화를 볼 시간도 없었고, 골프를 칠 여유도 없었다, 이전처럼 전시회를 즐길 수 있을 만큼의 삶의 수준으로 경제수준을 올리려면...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아스피린은 아직 불안정한 임시 예방책일 뿐이었다. 급성 수면증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려면- 급성 수면증의 치료제가 나와야만 가능할 것 같았다.

 

정부의 주도하에 국가 재건에 힘을 쏟는 우리나라와 반대로, 무정부 상태에 빠진 나라도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런 곳은 이동제한구역으로 분류되어 항공편, 배편 운항이 금지되었다. 각국에서는 자국의 사태를 진정시키기에 바빴기에 그런 나라를 도와 인력을 파견할 여력 따윈 없었다. 그러한 곳은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었고 인구가 병이 시작 전하고 비교하여 1/10까지 줄은 곳들도 수두룩하였다.

 

세계는 개별적으로 사태를 해결하는 개별 국가와 단일 국가로 이 사태를 해결하긴 어렵다는 판단 하에 연합국으로, 단일국가과 연합국, 두 부류로 순식간에 나뉘어졌다.

대한민국은 코로나19에서 보여준 대로 ‘급성 수면증’에서도 뛰어난 위기대응 및 관리 모습을 보이며 개별국의 모범적인 방역 사례로 통하고 있었다. 다른 나라에 비하면 경제가 그나마 유지되고 있었고,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최소한의 기본적인 사회 시스템은 운영되고 있었다.

 

대한민국에선 급성 수면증에 아스피린의 예방 효과가 대두되자마자 병의 재 확산을 막기 위하여 국가차원에서 감염자들의 격리가 시급하다 판단하고 그를 시행하였다. 아스피린의 감염 예방 효과로 인하여 전 세계는 국가를 재정비 할 시간을 벌었고 한국 또한 마찬가지였다.

국가에선 발병자들을 모아 가둘 특수 시설을 다급히 만들어 급성 수면증에 빠진 감염자들을 그 곳에 강제로 입원시켰다. 아직 살아있는 사람이기에 격리시설 입원이란 표현을 쓴 것이지, 사실상 면회도 안 되고 접촉할 수 있는 방법이 전무하였기에 수감이나 다름없었다.

격리 시설로 옮겨진 이들의 생사 확인은, 시설에 설치되어 공유되고 있는 CCTV 화면과 격리시설 사이트 내에서 제공되는 병상일지로만 겨우 할 수 있었다.

급성 수면증으로 인해 잠들어 있는 환자들은 특수 설계된 베드에 나체로 누워있으며, 욕창 방지를 위하여 베드가 시간마다 움직여 잠든 감염자의 자세를 다양하게 바꿔주었다.

국가차원에서 격리소를 계획하고 건축하고 운영하고 있었지만, 잠든 자들의 수가 워낙 방대하고 국가 운영에 한계가 있는 상황이었기에 환자들 관리에는 분명 한계가 있었다.

 

방역복을 입은 직원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환자들을 관리한다지만 병상에 누워있는 환자가 지나치게 많기에 감염자들의 기본 인권을 지켜가며 관리해주기는 어려웠다.

환자들이 누워있는 베드는 컨베이어 벨트처럼 이동이 가능하였고, 특정 시간마다 이동하여 세척실을 거치게 하였다. 세척실은 환자들의 배꼽 아래 부분만 세척하도록, 그러니깐 대소변 처리를 하기 위하여 정해진 시간에 베드가 줄줄이 이동되어 사람들이 물에 담가졌다 나오는 것이다.

식사 또한 호스를 연결하여 유동식을 배식하였고, 그 유동식은... 정말 사람이 죽지 않을 만큼의 양만 급여하였다.

그들은 생존권만 보장받고 있는,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살아‘만’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간혹, 사랑하는 자신의 가족이 그런 취급을 받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감염자의 가족이, 아스피린을 복용해가며 감염자를 숨기고 자신의 집에서 정성을 다해 보살피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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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군 제대 후 BTS는 회사와의 계약으로 인해 아무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지금 전 세계가 세계 대공황보다도 더욱 심각한 상황에 처해있었기에 예전처럼 활동을 하기엔 제약이 많았다. 국가 간의 이동은 철저히 제한되고 있었고, 사람들에겐 여가를 즐길 여유가 없어졌다.

엔터테인먼트 사업은 쇠락하였다.

 

만약 그들이 겪은 병이, 사망자를 내는 치명적인 바이러스라면 상황이 이렇게까지 악화되진 않았을 것이다.

감염자들은, 그저 잠들었다.

오히려 지금 미감염자들은 잠들지 못한 자신의 상황을 지옥이라 빗대 말하기도 하였다.

가족 중 한 명이라도 잠들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잠든 가족의 격리 시설 입원비용을 마련하기 위하여 끊임없는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4인 가족 중 유일하게 미감염 된 사람. 그 사람은 자신의 가족들이 격리시설에서 보호 받을 수 있도록 비용을 지불하기 위하여 돈을 벌어야 했다. 혼자서 3명의 시설 사용료를 부담한다는 것은... 잠 잘 시간도 부족할 정도로 일을 하여야 된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세계 인구의 절반이 잠들었다. 아무리 한국이 초기대응이 빨라 무정부상태에 빠지는 일은 없었다 하더라도 국가위기 상태였다.

인구의 반이 잠들어 있는 상태였기에 국가 재건에 힘을 쏟아야 할 이 시점에 감염자들에게 나누어줄 복지 예산은 한계가 있었다.

그렇기에 잠들지 않은 사람들은 잠든 자신의 가족, 연인을 위하여 끊임없는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모든 가족이 잠들어버린 사람들의 경우엔 방법이 없었다. 정부 차원에서 지원을 하기엔 잠든 자들에게 배정된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였다.

그래서 정부는 특별 법안을 마련하여 보호자가 존재하지 않는 무연고자 감염자들은 존엄사라는 말도 안 되는 말을 붙여 안락사를 진행하였다.

법안이 통과되자마자 안락사 당한 감염자들의 시체들을 화장하는 연기가... 한동안 하늘을 까맣게 덮어 사람들을 우울하게 만들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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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BTS는 이 병이 창궐하기 전, 수백억대 자산가였지만... 지금은 그들의 재산 규모가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인구의 감소로 그들의 보유 재산의 값어치가 하락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보통 부자인가. 아무리 재산의 가치가 절반으로 하락하였다 하더라도, 그들은 여전히 영앤리치였다.

하지만 부자일 뿐... 그들에겐 지금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이 잠에 빠지는 이 병 때문에, 그들이 가진 음악을 즐겨주는 팬들·인기·미래... 그 무엇도 그들에게 남아있는 것이 없었다.

 

“숙소 생활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 줄이야... 난 우리가 마흔 살 때도 숙소 생활 할 줄 알았는데...”

 

지민이 짐을 챙기며 울먹였다. 그런 지민의 등을 정국이가 토닥여주었다. 다른 멤버들 또한 지민에게 어차피 음반 작업을 위해 자주 모일 텐데 무슨 걱정이냐며 각자의 방식으로 지민을 위로해주었다.

그들은 지금 지민을 위로하며 서로가 서로를, 그리고 자기 자신도 위로 받고 있는 중이었다.

 

세계적인 유명세를 얻은 그들이었건만 ‘급성 수면증’이라는 병으로 인해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잃었다.

군대에 갈 때만 하더라도, 이 병이 코로나19처럼 지나갈 유행병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군대만 제대하면 이전처럼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라는 여겼다.

그러나... 잠드는 병은 상황을 갈수록 악화시켰다.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군생활 내내 희망을 잃지 않았다.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려 수없이 노력하였다. 하지만 그들이 제대와 동시에 현실과 맞닥뜨리며... 그들의 희망은 이뤄질 수 없는 꿈이었단 것을 깨달았다.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제대 후 방송이라곤 국영기관에서 운영하는 안내 방송만이 남은 상황이었다. 전염병이 도는 이 시국에 대규모의 인원이 모여 촬영하는 예능은, 사실상 전멸이었고 국가 통제를 가하기 위해 방송가는 정리 당하였다.

국영 방송에서 진행하는 뉴스, 국영 방송 라디오, 인터넷 개인 방송으로 방송 판도가 바뀌어 있었다.

인터넷 개인 방송은 국가 감시가 철저하였기에 예전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오락거리의 방송이 아니었고, 정보 전달용의 방송이거나 종교 방송, 예전 유행하던 노래를 틀어주는 음악 방송들이었다. 방송 수익을 기대할 수 없는 지금 상황에, 인터넷 방송은 그저 누군가의 희생을 기반으로 제작되고 있는, 살아남은 서민들을 위한 유일한 오락거리나 다름없었다.

 

BTS 멤버들은 그간 이런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를 붙들고 숙소 생활을 유지해왔지만... 이제 더 이상 회사는 그들에게 숙소를 제공하지 않기로 했다며, 사실상 BTS 활동 종료나 마찬가지인 결정을 내리었다.

 

“그래도 우리들 다 서울에 남으니깐, 우리만 변하지 않으면 다시 활동할 수 있을 거야. 이 병... 언젠간 치료약이 만들어지겠지... 그러니깐 각자 관리 잘하고 있다가, 간혹 만나서 다음 앨범 우리끼리 자체적으로 준비하고 있다가... 그러다가 다시 세상이 괜찮아지면... 그 때 다시 시작해보자.”

 

애써 울음을 참으며 미소를 띠고 말해보는 진.

멤버들은 그런 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없이 서로를 안아주었다. 그래미에 갈 때 까지만 하더라도... 그들의 끝이 이럴 것이라는 상상은 해본 적도 없었는데...

그들의 끝은... 너무도 초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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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숙소가 정리되고 멤버들은 각자 준비한 집으로 이사를 나갔다.

진은 이번에 새로 입주를 시작하는 ‘세이프티’라는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세이프티’는 거주의 패러다임을 바꾼 신개념 아파트였다.

브랜드 슬로건으로 안전을 내세운 ‘세이프티’.

집집마다 영구 사용 가능한 공기 필터링 시스템을 갖추었고, 갑작스레 전기가 끊긴다 하여도 각 가정마다 자체 신재생 에너지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에 전력난에도 안전하였으며, 세대마다 정수시스템을 도입하여 외부와의 단절 상황이 오더라도 각 세대에 마련된 물탱크의 물과 빗물 재사용 시스템을 이용하여 사용한 물을 재생·순환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대비되어 있었다.

또한 각 세대마다 식료품 창고 시스템을 구축해 두었으며, 세대 옵션에 따라 의료 장비도 집 안에 구비해 배치해 놓을 수 있었다.

 

세이프티는 주차부터 개인의 안전을 고려하였다.

그 곳의 주차 시스템은 지하주차장이지만 기존의 주차장의 개념과는 전혀 다른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입주자는 각 집과 연결된 차고지에 주차를 할 수 있었고, 지하주차장에 만들어져 있는 각 집과 연결되어 있는 차고지는- 실제 단독주택의 차고지처럼 자동개폐식 문을 가지고 있었다.

차량번호인식으로 등록된 차량과 등록된 카드를 소지한 사람만 차고지의 문이 자동으로 개방되었다. 거기에 차고지에서 각 집에 연결된 엘리베이터를 사용 하려면, 보안 시스템에 입주자의 동호수와 패스워드를 인식하여야만 엘리베이터를 사용 할 수 있었다.

주차장을 이용하지 않는 입주민은 아파트 출입 현관을 이용하여 자신의 집에 출입하였고, 출입구는 A~J까지 총 열 개의 게이트가 있었으며 각 게이트마다 10개의 엘리베이터가 배치되어 있었다.

총 100세대가 거주하고 있는 세이프티.

각 게이트에서 등록된 카드나 지문, 홍채를 인식하면 거주하는 호수의 엘리베이터와 연결된 통로가 개방된다.

각 세대에 등록되어 있는 엘리베이터는 그 세대만 사용할 수 있도록 개별엘리베이터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패스워드, 등록된 지문, 등록된 홍채를 가지고 있어야 했으며, 비상시에는 집안에서 안전모드를 설정한다면 주차장이건 게이트에 있는 엘리베이터건, 그 어떤 것도 집안과 연결되는 시스템을 개방할 수 없었다.

세이프티는 지상에 5층 규모의 생활 편의 시설을 갖추고 있는 주상복합형 아파트였다. 아파트라 불리고 있었지만 세이프티는 지상에 존재하는 주거 공간이 아니었다.

지하 깊숙한 곳에 존재하는, 벙커 개념의 공간이었다.

‘세이프티’, 말 그대로, 거주자의 절대 안전을 책임져 주는- 전쟁이나 무정부 상태가 도래한다 하여도 주거인이 장시간 생존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돈 있는 사람들의 안전 가옥이었다.

 

현재 ‘세이프티’는 첫 입주를 진행하는 중이었고, 곧 며칠 상간으로 세이프티2차, 세이프티3차, 세이프티4차... 수많은 세이프티가 입주 할 예정이었다.

 

BTS 멤버들 모두 세이프티 1차 분양 때 응모를 해보았지만, 우연찮게도 진과 태형만 1차에 당첨되었다.

 

한국이 무정부 상태가 될 위험은 없지만... 그래도 사람일은 모르는 것이다. 코로나19가 휩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급성 수면증이 창궐하지 않았나. 이럴 때 또 다른 위험한 전염병이 또 나온다면... 그 때는 아무도 이후의 일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돈 있는 사람들은 세이프티에 혈안이 되었다. 웃돈을 얹고 그곳을 사 입주하려는 사람이 넘쳐났지만... 안타깝게도 세이프티에 입주할 수 있는 재력을 가진 사람 중에 세이프티를 파는 사람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다른 멤버들도 세이프티 2차와 3차에 분양 응모에 당첨되었다는 것이다.

비록 그들은 지금 숙소 전세계약이 만료되었기에 곧바로 집을 비워주어야 되는 상황이 되어 당장 이사를 가야하니 이삿짐을 나르고 있지만, 잠시 단기 거주지에서 일주일, 이 주일을 보내고 난다면 그들도 세이프티에 입주할 수 있었다.

 

이삿짐은 잠시 보관소에 맡기고 임시 단기 거주지로 이동하기로 한 다른 멤버들은 오늘 바로 이사인 진과 태형에게 이사 잘 마치라며 헤어짐이 아쉬워 긴 인사를 건네주었다.

 

“세이프티는 지나치게 외부인을 견제해. 아니, 어떻게 이삿날인데도 미리 등록된 입주민만 출입할 수 있게 하냐고오.”

 

“그러게요. 그래도 세이프티가 이렇게 보안에 신경을 써주니깐 예비 입주민으로 안심이 되기도 해요.”

 

정국과 지민이 이삿날은 다 같이 우르르 몰려가 이삿짐 날라주고 짜장면 시켜먹는 건데, 지금 짜장면을 시켜먹을 순 없어도 그 비슷한 분위기도 못 내는 게 못내 아쉽다며 입맛을 다셨다.

 

“이번이 세이프티 첫 입주니깐 아무래도 미비한 점이 많은 거 같아. 방문인을 극도로 제한하는 것도 그렇고... 뭐 그래도 다음 세이프티, 2차 입주 땐 이삿날 입주자가 원하면 세대별 엘리베이터- 그 날만 보안 풀어준다는 말이 있더라고.”

 

진이 정국의 등을 툭툭이며 자신도 아쉽다며 다음에 집 정리되면 방문자 등록해줄 테니 놀러 오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사 잘 끝내고 짐 정리되고 여유 생기면... 한 번 뭉치자는 인사를 하며, 그들은 그렇게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떼어... 각자의 새로운 공간으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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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시간이 흘렀다. 어느새 모든 멤버들이 세이프티에 입주하였다.

진과 태형이 세이프티1차에 입주한 지도 어느덧 4개월이 흘렀다.

 

세상은 여전히 조용하지만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고, 급성 수면증은 여전히 강한 전염력을 가지고 세상을 갉아먹고 있었으며... 사람들은 조금씩, 사는데 지쳐가고 있었다.

 

끝을 알 수 없는 현재 상황.

잠들지 않은 자들이 감당해야 하는 수많은... 고통들...

사람들은 조금씩 기득권들이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할 생각이 없는 게 아니냐며 의심하기 시작하였고...

사회는 폭동이 일어나기 직전의-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같은 아슬아슬 불안한 상태로 유지되고 있었다.

 

숙소를 떠나기 전 정해두었던 BTS 멤버 정기모임일.

그들은 실제 만나 그간의 안부를 나누는 것 대신, 페이스 채팅을 진행 중이었다.

며칠 전 국가에서 시행한 외출 규제 때문에 불가피하게 정기모임을 페이스 채팅으로 대체한 것이다.

 

- “쓰읍- 우리 한 번 만나야 하는데 자리 만들기가 어렵네. 다들 잘 살고 계신가?”

 

- “그러게요. 한 번 만나야 되는데. 요새 분위기가 더 안 좋아진 거 같아요. 아, 윤기 형 가사도우미 구하신다더니 혹시 구하셨어요??”

 

- “응. 요새 사람 구하는 거 엄청 쉽더라. 근래 수원에 있는 *성 계열 공장들에 인원감축 들어가서 그 여파로 실업률이 또 증가했다더니 정말 와 닿게 느껴져.
세이프티 관리사무소에 가사도우미 신청했더니, 그 날 오후에 바로 인력 배치됐다고 연락 주더라. 예전 같으면 채용 공고내고 인력 뽑는데 기본 일주일은 걸리던데, 요샌 입사지원서가 인사팀에 쌓여있다더니 정말 인력이 바로바로 보충되더라.”

 

“아, 그래? 윤기 말 들으니깐 나도 세이프티 관리사무소에 연락해야 된다는 거, 깜빡하고 있었는데 생각났다.
나도 지금 계신 분이 그만두실 예정이라 가사도우미 새로 구해야 되거든.”

 

- “진 형네도? 요새 일자리 없어서 난린데 이상하네. 윤기 형네, 진 형네, 그리고 내가 들은 것만도 세이프티에서 가사도우미 새로 구한다는 집만 다섯 군데가 넘어. 노동 강도도 낮고 페이도 좋은데 세이프티 가사도우미를 그만둔다니... 뭔가 이상하네.”

 

세이프티 내 피트니스 센터를 다니는 정국이가 이상하다며 운을 띄웠다.

그에 진은 세이프티 내 사람들은 확실히 바깥과 무관하게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고 있단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세이프티에 사는 이들은 실업률과 무관하게 평온한 삶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들에게 일이란, 가사도우미가 그만두어 새로 구해야 한다는 정도의 가벼운 일들만이 있을 뿐이었다.


“우리 집 가사도우미 분은, 음, 그 분도 딱하시더라. 남편이랑 초등학생 아들이 급성 수면증이여서 격리시설 보내느라 한 달에 사백만원 이상 병원비로 들어가서 우리 집에서도 일하고, 또 공장 야간 타임으로 투잡이라 그러셨거든, 그간 쉬지도 못하고 하루에 4시간 자면서 두세 개 일 하셨는데... 근데 며칠 전에 남편이 격리시설에서 사망했다는 연락을 받았데. 그리고... 오늘 일 하는 중에 아들도 죽었다는 연락을 받으셨어... 퇴근시키고 일주일 유급휴가 드리긴 했는데... 퇴근하고 문자 왔더라고. 일 그만두겠다고, 당분간 아무 생각 하지 않고 쉬고 싶다고...”

 

- “하쒸, 진형네 가사도우미 아줌마 불쌍해... 근데 급성 수면증인 사람이 죽었어요? 아닌데, 감염자들 잠만 자고 있는 거지 다른 증상 일으키거나 그런 건 없었는데??”

 

“정국이 요새 운동만 하나보구나.
들어보니깐, 요새 급성 수면증이 발병한지 3년 정도 된 환자들이 돌연 사망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데. 정부에서 비공식적으로 조사 중이라던데... 가족들이 검시를 원하지 않는다고 바로 화장 절차 받고 협조를 잘 안 해준다네.”

 

- “그렇겠죠. 죽어서도 볼 수 없고 서류에 사인만 하면 그대로 특수관에 넣어져서 화장터로 가 화장당하는데... 급성 수면증인 사람이 사망했다 하더라도 사망신고서, 화장동의서, 화장 후 처리 보고서 정도로 서류 세 장만 달랑 와서 보내줄 때도 허무할 텐데... 죽은 사람 배까지 갈라보라고 허락해 줄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잠들지 않은 사람들은 이미 3년을 잠든 가족의 격리 시설 병원비를 위해 과하게 희생했을 테니 급성 수면증의 끝이 사망이라는 결과를 원하지도 않을 테고.”

 

정국의 물음에 진이 기본 설명을 해주었고, 진의 말을 받아 남준이이 정국이 맞춤, 디테일한 설명을 해주었다.

 

요새 급성 수면증에 빠진 환자들에게서 돌연 사망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었으며, 급성 수면증이 사실은 잠에만 빠지는 병이 아니라 잠에 빠진 뒤 3년 후 돌연사가 주요 증상인 병이 아니냐는 가설이 나왔다.

의사들의 조심스러운 이러한 가설에 정부에서는 의사협회의 정기 모임을 제한하며 그들의 활동에 압박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이와 같은 가설을 발표된다면, 그간 가족들을 지키기 위하여 급성 수면증에 빠진 이들을 격리 시설에 입원시키고 고가의 병원비를 부담하기 위하여 갖은 희생을 하고 있었던 사람들에게.. 엄청난 반발이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정부에선 의사협회의 이러한 의견을 묵살시켰다고 한다.

 

세이프티는 기득권들이 주로 거주하는 공간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일반인들이 모르는 정보에 밝았다.

 

정말 급성 수면증의 마지막 증상이 돌연 사망이라면... 그간 안락사를 거부하고 가족을 격리 시설에 입원시키고 그 병원비를 부담하기 위하여 노동에 절게 된 자들은... 억울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살아가야 했던 이유와 사랑하는 가족들을 동시에 잃게 되는 것이기에 사회적 파장이 적지 않을 것이었다.

 

나머지 사람들도 요새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더 흉흉해졌다며 자신들의 경험을 보태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 틈에서 태형의 시선은- 화면에 보이는 진을 조용히 따르고 있었다.

 

‘진형은 오늘도 잘생겼네.’

 

알람을 맞추지 않아 페이스 채팅 시간에 겨우 일어났다며 세수만 하고 페이스 채팅에 참여한 진은 방금 일어난 사람 같지 않게 얼굴이 보송해 보였다. 태형은 다른 멤버들의 이야기엔 관심을 두지 않고, 자다 바로 일어나도 잘생긴, 진형 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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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세이프티에 이사 오기 전날인 숙소에서의 마지막 밤.

 

태형이 고백하는 순간부터 의도적으로 태형을 피하던 진이, 오랜만에 태형에게 대화 좀 하자며 그를 자신의 방으로 불러내었다.

 

숙소생활 종료가 결정되고부터, 태형의 눈은 끈질기게 진을 쫓고 있었다. 이제 다시 못 볼 사람을 눈에 새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진의 모습을 눈에 담았었다.

 

진이 자신을 부른 이유가 무엇일지 태형은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요 근래 같은 멤버의 행동이라곤 보기 어려울 정도의 행동을 자주 보였던 태형이다.

진은 그런 태형의 선을 넘는 행동들이 불편했을 것이다.

 

태형은 진형이 자신에게 적당히 하라는 말을 우회적으로 할 것이라 생각했기에, 그의 방에 들어서자마자 일단 자신의 말을, 지르듯 먼저 내버렸다.

 

“미안한데 형. 내가 형 좋아하는 거 그만두고 싶어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이게 어쩔 수가 없는 건데.”

 

 

태형의 말에 진의 고개가 갸우뚱하고 흔들렸다.

긴장하여 자신의 입장을 쏟아내는 태형은, 진의 그런 반응을 파악하고 이해할 여유가 미처 없었다.

 

태형은 훈련소에 입소할 때도 자신보다 먼저 군대에 간 진을 떠올렸다. 그는 진이 훈련소에 입대할 때부터 그에게 매일같이 편지를 썼었다. 진 바라기 김태형은 자신의 입소보다도, 이젠 자신도 군대에 들어가니 그에게 편지를 보내기가 수월하지 못한다는 것이... 그게 아쉬워 훈련소로 들어가는 발걸음이 무거웠었다.

진은 태형의 편지를 바라지 않았겠지만, 태형은 그가 군대에서 자신을 잊지 않고 자신을 조금이라도 생각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회가 될 때마다 그에게 편지를 적었다.

 

제대하기 전 날에도 태형은 오직 진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설레었다. 실제로 그를 다시 보는 게, 정확히 1년 9개월 만이었다.

자유로운 일반인으로 돌아간다는 기쁨보다, 진형을 다시 매일같이 볼 수 있다는 사실이 태형을 들뜨게 만들었다.

 

제대 후 국가 재난 상황에서 그룹 활동을 이어나갈 수 없게 되자 BTS 멤버들은 슬럼프를 겪기 시작했다. 그들이 그렇게 힘겨워할 때, 태형은 팀의 불투명한 미래에 스트레스를 받긴 하였지만... 그를 제일 힘들 게 한 것은 이대로 팀이 해체되면 다신 진을 볼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군대에 다녀와 일 년 여가 흘렀어도 태형의 시선은 여전히 진을 따르고 있었고, 그 시선을- 진은 알면서도 모른 척 하고 있었다.

 

태형의 마음을 알면서도 모른 척 하던 진인데... 그런데 그가 갑자기- 팀이 숙소 생활을 정리하기 전 날, 태형을 자신의 방으로 불러낸 것이었다.

 

“형은 그게 약간, 이해가 안 되겠지만... 인제 이게 진짜거든...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어, 그, 내가 형을 좋아하는 건...”

 

태형은 진에게 다시 한 번 변명어린 말을 꺼내보았다.

진의 방에 들어오기 전에 연습할 땐 술술 유창하게 나오던 준비한 말들이, 이상하게 그의 앞에만 서면 제대로 입 밖으로 나와지지가 않았다.

 

진의 표정이 이상하게 일그러졌다.

태형은 그런 진의 표정에 당황해선, 그와 자신의 관계를 악화시키지 않으려 그간 자신이 했던 노력들을 덧붙여보았다.

 

“진형. 나 진짜, 형 안 좋아해 보려고 술도 마셔 봤고, 어, 그리고 소개팅도 해보고. 아! 취미도 만들어 봤는데 안 됐고... 이것저것 다 시도해 봤었는데 안 된 거라...”

 

숙소를 나가게 되면 이제 더 이상 형을 볼 수 없을 거라는 절망감에 휩싸여있던 태형은, 자신이 그간 그를 잊기 위하여 했던 노력들을 나열하며 말을 잇다보니 그로 인해 받았던 그간의 짝사랑의 설움이 몰려왔는지 점점 고개를 땅바닥을 향해 수그러뜨렸다.

수그려진 태형의 고개와, 위축되는 상대 앞에 있다는 듯이 접혀 말려들어간 그의 어깨는 살짝 떨리기까지 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꽤나 안쓰러움을 유발하게 하였다. 거기에 점입가경. 김태형은 울먹이고 있었다.

 

예전에 형에게 좋아한다 당당히 고백하던 태형은 더 이상 없었다. 진을 바라보며, 아직 변하지 않은 자신의 마음을 알아달란 말을 하긴 커녕, 그간 자신의 행동을 변명하기에 바빴다. 진의 외면으로 자존감이 깎이고 깎여진 태형은, 진의 눈을 똑바로 마주보고 말 할 용기조차, 이젠 남아있지 않았다.

 

태형의 얼굴에서 무언가 떨어져 바닥에 똑-하고 떨어졌다.

그룹 활동이 재개되지 않는 이상(급성 수면증의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 한) 태형은 진을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 생각이 일자 태형은 자신의 눈에 차오르는 눈물을 끝내 참을 수 없었다.

 

“태형아.”

 

진이 그런 태형을 나지막이 불렀다.

 

“..응, 형... 말해요...”

 

태형이 주먹을 쥐고 겨우 대답하였다. 목이 메어 목소리가 제대로 나가지 않았다. 태형은 그의 말을 기다리며 자신의 소매 끝으로 거칠게 눈가를 닦아내었다. 거친 소재의 윗도리를 입고 있던 터라 태형의 눈가는 몇 번의 슥슥 닦임으로도 금세 붉게 일어났다.

벌게진 태형의 눈가. 그의 주먹 쥔 손은 잘게 떨리고 있었고, 그리고 여전히 그의 시선은 아래를 향하고 있었다.

 

진에게 고백하고 거절당한 순간부터, 태형은 진과의 관계에서 아래의 위치였다. 마치 그의 위치처럼 태형의 고개는 아래를 향하고 있었다.

 

“태형아. 우리 내일 숙소에서 나가.”

 

“알아요... 그래서 싫어요...”

 

숙소 생활이 끝난다면 진은 지금처럼 태형을 없는 사람 취급할 것이 뻔하였다. 그렇기에 이사 후 태형이 그가 보고 싶어 어렵사리 먼저 연락을 한다 하여도... 그가 태형의 연락을 받아줄지 알 수 없었다.

 

“어떻게 보면, 우리 그룹 활동 비공식 종료일이기도 하지.”

 

“... 알아요. 나도... 우리 그룹 활동도... 형하고 나 사이도... 오늘로 끝이라는 거... 이제 우린 한 팀도 아니니깐... 더 이상 엮일 일도 없겠죠... 말만 숙소에서 독립하는 거지, 곧 회사 직원들 대규모 정리해고 진행한다는 거 저도 얼핏 들어서 알고 있어요.
급성 수면증... 그거 끝나기 전엔 엔터 사업 재개 할 의향 없다고... 사실상 우리 회사에서 엔터사업 분야는 다 정리하는 거라고... 그러니깐... 형하고 나하고 이렇게 BTS 활동이라도 엮이던 거... 다 끝난 거라고...”

 

태형의 말에 진이 긴 한숨을 뱉었다.

좁은 크기의 방이 아니건만 태형은 진의 한숨 소리를 듣는 순간 숨이 막혀옴을 느꼈다.

그룹 활동 종료라는 말이 그들 사이가 끝이라는 말처럼 들려서... 갑자기 이 방도, 분위기도, 자신의 상황도, 모든 것이 답답해져 나가고 싶었다.

 

“그래. 우리 팀 활동. 이제 끝난 거지. 급성 수면증 치료약이 언제 만들어질지도 모르고, 만약 만들어진다 하더라도 우리가 활동하기 위해선 또 몇 년의 시간이 필요하겠지.
그럼 아마... 그때쯤이면 우리 계약기간은 끝나 있을 거야. 그리고 이미 우린 나이 들어 있겠지...”

 

“... 알아요... 다신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을 거란 것도...”

 

숙소가 정리되면서 멤버들끼리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중 하나가 지금 소속사와 계약이 끝나면 그 땐 자유로운 상태로 상업적인 앨범이 아닌 각 멤버들이 하고 싶은 음악을 넣어 진짜 그들만의 앨범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다.

오랜 시간이 걸려 앨범 하나만 나오는 한이 있더라도 해보자고.

소속사와 계약이 끝난 후, 7명이 개인적으로 모여 상업적인 앨범이 아닌 그들만의 앨범을 만든다는 것은... 해보지 않아도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을 것이란 걸 알았다. 그렇지만 그들은 장난스럽게 죽기 전엔 꼭 마지막 앨범 내보자 말하며 그들의 활동이 끝이 아님을, 서로가 서로에게 다짐시켰다.

 

세이프티 이사 후, 숙소 생활이 정리 되고 얼마 동안은 멤버들끼리 자주 연락하고 서로 챙기고 하겠지만... 그게 일 년이 넘어가고, 삼 년이 넘어가고... 오 년이 넘어간다면...?

 

태형은 그런 것들이 겁이 나 자신도 모르게 요 근래 진에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태형아.”

 

진이 다시 태형을 불러왔다.

태형은 그가 자신에게 끝을 고할 것 같아... 그의 말에 차마 대답할 수가 없었다.

 

“......”

 

“태형아... 난 이기적인 사람이야. 그동안 난... 우리가 하는 이 비즈니스가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

 

“... 미안해요, 형... 나 때문에 형도 불편했죠...”

 

“근데 우리, 비즈니스, 이런 거 다 끝난 관계잖아.”

 

“... 끝난 관계... 하아... 형 좀... 잔인하게 말하네요...”

 

“난 오히려 우리 비즈니스 관계가 정리된 게 마음 편해.”

 

진이 태형의 곁으로 다가오더니 두 손을 들어 태형의 고개를 들어주었다. 올려 진 태형의 얼굴은 눈물로 엉망이었다. 진은 태형의 턱을 두 손으로 붙잡은 채 엄지손가락을 이용하여 태형의 눈물을 쓸어주었다.

 

“난 이제 소속사에 묶인 계약 신경 쓰면서 연애 못 할 이유 없고, 팬들 생각해서 연애 못 할 이유도 없고, 그리고- 연애하는 나 때문에 피해 입을 팀원들 걱정해서 연애 못 할 이유가 없어졌지.”

 

진의 한 손이 태형의 뒷머리를 잡아왔다.

 

그리고,

태형의 두 눈이 놀람을 가득 담고 크게 떠졌다.

 

입맞춤.

 

진이 태형에게 입 맞춰 온 것이다.

 

태형은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멍하니 자신의 코앞으로 다가와 있는 진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잠시 후, 두 사람의 맞닿은 입술이 떨어지고 진의 감긴 눈이 조심히 뜨여졌다. 그리고 숨 쉬는 것도 잊은 태형을 향해 진은-

 

“멍청아. 키스할 땐 눈 좀 감아. 그리고- 숨도 알아서 쉬고.”

 

그 말이 끝나자마자,

진의 얼굴이 다시 태형에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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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숙소를 나오기 전 날부터 비밀 연애를 시작한 태형과 진이다.

물론 이 비밀 연애라는 생각은, 태형과 진, 둘 만의 생각일 뿐이다.

 

진형이 자신과 사귀는 사이라는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 태형은 여전히 진에게 과도한 집착을 보이고 있었다.

 

- 태형아. 나 운동하러 갔다 온다.

 

아침잠이 많은 태형이 아직 자고 있을 거라 생각한 진은, 태형에게 가볍게 자신의 행선지에 대해 문자를 남겼다.

무심한 듯 보이지만 누구보다 세심한 진이, 운동 중 연락이 되지 않는 자신으로 인하여 태형이 혹시라도 걱정을 할까 싶어, 나름 신경 쓴 것이다.

 

지잉-

 

그러나 김태형.

휴대폰 진동소리가 울리자마자 감전된 물고기처럼 자리에서 펄쩍 뛰듯 일어났다.

그리고 곧바로 휴대폰을 확인해 보았다.

 

“아, 찐형 운동가네. 나도 가야지.”

 

진에게서 온 메시지를 확인한 태형은 당연하단 듯이 몸을 움직여 진이 운동하러 간 곳, 지상 층에 있는 피트니스 센터에 가기 위하여 준비하기 시작했다.

 

연예인들의 연예인이었던 김석진이다.

그가 세이프티 단지 내 피트니스 센터에 가기만 하면, 어디서 듣고 오는 것인지 그렇게 사람들이 몰려온다. 김석진만 나타나면- 평소 저녁 시간에도 한가하던 피트니스 센터 내 런닝 머신 위가 사람으로 가득 차고, 한가롭던 피트니스 센터가 북적북적 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여자, 남자 성별을 가리지 않고 진에게 플러팅을 해온다.

 

“내가, 하아... 모르는 새끼가 형 몸 스치듯 만지고 가는 그 꼴을 내가 봤는데, 그걸 보고도 형 혼자 그런 델 보내면... 내가 김태형이 아니지.”

 

운동과는 거리가 먼 김태형이 진 때문에 피트니스 센터에 꼬박꼬박 출석하는 중이었다. 오로지 진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차단하기 위하여 그 싫어하는 피트니스 센터에 발걸음 하는 것이다.

 

 

 

피트니스 센터.

입구에서 일회용 진단키트를 이용하여 급성 수면증 바이러스 감염여부를 확인한 뒤 피트니스 센터에 출입할 수 있었다.

진단키트의 발달로 혈액 한 방울이면 30초 내에 바이러스 감염 여부 결과가 나왔다.

 

“김태형 씨. 급성 수면증 바이러스 검사 음성 나왔습니다. 센터 출입 허가합니다.”

 

태형이 출입구에서 진단기기에서 검사를 끝내자마자 센터 출입구가 열렸다. 세이프티는 단지 내에선 의무적으로 마스크를 착용하여야 했다. 단지 내 주민규칙이었다.

 

휙-

태형은 센터에 들어와서야 마스크를 벗을 수 있었다. 마스크를 쓸 수 없는 피트니스 센터·수영장과 같은 공공시설에선 반드시 급성 수면증 바이러스 검사가 이루어진 음성 판정자만 출입할 수 있었고, 이렇게 바이러스 감염여부를 체크한 후 음성판정을 받으면, 실내 출입 후 마스크를 벗을 수 있었다.

 

태형은 남성 탈의실로 발걸음 하였다. 집에서 입고 나온 겉옷을 자신의 락커에 걸어두고 락커 안에 놓인 자신의 운동화를 챙겨 서둘러 진이 있을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잠깐이라도 느림보처럼 굴었다간, 진에게 쓸데없는 벌레가 꼬여있을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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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태형은 보디가드처럼 진이 가는 곳은 어디든 따라다녔다. 세이프티 내에 있는 피트니스 센터부터, 마트, 카페, 심지어 진의 바깥 활동에도.

시국이 시국인지라 진의 안전을 위하여 붙어 다니는 것도 있었지만- 사실 태형이 진의 보디가드를 자처한 것은, 진에게 다가오는 이들을 죽어도 보기 싫은... 진을 향한 독점욕 때문이기도 하였다.

 

숙소에서 떠나오기 전 날, 그 둘이 사귀기로 한 날부터 김태형은, 언제 소심하게 굴었냐는 듯이, 정말 갑자기 변하였다.

예전엔 형의 주위를 뱅뱅 맴돌거나 진에게 말 한마디 걸기 위하여 수십 번 고민하는 모습이 보였다면, 지금은 진의 주위에서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껌 딱지처럼 붙어 있는다.

태형은 그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짝사랑의 설움을 보상받으려는지 그에게 관심 받길 원하고 그와 모든 것을 함께 하길 원한다.

진이 자신만의 것이 되길 원했으며 그렇게 만들기 위하여 그의 곁에서 조금씩, 조금씩 집착을 키워나가며 진이 그것에 익숙해지게 만들어 나아가고 있었다.

오죽하면 진이 지금 알아서 행선지를 보고하고 다닐까.

 

 

 

“나 내일 윤기랑 인천으로 낚시 가.”

 

진의 말에 태형의 표정이 못마땅한 것을 들은 사람처럼 불퉁하게 변했다.

진이 자신의 시야에서 벗어나는 것을 불안해하는 김태형은 그가 어딜 가든 졸졸 아기고양이처럼 쫓아다니고 있지만... 낚시는... 김태형 성격에 낚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다른 세상의 것이었다.

엽분기 가득한 바닷물이 옷에 튀는 것도, 생선의 비늘이 옷에 묻는 것도, 거기다 낚시를 다녀오면 신발에서 진동하는 비린내 또한... 태형은 낚시에 관련된 무엇 하나 참으며 넘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태형은 어쩔 수 없이 진이 낚시 갈 때만큼은 따라가지 못하고 조용히 보내주고 있었다.

선상에서 끓여 먹는 라면의 낭만도, 대어를 잡을 때 느낄 수 있는 손맛도- 그건 태형에겐 일절 관련 없는 일들이었다.

다행히 지금 살기 어려워진 세상 덕에 진이 낚시를 자주갈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생업을 위한 배낚시가 아닌 취미용 배낚시는 고급 취미로 분류되어 배낚시를 하기 위해선 정부에서 발급하는 일회성 낚시 라이선스를 발급받아 낚시를 나가야 하기에, 아무리 낚시를 좋아하여도 일 년에 많아야 두 세 번 정도밖에 배낚시를 즐기지 못했다.

 

“갈치 낚시야. 내가 갈치 잔뜩 잡아서 갈치조림, 갈치구이, 갈치 요리 잔뜩 해줄게.”

 

태형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진은 그저 내일 낚시 갈 생각으로 흥이 올라 옷 방에서 가방을 꺼내어 와 낚시 용품 이것저것을 챙기기 시작하였다.

 

이 옷이 나은지 저 옷이 나은지 자신의 몸에 대어보는 진에게, 태형은 그의 옷 중에서 제일 오래 되어 보이는 트레이닝복을 손끝으로 가리키며 진이 그 옷을 입고 낚시에 가도록 만들었다.

 

진은 태형과 영화관 데이트를 갈 때에도 이렇게까지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마스크 쓰고 나가야 하니 차려입어도 소용없다며 예전 그들이 광고하였던 휠라 바람막이에 트레이닝복 바지를 입고 나가는 사람이었다.

그 영화란 것이 급성 수면증이 터지기 전에 이미 개봉하였던 영화들을 재개봉 하는 것이라지만... 아무리 본 영화 또 보러 가는 것이래도... 진의 데이트 복장은 데이트 패션이라기 보단, 무슨 옛날 살기 좋았던 시절 집에서 편하게 입고 있던 그 옷 그대로 슈퍼 나가는 듯한... 집에서 입던 옷 그대로 입고 나가는 것 같은 무성의한 행색 이었다.

영화관.

예전에야 흔히 볼 수 있는 곳이었지 지금은 문화생활이 극히 일부 계층에서만 누리고 있는 것들이라 각 도시별로 하나 정도밖에 남아있지 않은, 귀한 문화 데이트 공간이었다.

태형은 데이트를 위하여 한껏 복장, 헤어, 하다못해 향수까지 맞추고 나가는데... 패션에 관심 없는 진은 휠라 트레이닝복 세트에 휠라 운동화를 신고 나가는 것이다.

 

그랬던 김석진이 어디서 이렇게 봐줄 만한 낚시 옷을 사온 것인지, 바람막이, 안에 껴입을 내피, 낚시조끼, 거기에 모자, 선글라스까지. 한 가격 할 만한 세련된 낚시 옷들이 줄줄이 진의 옷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진은 눈치 없이 그것들을 거실 바닥에 펼쳐 두고 태형에게 이게 나은지 저것이 나은지 어떤 옷을 입고 가야 할지 분위기 파악 못하고 신나게 물어왔다.

당연히 그러한 진의 행동에 김태형의 심사가 뒤틀렸다.

태형은 척척 진의 옷 방으로 들어가, 그의 옷 방에서 제일 후져 보이는 연습생 시절에 입었을 것 같은 오래된 옷을 골라준 것이다.

 

태형의 마음을 모르는 낚시광 김석진씨는, 태형이 골라준 후진 옷을 지금 입고 있는 티 위에 그대로 걸쳐보더니 자신은 아무거나 입어도 어울린다며 월드와이드핸썸 어디 안 갔다며 신나게 그 옷들을 다시 개켜 내일 입고 가기 위하여 소파 위에 올려놓았다.

그런 진을 보고, 태형은 숨을 들이켜고 마음속으로 이너피스를 세 번 외쳤다...

 

내일 있을 낚시에서 갈치를 잔뜩 잡아와 맛난 것을 해주겠다는 호언장담하는 진.

태형은 그런 진을 소파에 기대앉은 채 그윽하게 바라보다, 무엇에 동했는지 슬쩍 분위기를 잡기 시작하였다.

 

“형. 난 갈치 말고 다른 게 먹고 싶은데.”

 

미안하지만, 지금 김석진은 낚시 준비로 바쁘다.

김태형이 잡은 분위기, 진이 다시 반듯하게 쫙쫙 피고 있다.

 

“아, 갈치 말고? 태형이 너 원래 해산물 별로 안 좋아하잖아. 웬일이래. 뭐 먹고 싶은데?? 우럭? 문어?? 형아가 다 사다줄게.”

 

눈치 없는 진은 태형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거실 바닥에 늘어진 낚시 용품들을 소중한 것 만지듯 하나하나 들어내 깨끗하게 정리해 나가며, 그에게 뭐가 먹고 싶냐 물었다.

혼자 흥이 얼마나 차올라 있는지, 어시장에서 살 수 있는 엄한 바다 생물 종류를 나열하며 태형에게 이거 먹을래? 저거 먹을래? 하고 제시하고 있었다.

 

“... 후... 내가 먹고 싶은 건, 생선 아냐.”

 

태형이 크게 숨을 들이켰다가 뱉어냈다.

솟구치려는 짜증을 눌러가며, 태형은 다시 한 번 진을 향해 분위기 잡기를 시도해보았다.

그런 태형의 말뜻을- 진은 또 다시 알아채지 못하고... 낚시 용품들에 시선을 고정한 채 핀트가 어긋난 대답을 늘어놓았다.

 

“태형아. 형이 너 먹고 싶은 거 다 사줄 테니깐, 먹고 싶은 거 다 써서 내 휴대폰에 메시지로 보내 놔. 내가 올 때 꼭 사올게.
우리 태형이 먹고 싶다는데 내가 뭔들 못 사오겠어.”

 

끝내 진은 태형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거실에 펼쳐진 낚시 도구에 정신이 팔려 그것들을 손질하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 내가 먹고 싶은 건... 하아... 됐다...”

 

태형은 지금 낚시 도구 관리장인 모드로 빙의한 자신의 애인에게 침대로 가자는 말을 해보았자 좋은 소린 못 들을 것 같단 빠른 판단을 내리고, 한숨을 내쉬며 시도한 수작질을 거두었다.

 

그 후 한참 뒤, 진은 낚시 도구를 다 챙기고 정리한 후에야 태형에게 관심을 주었다...

 

“태형아. 아까 뭐 먹고 싶다 그랬지??”

 

그런 진을 보며 태형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미 타이밍을 놓친 마당에 다시 시도한다고 뭐 달라지랴...

 

“형. 형은 평소 보면 무척이나 세심한데, 애인한텐 무심한 편이야.”

 

태형의 지나가는 말에 진은 ‘내가? 내가 무심하다고?’ 라고 되물으며 자신이 뭐 또 잘못한 것이냐 물으며 태형에게 다가왔다.

 

“오늘 운동하러 갈 때 메시지 보내놨고, 음, 네가 공용 샤워실 쓰지 말래서 피트니스 센터에서 샤워 안하고 집에 와서 했고.
그리고 네가 골라 준 옷 마음에 안 들어도 내일 낚시 갈 때 입고 가기했고... 흐음... 나 오늘 눈치 없이 군 거 없는 거 같은데...?

뭐 먹고 싶다고 했는데 내가 못 알아챈 거??”

 

“... 김석진. 낼 생선 사오지 마라.”

 

“김태형, 너 또 형한테 맞먹지? 이제 아주 뻑하면 김석진이래. 누가 보면 내가 네 친군 줄 알겠다.”

 

“친구여야만 이름 부르나. 애인 사이에도 이름 부를 수 있지.”

 

“너 자꾸 그러면 서로 존댓말 쓰기 시작한다. 진짜로.
존중을 위한 존댓말 쓰기. 어? 어디 한 번 시작 해 봐?”

 

“형이 나한테 존댓말 쓰면, 그것도 그거 나름대로 꼴리겠네.”

 

태형의 맞받아침에 진은 어이가 없단 듯 기찬 소리를 내었고, 태형은 진이 그러거나 말거나 그의 손목을 잡고 끌어와 그를 자신의 품 안에 가두었다.

그런 태형에게 진은 또 눈치 없이 존대말이 서로에게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기 시작하였다.

 

‘김석진. 다른 땐 눈치가 빤하면서 그거 하잔 내 말은 왜 이렇게 못 알아들어...?
에휴, 내가 바보지. 깁석진이 연애 눈치는 고자급인 걸 알면서도... 몇 개월동안 거기에 당해놓고도 뭘 또 기대해서 찔러본 거야.
김석진인데, 우리 진이면... 당연 못 알아듣지...’


연애 눈치 고자 김석진. 말로 분위기 잡기를 시도 하면 못 알아듣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말로 안 통하면... 몸으로 시도 해 볼까?’

 

태형이 진을 자신의 품으로 더욱 강하게 당겨왔다. 말로 안 되면 몸으로!

 

“형. 내일 낚시하러 또 새벽 두시 반에 나가?”

 

태형이 진의 상의 속으로 자신의 손을 집어넣으며 물었다.

시원한 태형의 손이 진의 속살에 닿아오자, 따뜻한 그의 몸이 작게 움찔 떨렸다.

태형의 손이 옷 속으로 들어왔단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진은- 그의 손길에 부끄러움이 일었는지 태형과 맞닿기 직전인 얼굴을 아래로 내려 그의 눈빛을 피하곤,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해주었다.

 

“내일 나 일정 있으니깐, 하면 안 되는데...”

 

그런 진의 대답에 태형의 이마에 인상이 쓰여 졌다.

형의 거절은 태형이 거절했다.

 

태형은 선심 쓴다는 듯한 말투로 그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여주었다.

수줍게 부끄러워하는 진의 모습에 이미 아래가 반쯤 반응하였기에 그를 놓아줄 생각 따윈 없었다.

 

“음, 그럼 형 내일 일찍 나가야 되니깐, 오늘 끝까진 못하겠다.”

 

태형의 속삭임에 순식간에 진의 귀가 빨갛게 물들었다.

그런 진이 귀여운 듯 태형은 진의 귓가를 가볍게 잘근거렸다.

태형의 손이 자연스럽게 진의 상의를 벗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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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방 안 가득 더운 공기가 가득 차 있다.

진은 움직일 힘도 없는 듯 침대에 엎드려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진을, 태형이 옆에서 토닥이고 있었다.

 

“뭐야, 병 주고, 후, 약 줘?”

 

자신의 등을 토닥이는 태형에게 진이 톡 쏘듯 말하였다.

김태형은 끝까지만 안 했을 뿐이지, 진과 또 한 번, 끝을 보았다.

 

“나 다섯 시간 뒤에 나가야 되는데 이게 뭐야??”

 

“형. 얼른 자. 십분이라도 더 자려면.”

 

“애초에 니가-”

 

진은 태형에게 무어라 항의하려 고개를 돌렸다가, 포식한 호랑이처럼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고 있는 태형의 얼굴을 알아채곤, 졌다는 듯이 고개를 젓고 다시 베개에 고개를 파묻어버렸다.

그런 진을, 태형은 사랑스럽다는 듯이 쓰다듬기 시작하였다. 야한 의미의 쓰다듬이 아닌, 잠을 재우기 위한 쓰다듬이었다.

 

“형. 요새 급성 수면증 환자들, 자꾸 돌연사 하는 거 알지...?”

 

태형이 진의 등을 가볍게 토닥이며 그의 잠을 방해하지 않으려 조용하게 말을 이었다.

 

“난 형 없으면 못 살아. 그러니깐 배 오르기 전에 모든 사람 꼼꼼하게 급성 수면증 진단키트 검사 시키고, 그리고 낚시 끝나면 사람 많은 시장, 그런데 들리지 말고 바로 집으로 와.”

 

태형의 손길이 어느새 진의 머리로 올라왔다. 태형이 긴 손가락으로 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의 이마에 쪽-하고 굿나잇 키스를 해주었다. 얼마나 피곤했는지 진은 벌써 잠에 빠져들고 있었다.

 

“요새 분위기가 흉흉해서 그런가... 이상하게 자꾸 불안해...”

 

선잠에 빠진 진에게 태형은 이어, 자동차 사고 나지 않게 조심히 운전하고 다녀와야 한다며 안전운전에 대해서도 당부하였다.

 

급성 수면증 예방에 좋다는 아스피린은, 수술 시 지혈을 방해하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그렇기에 매일 아스피린을 복용하는 사람들은 갑작스런 사고에 가벼운 수술임에도 과다 출혈로 사망하는 일이 빈번하였다. 그렇기에 교통사고와 같은 갑작스러운 사고는, 요즘 같은 때에는 사망률이 높았다.

 

태형은 몸을 들어 침대에서 벗어나 욕실로 향하였다. 곧 그는, 따뜻한 물을 묻힌 수건을 들고 나와, 조심스럽게, 진의 잠이 깨지 않도록 그의 몸을 정성스럽게 정돈해주었다.

 

 

 

가질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던 사람이었다.

포기하려 했지만 도저히 포기할 수 없어 상처투성이가 되면서도 마음에 품고 있던 사람이었다.

 

진.

그는 태형에게 존재의 이유, 삶의 이유, 온갖 수식어를 대어도 아깝지 않은 사람이었다.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그를 갈망하다 수없이 상처받았던 태형이었다. 왜 난 남자일까 부터 시작하여 왜 난 그와 같은 그룹이 되었을까, 그는 왜 날 사랑해주지 않을까, 그리고... 자신은 왜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까... 무수히 원망하고 자책하고... 아파하였었다.

그런 태형을, 진은 절망의 끝에서 구원해주었다.

 

그들을 옳아 매었던 모든 속박들이, 사라지는 순간에.

포기하고 싶어도 포기가 안 되던 그가, 자신에게 다가와 주었다.

 

그런 그를, 태형은 잃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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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고요한 격리소 병동 건물.

급성 수면증 환자들이 미동도 없이 각 베드에 묶여 잠들어 있다.

격리소 건물은 건물 기둥을 제외하고는 벽이 존재하지 않는다. 국제대회 경기장만한 한 층이, 기둥들만 제외하곤 특수 베드로 꽉 채워져 있었다.

 

사무실 안.

병동 안 모습을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는 수십 개의 모니터들과 관리 시스템의 작동 버튼들이 사무실의 모든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마치, 우주선 안의 무수한 기계로 감싸인 공간처럼 보였다.

 

사무실 안에는 야간 당직자들이 각자의 맡은 구역을 관리하며 바쁘게 컴퓨터로 작업을 해나가고 있었다.

 

 

위이잉-

 

한참 컴퓨터를 보며 작업중이던 작업자의 화면에 빨간색의 응급 표시가 떴다.

빨간색의 응급 표시에는 ‘호흡 정지. 사망 추정.’이라는 메시지가 떠 있었다.

그 메시지를 본 컴퓨터 주인은 짜증 섞인 한숨을 쉬곤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야, 또야? 아 나 진짜. 요새 힘들어 뒤지겠네.”

 

“에휴... 그러게요, 김대리님. 죽으려면 병 걸리자마자 죽지... 3년 동안 남은 가족 피 다 빨아먹고 인사 한 마디 안 해주고 이렇게 가면...”

 

A302동 건물의 6층 당직자 두 명이 관리 시스템에서 온 긴급 메시지를 확인하곤 방호복을 입기 위하여 소독시설을 통과하였다.

 

요새 들어 갑자기 늘어난 급성 수면증 환자의 돌연 사망으로 인해 환자들을 보호, 관리하는 게 주 임무인 병상 관리사의 업무가 급작스럽게 과중되고 있었다.

그들은, 갈수록 늘어나는 사망자들로 인하여 피로가 누적되어 꽤나 날카로운 상태였다.

 

 

 

“팀장님. 우리 긴급 증원 요청했죠?”

 

두 명 중 키가 큰 사람, 김대리리가 팀장에게 무전을 보내었다.

긴급 메시지가 발송된 환자에게 방호복을 입고 이동하면서, 헬맷 안에 착용한 무전기로 상사에게 지난주에 상부에 요청한 팀내 긴급 충원안에 대하여 확인해 본 것이다.

 

삐빅-

 

- “김대리. 급성 수면증 병상 관리사가 ‘주세요.’ 하면 뚝딱 나오는 건 줄 알아? 지난주에 요청했으니깐 증원 계획서 올리고, 예산 편성 받고, 인원 뽑아서 교육해서 내려오려면- 내가 볼 땐 최소 6개월 이상 걸린다.”

 

“하아, 팀장니임~ 저 진짜 피곤해서 죽을 것 같아요. 어제 야간 근무 때 저 시체 몇 구 날랐는지 아세요? 격리케이스로 옮겨서 화장터로 옮기려면 손이 얼마나 가는데요. 온 몸이 근육통에 초과 근무 하느라 체력 바닥에. 이건 아무리 돈 많이 준데도 나 살려면 때려치우고 나가야 될 판이라고요.”

 

“맞아요, 팀장님. 우리 구역에서만 어제 사망자 열 명 나왔어요. 평소처럼 노동 강도 높은 업무에, 시체 열구 격리케이스에 옮겨서 화장터로 보내고!! 하... 어제 우리 근무 시간 또 15시간 넘었어요. 저랑 김대리님 일주일 내내 하루에 5시간도 못자고 있다고요.”

 

삐빅-

 

- “알지, 알지. 근무 스케줄 관리하는 게 난데. 설마 모르겠어? 이번달 초과 근무 장난 아니여서 너네 이번 달 월급 쩔겠는데? 하하, 야야, 숨소리 가라앉혀. 흥분하지 마. 농담이야. 그렇잖아도 병상 관리자 충원 요청하면서 상부에 사망자 처리하는 인원만이라도 긴급하게 지원해달라고 요청한 상태니깐- 너네 초과 근무, 길어야 일주일 안엔 끝날 거야.
요새 실업난 장난 아니잖아, 병상 관리사는 관련 전공자 뽑아서 직업 교육시키고 업무 매뉴얼 숙지시키고- 시간 많이 걸리잖아. 그 대신 사망자 처리만 전담으로 맡는 업무자는 전공무관으로 힘 좋고 일 잘하는 사람으로만 뽑아서 단기 교육으로 끝나니깐.”

 

“팀장님. 저희 진짜 일주일만 더 참을 거예요. 일주일 뒤에 인력 충원 안 돼 있으면, 저 사직서 내고 잠수 탈겁니다.”

 

병상 관리사들은 그들의 근무 환경이 극악하다는 푸념을 늘어트리며 그들의 무전과 연결된 팀장에게 자신들의 근무 환경을 조속히 개선시켜주지 않으면 사표를 낼 거라는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는 사이, 방호복을 입은 두 명이 탄 엘리베이터는 A302동 건물의 6층에 도착하였다.

 

[띠잉- 6층 도착하였습니다. 문이 열립니다.]

 

엘리베이터 내에서 기계음이 들리고, 그들은 평소처럼 사망자를 옮길 이동용 베드를 밀며 격리소로 발을 들였다.

잠든 자들의 숨소리만 들리는 격리소는, 언제나 처럼 소름 돋게 기분 나빴다.

이동용 베드를 밀던 이주임이,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었다.

 

으으-

 

“?? 김주임님?”

 

“뭐 임마.”

 

“김대리님. 지금 저한테 뭔 말 하지 않으셨어요? 뭐지? 지금 무슨 말소리 같은 게 들렸는데.”

 

“내가? 내가 무슨 말을 해? 무전 온 거 아냐?”

 

“삐빅 소리도 안 들렸는데요? ... 제가 잘못 들었나 봐요.”

 

“야, 가뜩이나 피곤해서 신경 날카로운데 무서운 소리 좀 하지 마. 내가 요새 매일 시체 열구씩 보다보니깐 안 믿던 사후세계도 믿게 되고, 귀신도 믿게 되고, 하여튼 시발, 무서우니깐 그러지 말라고. 여기 다 잠든 사람들인데 뭔 소리가 나. 여긴 귀신 소리 아니면 소리가 들릴 일이 없어.”

 

“아 진짜. 무슨 귀신 이야길, 김대리님 그런 이야기 할 때마다 제가 더 무서워요. 다른 이야기해요. 분위기 환기 되게. 저 이런 이야기에 디게 약하단 말이에요.”

 

이주임이 이번 달 예상되는 월급 주제로 재빠르게 대화 주제를 환기시켰다. 요즘 같은 어려운 시대에 무서울 땐, 잔업수당 빵빵하게 나오는 월급 이야기가 무서움을 이기는 데 최고로 효과적이었다.

 

드르르륵-

그들이 끄는 이동식 베드의 바퀴 소리가 다시 격리실 안에 울렸다.

 

그들은 곧 경보음이 울린 베드 앞에 도착하여 환자가 사망하였는지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작업을 거치기 시작하였다.

 

“대리님. 제가 이 환자 사망 확인으로 동공반응이랑 다른 거 확인하는 작업하는 동안, 사망자 본인 확인 좀 해주시겠어요?”

 

급성 수면증 환자는 본인 확인을 위하여 환자 넘버가 발바닥에 찍혀있었다. 화상 자국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용하여 발바닥에 넘버를 새겨 넣은 것이다.

 

“어. 이주임. 매번 하던 대로. 오키.”

 

김대리는 사망자의 발바닥에 찍혀 있는 환자 넘버를 패드에 입력하고는, 패드에 뜬 차트에 적혀 있는 본인 확인용 특징을 비교해가며 사망자가 진짜 ‘김철수’씨인지 확인하는 작업을 거쳤다.

환자의 가족이 작성한 본인 확인용 특징을 사망자와 비교하면서, 엄한 사람에게 ‘김철수’씨의 넘버가 찍힌 것은 아닌지 확인하며 최종적으로 사망자와 차트 상의 인물이 동일 인물임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김대리는 익숙하게 곧바로 패드에 사망신고서를 띄워 사망인의 사망시각과 사망 선고인을 기입하여 사망자의 화장을 위한 사망신고 결제를 상신하였다.

 

크으으-

 

갑자기 들려온 목울대를 거칠게 긁는 듯한 신음소리에 사망자 처리 작업을 진행하던 두 사람의 손이 허공에 뚝- 멈추었다.

두 사람은 고개를 들어 서로를 바라보며 눈을 맞추었다.

 

“김대리님... 지금, 제가, 잘,잘못 들은 게-”

 

“아니야. 이주임. 나도 들었어.”

 

김대리는 급하게 패드를 제자리에 놓고, 그들의 소속 사무실에 무전을 쳤다.

 

“A302-06. 김동우 대리입니다. 특수 상황 발생하여 긴급 인력 요청합니다.”

 

삐빅-

 

- “뭐야, 김대리. 충원 인력 다음주면 온다니깐. 자꾸 이러기야?”

 

“팀장님. 장난 아닙니다. 지금 A302-06구역에서 신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오늘 근무자, 이상원씨 연차로 저랑 이주임 둘 뿐이잖습니까. 확실히 저희 둘 모두, 신음 소리를 들었습니다.”

 

삐빅-

 

- “뭐야, 진짜. 너네 나 현장에 내려가게 만들려고 수 쓰는 거지? 내가 그런다고 내려갈 거 같아? 나도 지금 사망신고 관련 결제 올라온 거에 각종 서류 작업이 산더미야. 나도 바빠서 미치기 일보 직전이라고. 사람 그만 엿 먹이고, 빨리 일하던 거나 마무리해.”

 

으그극

 

“팀장님! 장난 아닙니다. 소리 난 곳 일단 저희가 먼저 확인하고 있겠습니다. 혹시 모를 비상사태 대비하여 가드와 추가 인력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 “너네 진짜-”

 

크으윽그!!

 

갑작스레 울린 큰소리에 무전기 반대편에 있는 팀장의 목소리가 뚝- 멈추었다.

 

- “뭐야, 씨발. 진짜야? 지금, 이런, 씨발. 지금 환자 깨어난 거야??”

 

“하아, 팀장님. 지금 팀장님이 흥분하시면 어쩝니까. 저랑 이주임이 환자 상태 체크하고 있을 테니 가드와 추가 인력 보내주세요. 보통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발작하는 경우가 많으니 의료진 포함한 인력으로요.”

 

김대리는 자신보다 더 흥분한 팀장님을 진정시키며 이주임과 함께 소리가 난 쪽으로 걸음을 옮기었다.

 

크으르릉

 

그들이 있던 사망자가 있던 곳에서 30미터 떨어진 위치의 베드에서 누군가가 특수 베드에 묶인 채로 몸을 경련하듯 떨고 있었다.

 

그리고, 발작하듯 몸을 떨고 있는 그 급성 수면증 환자는-

 

초점을 잃은 눈동자를 한 채였다.

 

삐빅-

 

- “김대리. 깨어난 환자, 확인 해봤어?? 뭐야? 진짜 깨어난 거야?”

 

“... 팀장님...”

 

삐빅-

 

- “어, 김대리. 지금 CCTV로 자네들 보고있어. 뭐야, 왜 이렇게 환자 베드가 떨려?? 발작중이야? 의식은?? 지금 자네들이 CCTV 가리고 있어서 잘 안 보여. 일단 지금 특수팀 출동했으니깐 잠깐만 거기서 대기해. 괜히 환자한테 손댔다가 환자 죽으면 너네들이 다 뒤집어쓰니깐.”

 

3년 동안, 급성 수면증에 빠진 환자 중, 깨어난 케이스는 전 세계적으로 0건이었다.

급성 수면증 환자가 사망할 때 조차, 그들은 잠자다 조용히 사망하였다. 이렇게 환자가 눈을 뜨는 경우는- 그들이 알기엔 처음이었다.

 

“어...? 어?”

 

특수 베드에 묶인 채, 멍한 눈으로 전신을 떨며 발작 중인 환자에게 김대리가 정신이 팔렸을 때-

 

이주임이 겁에 질린 듯, 떨린 목소리를 내었다.

그런 이주임의 옆에서, 김대리는 깨어난 환자에 대한 생각에 빠져 이주임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하였다.

 

삐빅-

 

- “이주임! 야. 너 왜 그래?? 뭐야. 야!! 이주임!!!”

 

무전기에서 팀장이 소리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서야 김주임은 정신을 차리고 바닥에 주저앉은 이주임에게로 시선을 돌리었다. 이주임은 바닥에 주저앉아 잔뜩 겁에 질린 눈을 하고 있었다.

 

“이주임. 사람 발작하는 거 처음 봐? 뭘 그렇게 겁먹었어??”

 

김대리가 이주임이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주었다. 이주임은 천천히 손가락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김대리가 내민 손을 잡은 것이 아니라, 덜덜 떨리는 손을 들어 검지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뭐야. 뭘 보고 그리-”

 

김대리가 이주임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다-

 

말을 멈추었다.

 

삐빅-

 

- “야!!!! 너네 거기서 빨리 나와!!! 당장!!!! 야 이 새끼들아!!! 정신 차려!!!!”

 

무전에서 팀장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러나...

 

김대리와 자리에 주저앉은 이주임은- 그대로 자리에 못 박힌 채 움직일 수 없었다.

 

“....”

 

삐빅-

 

- “빨리 나오라고 이새끼들아!!!!!!!!!!!!!!!”

 

팀장이 다급하게 무전에 대고 외치었다.

 

“아...”

 

김대리의 입에서 떨리는 소리가 겨우 터져 나왔다. 무전으로 소리치는 팀장에게, 알겠다 대답하고 이곳에서 빨리 도망쳐야 한다는 것은 머리론 이해했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이 있는 A302-06구역의, 900명의 환자 중 절반 이상이-

 

무표정으로,

초점 없는 눈을 뜨고 있었다.

 

위이이잉-

시설에 사이렌같은 비상경고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하였다. 동시에 일정한 간격으로 벽에 붙어 있는 경고등이 빨갛게 번쩍이기 시작했다.

 

비상사태였다.

시설에 근무 중인 작업자들이 안전 구역으로 대피해야 할 상황일 때에나 울리기로 되어있는 경고 시스템이 발동되었다.

 

삐빅-

 

- “얘들아 제발 정신 차려. 긴급 보고 올라왔어. 당장 시설 폐쇄 들어가야 해. 눈 뜬 환자들, 순식간에 괴물로 변해. 씨발. 뭔 개소린가 싶겠지만, 설명할 시간이 없어. 빨리. 제발 빨리 거기서 도망쳐.”

 

팀장이 다급하게 굳어있는 두 명에게 사정하였다.

 

크으르아!

 

그와 동시에 격리소 안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목울대를 강하게 긁는 듯한, 동물 울음소리 같은 소리가 퍼지기 시작하였다.

 

“도, 도망, 대리님. 어서-”

 

겨우 정신을 차린 이주임이 풀린 다리에 힘을 주려 노력하며 잡고 있는 김대리의 바지가락을 흔들었다.

 

김대리가 눈물범벅인 상태로 이주임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 순간.

 

덜그덕, 덜그럭- 쿵쿵-

 

그들의 주변에 있는 눈 뜬 병자들이 갑자기 발버둥을 치기 시작하였다.

 

쿠웅-! 끼익 그륵-!!

 

눈 뜬 병자들이 누워있는 특수 베드가 격렬하게 흔들리며 그들이 침대 밖으로 나오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었다.

 

 

 

 

 

*****************************************

 

 

 

 

12.

 

그 날의 아침은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겉으로 보기엔.

잠에서 깬 태형이 인상을 구기며 침대 위 이불들을 발로 찼다.

그런 날 있지 않은가, 잠에서 깬 뒤 꿈은 기억나지 않는데 자신이 꾼 꿈이 기분 나쁜 꿈이었단 것은 인지하고 있는 날. 태형에겐 오늘이 그러한 날이었다. 자신이 꾼 꿈 내용이 정확하게 무엇이었는지 기억나진 않았지만 눈 뜨자마자 느껴지는 기분 더러움에 태형은 엄한 이불에 화풀이를 하고 만 것이다.

 

진이 새벽에 낚시를 나갔기에 홀로 침대에서 깨어난 태형은, 텅 비어있는, 휑하게 비어있는 자신의 옆 빈자리에 기분이 더욱 저조해졌다.

태형은 발로 차여 바닥에 떨어진 이불에 시선도 주지 않은 채, 그대로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을 지나 주방으로 향하였다.

 

알 수 없는 기분 나쁨에 잠식당한 자신을, 머리가 아플 정도의 차가운 얼음물을 마셔 정신이 확 들 수 있도록, 이상하게 불안한 마음을 가시게 하기 위해 차가운 얼음물이 있는 주방으로 향한 것이다.

 

째앵-!

태형은 자신의 손에 들린, 세로로 금이 쩌억- 가 두 동강으로 쪼개진 사기 컵을 어이없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손잡이가 떨어진 것도 아니고 칼로 자른 듯 세로로 반이 뚝 깨져있었다.

 

“아니 이거, 내가 뭘 했다고 깨지냐...? 아니 난 그냥 컵 잡으려고 손만 뻗은 건데...”

 

속에서 움트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물리치고자 정수기에서 물을 떠 마시려던 차에, 태형이 집으려 손을 뻗던 컵이- 손이 닿지도 않았는데 쨍-하고 갈라지더니 세로로 두 동강이 났다.

 

“아, 하필, 아, 이거 진형이 좋아하는 컵인데.”

 

태형은 깨져버린 컵을 들어 확인해 보았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살펴본다 한 듯 깨져버린 컵은 다시 붙을 수 없었다. 그 컵은 진이 아끼던, 두 사람의 커플템 이었다.

지금은 폐쇄된, 귀여운 놀이동산 캐릭터가 들어가 있는 커플 머그컵. 귀여운 것을 좋아하다 못해 사랑하는 김석진을 위해 태형이 백일기념으로 준비한 선물 중 하나였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사소한 컵에서부터, 진의 손가락에 끼워진 커플링까지. 태형은 진과의 백일기념일에, 할 수 있는 모든 신경을 쏟아 부어 진의 주변을 자신으로 가득 채워 놓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커플 템으로.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태형의 주변도 진과의 커플 아이템으로 가득 차 있단 말이었다.

 

“형한테 조심하라고 전화 해야겠다. 뭔가 조짐이... 안 좋아.”

 

태형은 거실에 충전시켜 놓았던 휴대폰을 찾았다.

아침부터 불안한 게 오늘은 특별히 더 안전운전 하라 말해주고 싶었다. 아스피린 복용자는 수술 시 출혈이 커 사고가 나면 위험했기에 이런 때일수록 조심에 조심을 기해야했다.

 

지잉-

 

진에게 연락하기 위하여 휴대폰이 놓여 진 소파로 다가가자, 주방에선 들리지 않던 휴대폰 진동소리가 느껴졌다.

태형은 자신에게 이 시간에 올만한 연락이 없기에 고개를 갸우뚱 해보이곤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진은 낚시에 나가면 낚시가 끝나기 전까진, 웬만해선 연락이 닿지 않았다.

 

“여보세요?”

 

리더인 남준에게 온 전화였다. 태형이 여유롭게 전화를 받았다.

 

- “태형아. 진형은? 윤기 형은? 연락 됐어???”

 

어제 저녁, 단체 카톡방에 낚시하러 간다며 애처럼 온갖 자랑을 늘어놓던 진 덕분에 멤버 모두가 윤기와 진이 배낚시에 가기 위하여 오늘 새벽에 출발한단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 6시쯤이니깐, 아마 이제 낚시 끝날 때 쯤 됐을 걸요.”

 

- “야 이 새끼야! 너 지금 무슨 상황인지 몰라? 왜 이렇게 여유로워?? 형들한테 빨리 연락해. 집으로 오고 있는 중이면 무슨 일이 있어도 집까지 밟으라고 해. 아직 배 위면... 일단 선착장에 정박하지 말고 대기하라면서 바깥상황 살펴보고 배 정박시키라 그래. 지금 상황 굉장히 안 좋으니깐.”

 

“?? 형 왜 그래요? 지금, 상황이... 안 좋아요...?”

 

태형이 귀에 대고 있던 휴대폰을 살짝 떼어 휴대전화를 살펴보았다.

 

수십 통의 부재중 전화와, 수백 개의 톡, 그리고 수십 개의 메시지.

 

“뭐야, 뭔 연락이 이렇게-”

 

- “야. 김태형. 너 지금 무슨 상황인지 아직 파악이 안 됐나본데... 하... 너 지금 집이지? 지금 일어난 거야?”

 

“네. 아니 형 지금 무슨-”

 

- “빨리. 그럼 지금 빨리 티비 틀어서 속보 뜨는 거 봐봐. 그리고 진형이랑 윤기형한테 메시지 지속적으로 남겨보고. 그리고... 지방에 계신 부모님... 연락 해봐... 너 절대, 밖에 나가면 안 돼. 지금 누가 누굴 구하고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야. 절대, 밖에 나가지 마. 그리고 세이프티는 보안이 철저하니깐, 노리는 사람이 많을 거야. 누가 찾아와도 절대로! 문 열어주지 마!!”

 

남준이 다급하게 내뱉는 말들이, 이해되지 않아... 태형은 그저 “네.”라는 대답을 하며 전화를 끊을 수 밖에 없었다.

 

‘누가... 누굴 구해...?’

 

잠시 멍하니 정신을 차리지 못했던 태형은, 이내 머릿속에 진과 부모님을 떠올리고 서둘러 티비를 켰다.

 

[국가 비상사태입니다. 모든 국민들은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신 분들은 외부인이 침입할 수 없도록 모든 문과 창문을 철저하게 단속하시고 정부에서 다음 지침을 내릴 때 까지 조용히 안전한 공간에서 대기하시기 바랍니다. 비상시를 대비하여 라디오를 준비해주시고 전력이 끊길 시를 대비하여 건전지 등을 준비합니다. 그리고 이 사태가 장기 사태로 돌입 할 가능성이 있으니 식수와 식량을 확보하십시오.]

 

태형은 티비에서 나오는 화면들이 이해되지 않아 미간에 주름이 지어졌다.

 

 

도둑질과 폭력, 살인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

사람이 사람을 쫓아 이로 잔인하게 물어뜯어 죽인 후 살점을 뜯어 먹는 장면.

사람들끼리 뒤얽힌 뉴스 속 장면은,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비명을 지르고 도망치는 사람을 잡아, 그대로 이로 물어뜯어 공격하는 사람들을- 뉴스 앵커는 좀비라 일컬으며 절대 좀비에게 물리면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었다.

 

“이게... 대체... 뭐야...?”

 

태형은 뉴스에서 나오는 화면을 믿을 수가 없어 두 손으로 머리를 쥐었다. 티비 화면에는 각 도시들을 봉쇄한 상태이지만 사태가 급작스럽고 걷잡을 수 없게 퍼지는 중이므로 군 병력을 투입할 수 없는 지경이라며, 강압적으로 이동을 제어할 수 없으니 도시를 방어할 수 있는데 한계가 있다며 최대한 지역 간 이동을 자제하고 안전구역으로 대피하란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정부에선 당장 사태를 진압할 순 없지만 각자 대피해 있으면 최대한 빠른 시일에 군 병력을 재정비하며 구조 활동을 시작하겠다며 안전 수칙을 읊어주고 있었다.

 

티비 속 사람들은 더 이상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번 사태의 원인은 좀비였다. 좀비라 불리는 사람들은 눈은 초점이 없었으며 말도 하지 못했다... 문이 닫히면 문고리를 돌리면 된다는 간단한 인지자체도 하지 못하는 듯 했다.

좀비는 정말, 식욕만 살아 있는- 사고 자체가 없는 듯, 괴물 그 자체였다. 그들은 오로지 살아 있는 사람을 쫓아... 물어뜯어 먹는 것만이 숙명인 듯 사람을 향해 공격적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여러분. 급성 수면증에 빠진 사람들이 깨어났습니다. 아니, 이들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닙니다. 오직 식욕이라는 본능만이 남아있습니다. 그들은 말을 하지 못 합니다. 주변에서 말이 막힌 사람이 있다면 당장 그 사람을 결박하여 격리시키십시오. 그들은 오직 식욕만 남아있는 괴물입니다. 사람을 섭식의 대상으로만 인식하여 무자비하게 공격합니다. 급성 수면증에 빠졌다 깨어난 이들은 사고가 불가능하기에 동물처럼 행동합니다. 문을 열거나 도구를 사용하거나 하는 고차원적인 사고는 하지 못하니 집으로 대피하시어 문을 모두 잠그고 창문을 커텐이나 신문지로 덮으십시오. 영화에서 존재하던 좀비와 유사한 존재로 보시면 됩니다. 급성 수면증에 빠진 이들이 주변에 있다면 곧 이들과 같은 괴물로 깨어날 확률이 높으니 당장 몸을 결박시키고 격리시켜두세요.]

 

태형은 부모님과 진에게 번갈아 전화를 해보았지만...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받아. 엄마, 아빠... 김석진! 제발 받으라고!!”

 

태형은 무언가 잘못되고 있음을 느끼고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제발, 제발... 그의 입에선 제발이란 말만 주문처럼 계속해 흘러나오고 있었다.

 

[급성 수면증에 빠진 격리자가 깨어났습니다.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그들은 더 이상 가족, 친구가 아닙니다. 깨어난 격리자는 이성과 사고가 불가능한 괴물입니다. 마치 영화에 나오는 식욕만 살아 있는- 더 이상 사람으로 부를 수 없는, 그런 좀비 같은 상태인 것입니다. 다행히 급성 수면증에 빠졌다 깨어난 이들은 잠든 지 3년이 다 된 상태기에 그들 몸의 근육이 상당부분 소실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이런 좀비들은 뛰거나 걷거나 하는 움직임이 불가능하기에 위험도가 낮습니다. 그래도 이 좀비에게 물리면 동일한 증상에 감염되기에 절대적으로 조심하여야 합니다.

여러분. 문제가 이리 심각해진 것은 이 깨어난 좀비들에게 물린 사람들 때문입니다. 급성 수면증에 빠졌다 깨어난 이 좀비 같은 이에게 물리면, 물린 사람이 7시간도 되지 않아 그와 같은 좀비로 변합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급성 수면증에 빠졌다 깨어난 좀비에게 물린 사람은 그와 같은 좀비로 7시간 내에 변합니다.

여러분. 깨어난 자들에게 물려 좀비가 된 자들, 이런 좀비가 무척이나 위험합니다. 깨어난 좀비에게 물린 사람은 좀비에게 물리기 직전까지 활동하고 있던 사람이기에 운동 능력이 일반인과 동일합니다. 3년 동안 잠들어 있다 깨어난 좀비들과 다르게 이들은 걷거나 뛰거나, 힘을 써 잡기, 이로 물어뜯는 턱의 힘이 굉장합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은 이 병이 최초 발병한 히말라야 산맥 부근에서 어제 처음으로 보고되었다는 속봅니다. 우리 정부는 이와 같은 정보를 입수하고 오늘 아침 긴급 경계령을 내렸지만 이미 밤사이 급성 수면증 격리 시설에서 좀비가 깨어나 방호복을 입은 직원을 물어 병의 전파가 시작되었고 또한 집에서 개인적으로 관리 중이던 급성 수면증 환자에게 물린 가족들이 거리로 나와 갑자기 발병하면서 병의 전파가 급속도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안타깝지만 현재 주요 도시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진압이 불가능한 상태에 접어들었습니다.]

 

태형은 연달아 나오는 방송의 장면들을 보며 손끝이 덜덜 떨려왔다.

급성 수면증 환자를 격리해두는 격리소는 도시와 먼 지방에 주로 지어졌다. 초기 급성 수면증 환자들은 거의 정부의 권유로 격리소에 수용되었다. 지금 좀비라 불리는 저 깨어난 자들은, 혹은 깨어난 자들에게 물려 그들과 같은 좀비가 된 자들은... 해남에서부터 시작되어 하룻밤이 지나기도 전에 서울로 전파된 것이었다.

 

“빨리, 서울은 그나마 아직, 진이라도, 아, 제발.”

 

태형은 연락이 되지 않는 부모님과 동생들에게 메시지를 남기고 다시 진에게 전화를 시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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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윤기와 진은 만선의 꿈을 가지고 낚시 배에 올랐지만, 이상하게도 오늘따라 물고기가 보이지 않았다.

 

“형. 오늘은 텄어요. 순 놀래미만 올라오네요.”

 

윤기가 낚시대의 릴을 감으며 낚시줄을 거둬들였다.

그런 윤기를 따라 진도 낚시대를 거둬들였다. 오랜만에 온 낚시라 잔뜩 기대했던 두 사람은, 생각보다 적은 수확물을 보며 아쉬움의 푸념을 시작했다.

 

“하아... 나 오늘 생선 많이 잡아 가기로 했는데...”

 

진이 잡은 물고기를 담아 놓은 통을 보며 물고기를 세기 시작하였다. 윤기와 자신. 둘이서 잡은 물고기는, 그들이 새벽이슬을 맞으며 온 보람도 없게, 고작 다섯 마리였다.

물론 중간에 문어라면도 끓여 먹었고, 놀래미 회도 먹긴 하였지만... 그래도 배낚시를 온 것치곤 성과가 약소하였다.

 

“잡아 가기로? 누구한테요? 김태형이요?”

 

윤기가 진의 혼잣말을 기어코 알아듣고 아는 체를 해온다.

그런 윤기의 말에 진의 고개가 퍼뜩 위로 들린다.

마치 못 들을 걸 들은 사람처럼, 놀란 표정이다.

 

“어?? 아, 어. 태형이. 태형이 나랑 같은 동에 살잖아.”

 

누가 보아도 부자연스럽게 말을 잇는 진.

윤기는 그런 진을 보며 픽-하고 웃어보였다.

마치, 귀여운 거 본 사람처럼.

 

“그렇죠. 형이랑 태형이 그냥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사는 거 뿐이죠.”

 

알면서도 모르는 척, 모르는 척 같기도 하면서 아는 척 같기도 하는 말을 내뱉는 윤기를 보며 진은 그가 뭔 갈 알고 있는 것인지, 아리송하여 괜히 눈치를 보며 주제를 다른 것으로 돌려버렸다.

 

“이제 집에 가서 한숨 푹 자자. 선장님이 쾌속선처럼 빠르게 운전해주신다고 선장실에 들어와 앉으래.”

 

“알겠어요. 뭍에 가는 동안, 잠깐이라도 눈 붙여야겠어요. 낚시 이거, 체력 소모 장난 아니야.”

 

윤기는 알면서도 진의 말돌림에 넘어가 주었다.

 

진과 윤기는 선장실에 들어가, 그 곳에 있는 기다란 의자를 각각 차지하고 앉았다.

 

치직-

- “용궁호, 용궁호. 여긴 일출호다. 용궁호 듣고 있나??”

 

조용한 조종실 안에 배 안에 달려 있는 무전기가 울리기 시작하였다.

 

“어, 김씨. 오늘 작업 없다면서 배 끌고 나왔나보네?”

 

치직-

- “용궁호. 빨리, 라디오. 도망,”

 

무전이 상태가 고르지 않은지 상대의 말이 중간 중간 끊기었다. 선장님이 무전을 친 상대방을 다시 불러보았지만... 일출호의 선장 김씨에게서는, 다시 무전이 오지 않았다.

 

“뭐여. 일본 또 지진 나서 쓰나미라도 오는 거 아니고서야 이렇게 급하게 난리칠 사람이 아닌디.”

 

선장님이 선장실에 있는 라디오를 가져오더니 전원을 켜고 주파수를 이리저리 돌려보기 시작하였다.

 

치지직 속보, 칙- 대피, 지직-

 

전파가 잘 닿지 않는지 라디오도 드문드문 끊기며 제대로 말을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잠을 자려 기대 누웠던 윤기가 자리에 일어나 제대로 앉았다. 다른 배에서 온 무전 내용과 방금 끊기듯 들려온 라디오의 말을 들으니, 오던 잠도 달아난 것이다.

 

“혹시... 폭동이나 전쟁 같은 거 일어난 거 아닐까요...?”

 

윤기가 조심스레 운을 띄워보았다. 선장은 윤기의 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기에 인상을 쓰며 고개를 끄덕여보았다.

그들은 지금 육지에서 일어나는 일을, 전혀 상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잠들어 있던 자들이...

괴물이 되어 깨어나 같은 사람을 뜯어 죽이고 있단 것을... 그리고 그 괴물에게 물린 자들이... 일정 시간이 지나 그와 같은 괴물로 변한단 것을...

 

“10분만 더 가면, 휴대폰도 사용할 수 있을 거요. 지금은 통화권 이탈지역이라 사용이 불가능하지만 조금만 더 가면 되오. 그 땐 라디오도 끊이지 않고 잘 들릴 테니... 잠깐만 기다려 주시오.”

 

선장의 말에 진이 알겠다고 대답하고 배 안에 흩어두었던 자신의 짐을 챙기기 시작하였다. 왠지... 배가 선착장에 정착하면... 짐을 챙길 시간 따윈 없을 것 같단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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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선장이 말한, 라디오 전파와 휴대폰 통화권에 들어오자, 그들은 말을 잃고 말았다.

 

[국가비상사태입니다. 모두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십시오. 급성 수면증에 빠진 이가 주변에 있다면, 당장 그 사람을 단단하게 팔다리를 묶어 움직이지 못하도록 결박하고 물지 못하도록 입 안 가득 재갈을 물려두십시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급성 수면증에 빠진 이들이 깨어나고 있습니다. 잠에서 깬 이들은 식욕만 살아 있는 좀비와 같은 상태입니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가족, 친구, 아는 사람이 아닙니다. 잠에서 깬 좀비는 괴물입니다. 그것들은 동물이 사냥하듯 사람을 이로 물어뜯어 숨통을 끊어 죽인 후, 죽은 이를 그 자리에서 바로 게걸스럽게 뜯어먹습니다. 여러분. 좀비에게 물려 좀비의 체액이 체내에 흡수된 이는, 이 바이러스에 곧바로 감염됩니다. 아스피린을 복용중인 자더라도 좀비에게 물리면 감염이 이뤄지는 것 같습니다. 좀비에게 물린 이는 7시간 안에 그와 같은 괴물이 됩니다.]

 

믿을 수 없는 말들이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었으며, 휴대폰을 통해 본 동영상에는 구역질이 쳐오를 정도로 잔인한 장면들이 끝도 없이 올라와 있었다.

 

이 병이 확산되기 시작한 어젯밤부터, 인터넷상으로 정보를 접한 사람들은 이미 피난을 시작하고 있었다. 괴물이 집으로 들어올 수 없도록 방범창을 설치한다던가 식료품과 생필품을 싹쓸이 한다던가... 생존을 위한 경쟁이 이미 밤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우리가 외부와 연락이 닿지 않는 곳까지 낚시를 나온 탓에...”

 

윤기가 머리를 짚으며 하필 오늘 같은 날에 낚시를 나온 자신을 탓하기 시작하였다. 그런 윤기 옆에 선장이 휴대폰을 들고 달달 떨고 있었다.

 

“선장님. 저희 일단 선착장으로 가서, 각자 차량으로 안전지대로 이동하는 것이-”

 

윤기의 말에도 선장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휴대폰을 든 채로 덜덜 떨고 있을 뿐이었다.

 

“선장님, 선장님!!”

 

진이 선장의 어깨를 붙잡고 강하게 흔들어 넋이 나간 그의 정신이 돌아오게 만들어보려 하였다.

 

“애들이... 애들이...”

 

선장이 두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그의 크고 거친 투박한 손 사이로 눈물이 흘러나왔다.

선장이 울기 시작한 것이다.

 

“애들이, 애 엄마랑, 있어.”

 

선장은 계속 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애들이, 애 엄마와 있다고.

윤기와 진은 선장을 의자에 데려다 앉히고, 가방에서 생수를 꺼내어 그에게 먹였다.

 

“선장님. 정신 차리세요! 애들이 엄마랑 있으면 그래도 안전하지 않겠습니까,”

 

윤기의 위로에 선장이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하였다. 그러다 갑자기 선장은 화를 내기 시작하였다. 그는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굴고 있었다.

 

“선장님!! 왜 이러세요! 애들, 애들한테 가셔야죠. 아빠가 애들 지켜줘야죠!!”

 

진이 그런 선장의 행동을 말려보려 그의 손을 잡아보았지만, 평생을 뱃일을 하며 살아온 선장의 힘을 막을 수 없었다.

 

“지켜? 내가? 씨발, 좆 같은 세상. 왜, 왜 나한테!!”

 

선장이 미친 사람처럼 갑판으로 달려 나가더니 그 위에서 온갖 욕설과 세상에 대한 설움을 쏟아내기 시작하였다.

갑작스럽게 변한 선장으로 인해, 두려움을 느낀 윤기와 진은... 슬그머니 낚시 가방에 넣어두었던... 낚시용 단도를 꺼내고... 선장실 구석에 정돈되어 있는 박스에서... 회 손질용 칼을 꺼내 손에 쥐었다.

 

 

바닥에 떨어진 선장의 휴대폰엔, 길고 긴... 장문의 문자 메시지가 와있었다.

 

- 아빠. 엄마가 깨어났어! 근데, 엄마가 이상해. 엄마가 오빠를 콱 물어서 다치게 했어. 오빠는 엄마한테 팔을 물려서 피가 많이 났는데 다행히 그 순간에 오빠가 힘으로 엄마를 제압해서 침대에 묶어둬서 팔 한 번 물린 걸로 끝났어. 아빠. 엄마가 많이 아픈가 봐. 오빠랑 나를 전혀 못 알아봐. 계속 우리를 공격하려고 해...
아빠. 엄마가 나랑 오빠를 못 알아봐도... 그래도 난 엄마가 깨어나서 기뻐...
아까 내가 엄마한테 물이랑 미음 아주 연하게 끓여서 먹여주는데... 애처럼 다 흘리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데... 자꾸 짐승처럼 그르렁 거려서... 좀 이상하긴 한데... 엄마가 깨어나서 좋았어...
나도 엄마 미음 먹이다가 손가락 살짝 물려서 아프긴 했는데 그래도 엄마가 뭐라도 좀 먹어서 마음이 놓여.

아빠. 빨리 와. 보고 싶어. 이제 엄마 깨어났으니깐, 우리 가족. 예전처럼 다시 지낼 수 있는 거지?? 맞지 아빠??

 

 

선장의 와이프는. 아이들의 엄마는... 급성 수면증에 걸린 환자였고 선장은 사랑하는 와이프를 인권이 무시되는 격리소로 보내고 싶지 않아집에서 보살피고 있던 중이었다...

 

문자에는 급성 수면증에 빠진 와이프가 깨어났다는 내용과... 그의 와이프도 괴물로 깨어났다는 것...

그리고... 아들과 딸 모두가... 좀비에게 물렸다는 말이 적혀있었다...

 

애들에게 엄마가 깨어났다는 메시지가 오고난 뒤 정확히 7시간 후... 그 때부터 선장의 아들과 딸에게서 문자가... 끊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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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선장이 자신들을 해코지 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방어적으로 칼을 찾아 손에 꽈악 쥐고 있던 윤기와 진.

 

그들은 자신들은 두 사람이니 선장이 거구라고는 하나 혼자이니 이길 가능성이 있다 생각하고 있었다. 진이 손에 든 회칼 손잡이를 더욱 힘주어 잡아보았다. 손바닥에 땀이 차 칼집을 잡은 손이 자꾸 미끄러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선장실에 긴장한 두 명과, 미친놈처럼 갑판 위에서 바다를 향해 욕설을 쏟아 붓는 선장은... 그렇게 그 자리에서 한참을 있었다.

 

 

 

선장이 바다를 향해 쏟아 붓다, 갑자기 몸을 돌려 윤기와 진이 있는 선장실을 바라보았다.

 

“네놈 새끼들 때문에, 내가 오늘 바다에 나오지만 않았어도, 내가 집에만 있었어도!!!”

 

선장이 받은 메시지를 알 수 없는 진과 윤기는 그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라 속이 타고 있었다. 그를 진정시키고 싶어도 무엇 때문에 저리 발광하는 것인지 알 수 없어... 조용히 눈치를 보며 그의 다음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다.

 

“하, 그래. 네 놈들 때문이야.”

 

선장이 선장실로 다가왔다.

 

뚜벅,

 

뚜벅.

 

윤기가 재빠르게, 다가오는 선장을 보고 그들이 있는 선장실의 문을 잠그었다. 윤기가 빠른 판단으로 샷시문처럼 생긴 선장실 문을, 선장이 다가오기 직전에 잠가버린 것이다.

 

쾅-!!

 

선장이 잠긴 샷시 문을 거세게 한 번 내려쳤다. 거구의 선장이 있는 힘을 다해 문을 내려치자, 선장실 문에 달린 샷시 유리가 금세라도 깨질 것 같이 흔들렸다.

 

쾅-!!!!

 

선장이 몸을 부딪쳐 문을 부수려하였다.

 

“그, 그만. 선, 선장님.”

 

진이 선장을 말려보려 하였지만... 눈깔이 훼까닥 돌아버린 선장에겐 진의 부름이 먹히지 않았다.

 

쿠웅-!!!

 

다시금 선장의 커다란 몸이 선장실 문에 부딪쳤다.

 

이러다 진짜 문이 부서질 것 같았다.

 

윤기가 들고 있던 칼을 들어 샷시 유리에 대보였다.

 

“여기 들어와서 우리에게 뭔 짓 하려면 그만둬. 당신이 헛짓거리 하려는 순간 나는 이 칼로 당신 모가질 따 버릴 거니깐. 우린 둘이고, 당신은 혼자야. 허튼 짓 하지 마. 선장.”

 

윤기가 두려워하지 않고 선장에게 맞서려하자 진도 선장을 무서워하던 마음이 애써 누르며 쥐고 있는 회칼을 더욱 힘주어 잡았다.

윤기의 말대로 자신들은 둘 이었고, 선장은 혼자였다.

 

선장이 칼을 쥔 두 사람을 바라보더니,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웃기 시작하였다. 고된 뱃일을 해온 그에겐 칼을 무서운 물건이 아니었다. 칼이란 어쩔 땐 그물에 연결된 밧줄에 묶여 바다로 끌려들어갈 뻔 한 동료를 구해준 은인이기도 하였고, 배고플 때 음식을 손질해 준 고마운 동료이기도 하였다.

 

“그래. 내가 굳이 이럴 필요가 없지.”

 

미친놈처럼 배를 잡고 웃던 선장이 무언 갈 깨달았는지 선장실 문을 흔들던 손을 놓고는 그대로 배 뒤쪽으로 걸어갔다. 비틀대며 걷는 그는... 꽤나 힘겨워 보였다.

 

“어디 이 좆같은 세상!!! 잘 살아봐라 씨발놈들아!!!”

 

풍덩-

 

선장이 선장실에 있는 윤기와 진에게 욕설이 섞인 저주의 말을 한껏 퍼붓더니, 배 한편에 놓인 그물로 자신의 몸을 칭칭 감더니 그대로 바다를 향해 몸을 던지었다.

 

“저, 저 미친!!”

 

윤기가 바다에 몸을 던진 선장을 보고 놀래 칼을 떨어트렸다. 그가 급하게 선장실의 잠긴 문을 열었다. 얼마나 당황한 건지 간단하게 위아래로 내리면 되는 잠금장치인데도 몇 번이나 헛손질을 하였다.

 

달칵- 드륵-

 

선장실 문을 연 윤기는 선장의 몸이 떨어진 배 뒤편으로 서둘러 달려다 그가 떨어진 곳 즈음 바다를 바라보았다.

 

“이 미친놈의 새끼!!!!”

 

선장은 바다에 가라앉은 것인지 그가 몸을 던진 자리에 공기 거품들만 몇 번 꼬르륵 올라올 뿐 그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윤기야...”

 

석진이 뒤늦게 선장실에서 나와 상황을 파악하였다. 그의 손엔 선장의 휴대전화가 들려있었다. 그 흔한 잠금도 되어 있지 않은... 전화와 문자 기능만 있는 보급형의 투박한 폴더 폰이었다.

 

“선장 와이프가 급성 수면증 환자였는데 집에서 병간호를 했었나봐...”

 

윤기는 배의 난간에 두 손을 짚고 쓰러질 것 같은 몸을 억지로 지탱하고 있었다. 갑자기 일어난 일들에 놀라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듯 했다.

 

“선장 와이프가 괴물로 깨어나서 집에 있던 아들 딸들이 와이프한테 물렸데...”

 

윤기와 진은 아까 본 동영상 속의 괴물이 된 사람이 주변에 있는 사람을 사냥하듯 물어뜯어 죽이고 생살을 뜯어먹는 장면을 떠올리고 인상을 지었다.

 

“선장... 아들, 딸한테 엄마한테 물렸다는 문자가 와있는데... 그 이후로 일곱 시간 정도까진 애들이 문자를 잘 보내놨는데... 그 이후론 애들한테 연락이... 없어...”

 

선장이 왜 자신들을 죽이려 했는지 이제야 이해가 간 윤기와 진이다. 선장은 오늘 윤기와 진의 배낚시 예약만 없었다면... 집에서 아이들을 지켜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리 탓이... 아니에요... 형...”

 

윤기가 진과 같은 생각을 떠올렸는지 작게 읊조렸다.

 

“시발, 이건, 이런 건 우리 탓이 아니라고요...”

 

선장 아이들에게 생긴 비극도, 바다에 몸을 던진 선장도... 모든 게 우리 탓이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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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윤기와 진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서 있는 자세 그대로 넋을 놓고 있는 사이,

 

지잉- 지잉-

 

윤기와 진의 휴대폰이 끊이지 않고 울리고 있었다.

 

“전, 전화...”

 

진이 뒤늦게 자신의 전화가 울린다는 것을 깨닫고 덜덜 떨리는 손을 겨우 움직여 주머니에 있는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태형.

 

진은 휴대폰에 뜬 발신인의 이름을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반가웠다.

김태형 그의 이름이, 눈물 나게 반가웠다.

 

“어, 태형아. 너는, 너는 괜찮아??”

 

- “형!! 형 어디야?? 아 나는 진짜, 형이 계속 연락 안 돼서, 흐윽”

 

진이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자, 태형이 다급하게 그의 안부를 물어왔다. 지금 어디인지, 다친 곳은 없는지, 울먹이면서도 꿋꿋하게 진에 대해 물어왔다.

 

“배... 나랑 윤기 아직 배야...”

 

- “형, 그럼 빨리 선착장으로 가서 차타고 집으로 와. 빨리. 밤새 잠들었던 사람들이 깨어나서 미감염자들을 공격했어. 그건... 알지?”

 

안다.

그 때문에 선장에 공격당할 뻔 하였고... 그들은 지금 배의 선장을 잃었다...

 

“어... 근데...”

 

- “형. 빨리 와야 해. 지금 8시잖아. 어제 밤 12시쯤 깨어난 사람들로 인해서 공격당한 사람들이 7시간이 지나서 좀비로 변해서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고 있어. 지금이 집으로 돌아올 기회야. 더 늦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좀비들이 늘어나서 집으로 돌아올 수가 없어...”

 

“하아... 우리도... 가고 싶은데...”

 

윤기와 진이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배엔 선장과 그들. 단 셋만이 타고 있었다. 선장이 사라진 이 때... 배를 조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형. 지금 해외에서 이 사태가 먼저 일어났데. 급성 수면증에 빠졌다가 괴물로 깨어난 사람들을 좀비라고 부르고 있는데, 급성 수면증이 발병한 경로를 따라서 그 순서 그대로 좀비들이 깨어나고 있어. 근데, 하아, 병의 전파 속도와 다르게 깨어나는 시간이 엇비슷해. 어제 히말라야 주변에서 첫 좀비가 깨어났는데...”

 

태형의 목소리가 잔뜩 가라앉아 있다. 울음을 참는 것 같았다. 가족들과 연락되지 않는 불안함이, 진이 바다 한 가운데에서 아직 돌아오지 못했다는 걱정이, 또 다시 그를 덮쳐온 것이다.

 

- “진형. 내 말 잘 들어. 좀비한테 물린 1차 감염자는 좀비화 되는데 7시간이 걸려. 그런데... 1차 감염자한테 물린 2차 감염자는... 좀비화 되는데 여섯 시간 반이 채 걸리지 않았데... 형... 이거... 점점 감염 차수가 높아질수록... 좀비화 되는 시간이 짧아져... 지금 빨리 집으로 돌아와야 해.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거리가 온통 좀비로 가득차서 이동할 수가 없어질 거야...”

 

스피커폰으로 돌려진 진의 휴대폰에서 나오는 태형의 말들은, 진과 윤기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기 충분한 말들이었다...

좀비화 되는 시간의 간격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니...?

 

“태형아.”

 

진이 잔뜩 떨리는 목소리로 태형아, 하고 불러 말의 운을 떼었다.

 

“우리... 선장이 자살해서 배를 몰 수 있는 사람이 없어...”

 

어느 방향으로 배를 몰아야 하는지도, 배를 어떻게 운전해야 하는지도... 암초가 있는지, 암초는 또 어떻게 피해가야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그들이었다.

 

“우린 지금... 바다 한 가운데에 갇혔어...”

 

지금 빨리 집에 돌아가야,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야 살 수 있었다. 좀비 사태는 점점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고 있었고, 감염자들이 감염자를 낳고 있었다.

 

“나 지금... 어떡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어, 여기, 암초가 많은 지역이라, 배를 몰 수가, 하윽, 태형아... 나, 나 좀...”

 

진은 차마 태형에게 살려달라는 말을 잇지 못하였다. 지금 진만큼 그도 괴로우리라.

그런 진의 마음을 안 것인지, 윤기가 진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진의 어깨를 꽈악 쥐어주었다.

 

“진형. 우리, 혼자 아니고 둘이잖아. 방법을... 그래, 우리... 방법을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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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태형은 멤버들과 회사 관계자들, 그리고 개인적인 친분을 가진 모두에게 연락을 돌렸다. 위급 상황이라 모두 안전 구역을 지정하여 정비하고 식량을 확보하느라 정신없어 하였지만 걔중에 몇은 진심으로 태형을 돕기 위해 노력해주었다.

 

지이잉-

 

휴대폰의 진동이 울리자마자 태형이 다급하게 전화를 들어 받았다.

전화 발신인은 호석이었다.

 

- “태형아. 진형이랑 윤기 아직도 바다 위지?”

 

“네... 그 둘 위치 GPS로 확인해봤는데... 암초지역이라 그 구역에서 배 몰아본 사람이나 드나들 수 있지... 웬만한 배 면허소지자는... 들어갈 수조차 없는 곳이어서...”

 

진과 통화가 된 이후부터, 태형과 멤버들은 온 힘을 다해 그들을 구출할 방법을 찾기 시작하였다. 제일 먼저 그들이 있는 곳에 구조선을 보내보려 사람을 수소문해보았지만, 이미 모든 배가 피난민들에게 섭외되어 배를 띄우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 “나도 배 있는 사람들 수소문해봤는데 지금 배 띄우기... 힘들 것 같더라. 그래서 내가 다른 걸 좀 알아봤는데...”

 

호석이 말끝을 흐렸다.

 

“뭔데요, 형?”

 

태형은 진을 데려오기 위해선 자신의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사람이었기에 호석의 말 끌림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호석이 무슨 수를 낸 것이라면- 진만 구해낼 수 있다면, 태형은 무슨 짓이든 할 것이다.

 

- “헬리콥터 운행해주는 업체가 있어. 혹시 몰라 내가 그 쪽을 알아봤는데, 거기 업체 사장이 소방구조대 출신이라 헬리콥터로 해양구조 작업을 해 본 경험이 꽤 있다 하더라고.”

 

헬리콥터 구조.

 

왜 자신이 그 생각을 떠올리지 못했던 것인지, 태형은 호석의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벼락 맞은 사람처럼 제 자리에서 눈빛을 번뜩였다.

 

“형. 그 사람이 돈 달래요? 금?? 아님 차? 식량이 필요하면 저희 집 차고에 쌓여있는, 10년은 먹을 수 있는 비상식량도 있어요. 뭐가 필요하데요?? 어떡하면 구조 헬기 띄워줄 거래요??”

 

태형이 애원하듯 호석을 향해 되물었다. 구조헬기를 보낼 수 있다면 그가 가진 무엇이든 아깝지 않게 내어줄 수 있었다.

 

- “... 그게... 그 사람이 원하는 게... 하아... 태형아. 우리 집에 짐 챙겨 와도 되니깐, 그래서 내가 하는 말이니깐 오해하지 말고 들어. 내가 지금 너 밖에 나가서 죽으라고 이런 소리 하는 거 아니니깐. 알겠지??”

 

호석이 몇 번이나 오해하지 말고 들으라며, 밖에 나가 있을 생각은 절대 하지 말고 곧장 자신의 집으로 오면 된다며 사전 설득을 이어나갔다.

 

“형! 나 지금 진형이랑 윤기형 데려오는 게 중요해. 잡담 떨 시간 없다고. 그 사람이 뭐 달래? 다 달래? 그럼 내가 다 줄게. 그러니깐 빨리 말해 봐. 그 사람이 나한테 뭐 달래?? 내가 뭐 주면 형들 구하러 가줄꺼래??”

 

- “...하아... 그게... 거기서 원하는 게... 세이프티에 들어오고 싶데... 자기 아이들하고 와이프를 데리고... 세이프티에 집을 한 채 해달래...”

 

호석의 말에 태형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세이프티는 분양 모집부터 경쟁이 치열했던 곳이다. 비어있는 집은 당연 존재하지 않았다. 거기에 세이프티는 매매 물건이 아예 없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지금 세이프티 분양 끝난 지가 언젠- 아,”

 

호석의 말에 화를 내려던 태형이 호석의 의도를 깨닫고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래서, 그래서 말하기 전에 나보고 형네 집에 오라고, 그래서 그랬구나.
맞아 형. 우리 집. 그래. 우리 집 주면 되겠네. 형. 내 집 필요하데? 그럼 그 사람한테 준다 그래. 내가 집 준다고, 그러니깐 형들 좀 데려와 달라 그래라. 응?”

 

- “저기, 태형아. 지금 이 난리가 언제 진정될지 예상조차 할 수 없어. 그리고, 우리 지금 집에 있는 금고에 모든 재산 넣어뒀잖아. 그 사람이 그걸 알고 노린 건지... 아님 안전구역으로 옮기고 싶어서 윽박지르는 건지... 지금 당장 집을 달래. 뭘 옮기고 할 시간이 없어. 지금 바로 네 집을 그 사람들에게 넘기면... 말 그대로... 그 사람은 너의 전부를 원하는 거나 다름없어...”

 

“형. 다 줄 수 있어. 나 진짜. 내 목숨도 줄 수 있어. 그러니깐 그 사람 연락처 좀 줘. 나 지금, 진형 잃으면 이까짓 재산 아무 의미가 없어.”

 

태형이 다 물어뜯어 피가 나는 엄지손톱을 또 입으로 가져가 이로 잘근였다. 제발, 그 사람이 진형을 구조해주길 바랬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놓는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진만 살릴 수 있다면 상관없었다.

 

태형은 그를 짝사랑한 기간만 10년이 넘었다. 태형이 그를 향한 마음을 키우는 동안, 그는 태형의 원동력이었고, 태형의 버팀목이 되었고, 또한 태형의 전부나 다름없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런 소중하고 귀한 사람이 자신에게 와주었다.

그 사람을, 그 사람의 사랑을 받아보았다. 그토록 열망하던, 진을 가져보았다.

이제 태형은 죽어도 여한이 없었다. 그렇기에 태형은 진을 위해서라면 이까짓 집, 돈, 식량, 안전. 그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었다

 

그가 사랑하는 진이, 지금 바다 한 가운데 고립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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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지이잉- 지잉-

 

진이 손안에 울리는 진동에 설잠에서 깨어났다. 자신도 모르게 잠에 빠져 들었나보다.

낚시를 나오느라 밤을 샜고, 거기에 고된 밤샘 낚시에, 그리고... 선장 일까지...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 있었다.

어느새 시간은 12시 반이 되어가고 있었다.

태형과 연락이 된지... 4시간 반이 지나고 있었다.

이제 한 시간만 지나면... 1차 감염자들이 문 2차 감염자들이 좀비로 변이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여보..세요?”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발신인은 역시나 태형이었다.

부스럭-

진이 전화 받는 소리에 맞은편에 앉아있던 윤기가 고개를 들었다. 무릎에 고개를 파묻고 있길래 자는 줄 알았는데... 자는 게 아니었나보다.

진은 휴대폰을 스피커폰으로 돌리었다.

 

- “형. 이제 걱정하지 마. 곧 구조대가 갈 거야.”

 

태형의 말에 진이 놀라 곧바로 되물었다. 자신도 윤기와 이곳에서 나가기 위하여 구조선을 요청해보았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배를 보내준다는 말을 해주지 않았다.

다들 자기 살기에 바뻐 구조 따위 할 정신이 없었다.

거기에 배들은 이미 안전을 위한 대피처로 돈 있는 사람들이 섭외를 마치었는지 돈이나 무엇을 준데도 아무도 그들이 있는 곳에 오려하지 않았다.

 

“어떻...게? 배... 구할 수가 없던데...?”

 

- “윤기형. 걱정하지 말고 둘이 육지로 나올 준비하고 있어. 곧, 구조 헬기가 한 대 갈 거야. 그거 타고 곧바로 육지로 오면 돼. 먼저 윤기형 세이프티 옥상 헬기장에 들렀다가, 우리 집이 있는 세이프티1차 옥상 헬기장으로 오면 돼.”

 

도저히 태형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지금 시기에 헬기는 어찌 구한 것일까...? 누가 이 위험한 시기에, 도대체 왜...?

 

“태형아... 도대체 무슨 수로... 헬기를 구한 거야...?”

 

진과 윤기는 구조 헬기가 온다는 믿기지 않는 소식에 몇 번이고 태형에게 진짜냐고 되물었다. 그런 그들에게 태형은, 자신의 집을 넘기기로 한 대가로 구조 헬기를 보냈다고 말할 수 없어 자신의 재산과 식량을 대가로 구조헬기를 보낼 수 있었다고 말하였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좀비 사태로 지금 세상은 아수라장이었다. 폭동의 개념이 아니었다. 세상은 지금 무법도시였다. 식량을 갈취하고 생필품을 도둑질하며 자신의 집을 더욱 튼튼하게 덧대었다.

살인이 눈앞에서 일어나도 사람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자신의 안전만 챙기기 바빴다. 다른 집의 문을 억지로 따고 들어가 식량을 도둑질해오는 경우도 있었다.

 

사람들은 물과 식량을 구해 집에 비축해두면서도 불안해하였다. 이 사태가 과연 언제 진정될 수 있을까... 과연 군대는 정말 우리를 구하러 와줄 것인가... 만약 그러지 않는다면...

이런 상황이 몇 주, 혹은 몇 달... 길게 몇 년까지 이어진다면...?

이제 곧 물과 전기가 끊길 것이다.

페트병에 담긴 물을 구하는데도 한계가 있었다. 그들이 사놓은 라면과 쌀, 식량들은 보관 기간에 한계가 있었다.

만약, 구조되지 못하고 그대로 집에 갇혀 버린다면...?

 

사람들의 불안함은 그들의 도덕성을 순식간에 갉아먹었다. 자신이 살기 위해 본능만 남은 사람처럼 이기적이게 변하였다.

 

순식간에- 사회가 무너져 버렸다.

 

그들은 있는 자들을 노렸다.

그들이 노리는 있는 자들의 것들 중 가장 탐내한 것은 세이프티였다.

지하에 지어진 세이프티. 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하여 각 세대 당 개별적인 발전이 가능하였고, 식수 또한 자체 정화 기능을 갖추고 있어 걱정 없이 물을 재사용할 수 있었다. 각 세대에 이어진 차고지에는 4인 가족이 10년은 거뜬히 버틸 수 있는 비상식량이 특수보관 장치에 보관되어 있었다.

세이프티. 그 곳은 모든 자들이 원하는- 모든 것이 마련된 장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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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진과 윤기가 있는 배 주변으로 구조 헬기가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20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들은 바다 한 쪽 끝에서 반짝이는 헬리콥터 기체를 발견한 순간 지저분한 배 바닥 위에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살았다는 안도감이 그들을 감싸자 다리에 힘이 저절로 풀려버린 것이다.

 

구조 헬기에는 40대 중반정도로 보이는 조종사와 여자가 타고 있었다. 진과 윤기는 자신들을 구해준 그들에게 연신 고맙다며 인사를 해보았지만, 시끄럽게 두두두두 돌아가는 프로펠러 소리 때문에 조종사와 여자는 그들의 감사 인사를 제대로 듣지 못하였다.

 

“이따! 세이프티에 도착하면!! 그 때!! 이야기해요!!!”

 

여자가 진과 윤기를 사다리로 끌어올리고 자리에 앉힌 후 안전벨트까지 채우고선, 출발 하잔 신호를 조종사에게 주었다. 여자의 신호에 조종사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배위에서 방향을 틀어 육지로 헬리콥터를 몰았다.

 

살았다.

진은 살았다는 안도감에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들이 휴대폰을 통해 찾아본 동영상엔 온갖 범죄에 노출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올라와 있었다.

어제 낮, 진은 외국에 있는 친분 있는 디렉터와 인터넷을 이용하여 메시지를 보내다 대화 도중 갑자기 연락이 끊겼었다. 국가 간 네트워크가 간혹 정부의 검열로 차단되는 경우가 있었기에 진은 으레 그러려니 하고 다음에 연락하면 되지, 하고 인터넷 메시지 창을 닫았었다. 보통은 하루 이틀이면 다시 국가 간 네트워크가 열리기에 깊게 생각하지 않고 넘어갔었다.

그런데, 그건 정부에서 의도적으로 국가 간 네트워크를 차단시킨 것이었다.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좀비 사태 정보를 사전에 입수하고 그 상황을 한국에서 예방하거나 제어하기엔 역부족이라 판단하고... 좀비 바이러스 관련된 방어와 진압을 일찍이 포기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시민들이 혼란에 빠지기 전 그들의 도피를 준비하고 진행하기 위하여... 국가 간 인터넷과 국제 전화 등을 모두 차단한 것이다.

 

군대가 밤사이 대규모 이동이 있었다는 시민들의 목격담이 있었다. 전쟁이라도 일어나는 거 아니냐며 사람들이 불안한 마음으로 인터넷에 글을 올리었었다.

차라리 전쟁이라면... 지금과 같은 절망감에 빠지진 않았을 것이다...

 

청와대 직원 가족이 미리 대피했다는 이야기, 군 인력들이 밤사이 물류 보관 창고에 있는 캔 음식과 생필품을 모두 쓸어갔다는 이야기... 그리고 선택 받은 사람들은, 군인이 밤중에 방문하여 데려갔다는 이야기 등...

 

국가에게 배신당한 사람들에겐 더 이상 시민의식, 도덕성, 선악의 경계란 것이 없었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 라는 핑계로 모두가- 악인이 되어 있었다.

 

혼돈에 빠진 세상은... 이제 앞으로 그가 살아 갈 현실이었다.

 

헬리콥터를 이용하자 배에서 세이프티까지 금세 도착할 수 있었다. 그들은 윤기의 집이 있는 세이프티 2차에 윤기를 먼저 내리고, 곧 다시 하늘로 떠올랐다.

 

그리고 몇 분 되지 않아 그들은 진의 집, 태형이 기다리는 세이프티에 도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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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세이프티는 외부인이 철저히 차단되고 있는 곳이었기에 지상층에 있는 건물 또한 안전하게 운영되고 있었다. 진은 세이프티 옥상 헬기장에 헬기가 도착하자 여자의 안내를 따라 조심스럽게 하차하였다.

 

진은 옥상에 대기중인, 총을 든 세이프티 안전 요원들의 몸수색과 급성 수면증 바이러스 검사키트를 이용하여 미감염자임을 확인받고 난 후에야 세이프티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다.

 

세이프티 내부로 들어오자마자 진의 몸은 누군가에게 끌려가 그의 품에 붙잡혔다.

 

“태..형아...”

 

자신을 안아온 이가 태형임을 깨달은 진이 물기어린 목소리로 그를 부르며 그를 마주 안았다.

보고 싶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를 덮쳤을 때, 그를 버티게 해주었던 건 김태형이었다.

 

“형. 어디 다친 덴 없는 거지? 괜찮은 거지?”

 

“응. 고마워, 태형아. 나 네 덕에-”

 

그들이 재회의 감격을 나누려던 때, 세이프티의 안전 요원이 그들의 말을 가르며 들어왔다.

 

“죄송합니다만 위급 상황이라 시간이 없어 말씀 중 끼어들게 되었습니다. 현재 세이프티는 외부인 출입금지입니다. 세대주의 입주민 추가등록 요청이 와 예외적으로 외부인을 출입시킨 상황입니다. 세이프티는 6시간 후 출입구가 봉쇄 될 예정입니다. 그 후에는 입주민 추가 등록이 출산 등의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불가합니다. 어서 관리소 입주민 등록소로 가셔서 입주민 추가등록 작업을 완료해주시기 바랍니다.”

 

진은 안전요원의 말에 무슨 말이냐는 뜻으로 태형을 바라보았다. 입주민 추가 등록? 자신을 구한 저 두 사람을 누구의 집으로 전입시키겠다는 말로 알아들었다.

 

“태형아? 너, 나 구해주는 조건으로 저 분들 너희 집에 입주시켜드리기로 한 거야...?”

 

진이 태형에게 조심스레 조용히 물어왔다. 태형은 그런 진의 말에 그 비슷한 상황이기에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형. 형은 먼저 집에 들어가 있어요.”

 

태형이 진의 등을 떠밀며 그를 집으로 돌려보내려 하였지만, 진은 그런 태형에게 고개를 저어보였다. 자신을 구하러 와 준 분들인데, 아직 인사가 충분치 않았다며 함께 관리사무소에 다녀오겠다 하였다.

그들은 지하 1층에 있는 관리사무소로 다 함께 이동하였다. 관리사무소는 출입이 까다롭게 제한되어 있었다. 먼저 세이프티 직원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그 안에서 급성 수면증 바이러스 검사를 진행한 뒤에야 엘리베이터가 관리 사무소 안으로 운행되었다. 뒤이어 그들을 옮기고 난 엘리베이터가 다시 올라와 진과 태형, 그리고 헬리콥터로 진을 구해준 두 사람을 태워 다시 관리사무소가 있는 지하 1층으로 향하였다. 방금 옥상출입구에서 검사키트로 검사를 받았지만, 규정상 그들은 관리사무소에 출입하기 위해 다시 한 번 바이러스 검사를 받아야 했다.

 

엘리베이터에서 차례대로 바이러스 검사를 받는 사이, 헬리콥터를 조종하였던 운전사가 태형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아이들은, 집에 있습니까?”

 

“네. 아까 영상통화로 보신 것과 같이 먼저 입주민 추가 등록을 마치고 집에서 쉬고 있는 중입니다. 센터 규정상 체크되지 않은 외부 물품은 반입이 불가능하기에 아이들이 가져온 짐들 중 약품은 현재 관리사무소 검역팀에서 확인중입니다.”

 

“... 고맙소. 그리고 미안하오...”

 

“괜찮습니다. 저는 여기 말고도 여의도에 집이 한 채 더 있습니다. 비록 세이프티만큼 준비된 환경은 아니더라도 당분간 지대기엔 부족함 없을 겁니다.”

 

“우리 부부가 사람 목숨을 댓가로... 당신의 안전과 미래를 송두리째 빼앗은 것이... 하아... 미안합니다... 자식을 핑계로 내가 너무 야비하게 굴었소...”

 

“괘념치 마세요. 전 두 분이 진형을 구해주셔서, 두 분께 제 전부를 드려도 아깝지 않습니다.”

 

두 부부와 태형의 대화를 듣던 진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었다. 뭘 빼앗고 왜 미안하다 자꾸 이야기 하는 것인지?

 

“김태형. 이게 무슨 이야기야...? 너 이 분들 집에 머물게 해드리는 거 아니었어...? 여의도 집은 무슨 말이야??”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지하1층에 내리자마자, 진은 태형의 손목을 붙잡아 그를 그 자리에 세우고, 지금 방금 엘리베이터에서 했던 그들의 대화에 대해 물어왔다.

 

“그게, 저, 약간 딜이 있었어가지고.”

 

태형이 진의 눈을 피하며 그의 물음에 대한 정확한 대답을 주지 않았다. 그런 태형의 손목을 다시 한 번 힘주어 당기며 진은 그에게 정확한 답을 요구하였다.

 

“이게 그러니깐, 구조대를 보내기엔 이미 물질적 보상은 소용없는 상황이었어가지고,”

 

“너. 네 집하고 내 구조하고 맞바꾼거야??”

 

“어, 응. 형 정리 디게 잘 한다. 맞아, 그게 인제 그렇게 된 건 맞긴한데.”

 

“김태형. 근데 지금 여의도 집 말은 뭐야? 너 세이프티에서 나가서 여의도 집에 들어가 있겠다는 거야?? 지금 이 시국에?
하! 여의도 집 일반 주상복합이야. 오늘 당장 도둑들이 집 문 부시고 들어와서 너한테 칼침 놓아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이 세이프티 안전하고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위험지역이라고.”

 

진이 배 안에서 보아온 바깥 상황 동영상으로 지금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기에, 이런 때 여의도 일반 집으로 나가 살겠다는 태형에게 화가 치솟았다.

 

“근데 그게, 내가 이분들하고 이야기 한 조건이, 세이프티 내 집 제공이여서, 이 분들은 자녀 중에 몸이 불편한 애가 있어서 바깥에서 애를 키우기는 거의 불가능이라... 아이 중 한 명이 가족 외 사람을 보면 발작을 일으켜서... 내가 그 집에서 함께 살 수가 없어서...”

 

“야!! 너 바보야?!!”

 

구구절절 상황을 설명하는 태형에게 진을 큰소리를 내었다. 화를 내는 말과 다르게 진은 태형을 안아주고 있었다.

 

“내 집이 여기 있는데, 니가 왜 밖에 나가 있어? 너는 벌레도 못 죽이는 애가, 여의도 집에 혼자 나가서 어떻게 살아남으려고-”

 

“형은... 집에 누구 들여서 같이 살 성격... 아니잖아... 형 결벽증 있어서 집 누가 어지르고 그러는 거 못 보잖아...
그래서 맨날 우리 집에 형이 와 있었던 거고...”

 

진은 바보 같은 소릴 하는 태형을 더욱 세게 끌어안아주었다.

 

“바보 같은 게 지 집도 다 내어주고 이제와 한다는 소리가 형이 불편해 하니깐 같이 산다는 생각 못해봤다는 거기나 하고.”

 

진은 태형이 자신을 얼마나 위하는지 이번 기회로 더욱 절실히 깨달았다. 이 아이는 자신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자신을 사랑해주고 있었다.

자신의 안전하고 평온한 삶을 포기하고, 진을 위해 모든 것을 내버린.

 

“넌 우리 집에 입주민 추가 등록 해 놔. 우리 집에서 살려면 너도 등록되어 있어야 편할 거 아니야. 언제가 될지도 모르는데, 이 사태 끝날 때까지 내가 매번 너 문 열어주고 따라다닐 순 없잖아. 숙소에서도 10년을 넘게 살았는데, 왜 너랑 둘이 못 살아?”

 

진이 태형을 향해 솔직하지 못하게 투덜거리 듯 말하였다.

다정하게 ‘우리 이제 같이 백년만년 살자.’라고 말해줄 수 있었지만... 그런 프로포즈 같은 말은... 조금 더 분위기 있는 상황에서 해주고 싶었다.

 

“같이 살자. 태형아.”

 

관리사무소에서 부부의 입주민 추가 등록을 마치는 동안, 태형도 그 옆에서 함께 진의 집에 추가 입주민으로 등록하였다.

 

“형, 음, 그럼 나 집에서 짐 조금만 가져다 형네 집에 놔둬도 될까...?”

 

태형의 말에 진이 무심한 듯, “내 집이냐, 이제 우리 집이지. 마음대로 짐 옮겨. 어차피 빈 방 많아.” 라고 태형이 그의 집에 얹혀사는 개념이 아니라, 둘의 집이라고 집어주었다.

 

“응. 고마워, 형.”

 

“고맙긴, 내가 더 고맙지.”

 

“사랑해, 형.”

 

태형이 진을 향해 사랑한다 말해주었다.

평소라면 주변 이목을 신경 쓰느라 태형의 이런 공개적인 장소에서의 고백엔 질겁했을 진이지만, 지금은 그런 것 따위 신경 쓰지 않았다.

 

“응. 나도 사랑해.”

 

태형은 자신의 말에 똑같이 사랑한다는 말로 답해준 진을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김태형 님. 홍채 인식 중엔 그렇게 눈 크게 뜨시고 그러면 안 됩니다. 평소처럼 안정된 상태로 촬영해야 합니다.”

 

관리사무소 직원의 타박에 태형이 머쓱한지 뒷머리를 털었다.

 

“김태형 님.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머리 만지지 마세요.”

 

 

 

 

 

*****************************************

 

 

 

 

20.

 

진은 자신의 집에 들어온 상자 더미를 바라보며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태형에게 그의 짐을 자신의 집으로 옮기라 말하였지만- 이런 것들만 자신의 집에 잔뜩 들어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이게... 다 뭐야?”

 

“응. 내가 집에 구매해 놨던 거.”

 

“그러니깐 태형아, 이게 다... 하아... 너 모텔 해?”

 

진의 한숨 섞인 말에 태형이 볼을 긁적였다. 자신이 생각해도 과해보이는 것들이었다.

 

“아니, 갈수록 폭동, 이런 말 뉴스에 나오고 가뜩이나 이런 건 시중에 잘 안 나오는데... 갑자기 판매 중단되면 안 되잖아...”

 

태형이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며 나름 준비한 변명을 애써 꺼내보았다. 그러나 한쪽 입 꼬리만 올라간 진의 환멸 섞인 표정을 보자 이 변명이 역시나 통하지 않았구나 알아채고 망했다는 생각을 하였다.

 

“이게 약간, 마사지 할 때도 쓸 수 있고, 그리고, 어,”

 

“김태형. 누가 러브 젤을 마사지할 때 써? 말이 되는 소릴 해라.”

 

“... 미안...”

 

“콘돔은 무슨 이렇게나 많이, 하아,”

 

진은 현관에 늘어진 [러브젤] [콘돔] 이라 적힌 박스더미들을 보며 이마를 짚었다.

 

“이런 것들도 유통기한 있어 태형아.”

 

진의 말에 태형이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뜬다. 유통기한. 솔직히 그것까진 생각해보지 못하였다.

 

“헐. 형. 그럼 어떡해? 이거 기간 안에 빨리 다 써야겠다.”

 

“뭘 다 써. 누구 하반신 못 쓰는 꼴 보고 싶어? 너 이거 상자더미, 하, 이거 들고 나올 때 너네 집에 입주한 그 구조대 부부가 이 상자 개수를 보고도 암말 안 하던??”

 

“아, 당연히 했지. 거기 아저씨가 나보고 콘돔 많아 보이는데 좀 달라 그러셨어. 그래서 아저씨한테 줄려고 했는데 아줌마가 당신 사이즈 아니라고 줘도 쓸모없다고 막으셨어.”

 

“... 나눔 천사 나셨네.”

 

“헤헤, 내가 돈 그런 거 하나도 안 받고 그냥 드리려고 했는데, 아저씨가 쓰기엔 이 사이즈 너무 크데서 못 드린 거라 아쉬웠엉.”

 

“김태형. 방금 거 칭찬 아니었어. 기분 좋아하지 마.”

 

나눔 천사라는 말이 칭찬인 줄 알고 좋아서 헤헤 거리는 태형에게 진은 어이없음을 느꼈다. 하여간 김태형, 매번 자신에게 눈치 없다 말하는데 태형 그도 만만찮게 눈치가 없는 것 같았다.

 

“형. 나 짐 상자 덜 옮긴 게 좀 더 있는데, 지금 가서 가져와도 될까??”

 

“... 이제 네꺼 짐 옮기기 시작하려고?”

 

“응. 그것도 그렇고, 내가 침대 시트를 좀 사둔 게 있는데-”

 

태형의 말이 끝나자마자 진이 눈을 꼬옥 감았다. 이번에도 대용량 박스가 들어올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왔기 때문이다.

 

“시트는... 또 몇 장이나... 아니, 몇 박스나 샀는데...?”

 

“10개들이 10박스 샀으니깐, 백 개?”

 

진은 태형의 대답에 누가 침대 시트를 백 개씩이나 집에 사두냐며 너 도대체 정신이 있냐고 한 소리를 쏟아 부었다.

 

“아줌마 아저씨네 두 박스 드리고 남은 건데...”

 

“뭐? 그럼 원래는 백이십 개였다고?? 김태형. 너 진짜. 지금 차로 한가득 옮긴 짐이 몽땅 콘돔하고 젤 이였는데, 그 다음 차로 옮길 짐이... 침대 시트라고? 하, 너 진짜. 난 그동안 너네집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도 모르고 아무 의심 없이 그곳에 드나들었구나. 정말.”

 

지하주차장 시스템을 이용하여 태형네 집에 있던 짐을 차에 실어 진의 집 차고지를 통해 옮겨오던 중이었다.

태형이 옮겨오는 짐들이, 하나같이 생활에 필요한 물품들이 아닌... 엄한 것 들이여서 진의 혈압이 높아지고 있었다.

 

“형은 말을 무슨, 그렇게 섭섭하게 하냐? 이게 다 우릴 위한 건데. 내가 뭐 나만 좋자고 이런 거냐? 형이 젤 없으면 힘들어 하니깐 내가 형 생각해서 사 놓은 거고, 형 시트 더러운 거 못 참으니깐 시트 자주 자주 갈아주려고, 어, 시트 자주 세탁하면 금세 헤지니깐 혹시 몰라서 잔뜩 사 놓은 건데.”

 

“고양이 쥐 생각한다. 김태형. 넌 무슨, 생각이 그런 생각밖에 없어?”

 

“말을 또 또. 내가 뭐가 그런 생각밖에 없냐? 막상 시작하면 형이 더 좋아하면서.”

 

진과 태형이 현관에 서서 서로지지 않으려 투닥거리기 시작하였다.

 

“따로 살 땐 형, 형 하면서 살랑거리더니, 같이 살기로 하니깐 변했어. 이젠 아주 날 이겨먹으려 들어. 다 잡은 물고기라고 지금 막 대하는 거지?”

 

“뭐? 다 잡은 물고기? 하, 김석진. 물고기 잡는 이야긴 꺼내지도 마. 내가 아주 형 낚시 나갔다가 고립된 것만 생각하면,”

 

태형이 질린다는 듯이 어깨를 감싸고 몸을 떨었다. 그런 태형의 행동에 진의 말이 막히었다.

진이 낚시터에 고립된 이야기만 나오면... 그는 할 말이 없어진다.

아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진다.

 

“... 태형아, 또 왜 그 이야긴, 아... 내가 그 이야기 나오면 아무 말 못하는 거 알면서...”

 

“이깟 콘돔하고 젤 많이 산 게 그렇게 죽일 듯이 다그칠 일이야? 난 형 위해서 뭐든,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싶어서 이런 건데.”

 

“... 아니.. 그렇게 말하면...”

 

태형이 손이 자연스럽게 쌓여진 박스에 가더니, 박스를 열어 그 안에서 젤 한 통을 꺼낸다. 그리도 뒤이어 옆 콘돔 박스도 열더니 그 안에서 콘돔 한 박스를 꺼낸다.

 

“미안하지?”

 

“면목 없지...”

 

“그럼, 우리 일단 방에 들어 가자.”

 

“... 면목은 없는데 나 눈치는 있거든. 너 손에 든 거 내려놔라.”

 

“형. 일단 방에 들어가.”

 

“나 눈 다 달려 있거든. 김태형. 그거 내려 놔라.”

 

“진형. 한 번만.”

 

태형이 진을 껴안고 그대로 침실로 끌고 갔다.

진은 그런 태형에게 놓으라며 작게 반항해 보았지만, 그도 그리 싫지만은 않은지 곧 태형의 목에 자신의 팔을 감았다.

 

 

 

잠든 자들의 도시.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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