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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

w. 잔망

“메시아는 없어”

눈앞의 목소리가 단호하게 말한다.

하지만 태형은 보았다.

흐르는 피 사이로 자신에게 걸어오는 대천사의 현현을.

 

 

 

메시아

w. 잔망

 

 

 

“그건 왜 맨날 깎고 있어?”

반장이 태형의 곁으로 다가오며 물었다. 태형이 눈인사하며 준호가 앉을 수 있게 옆으로 당겨 앉았다.

“심심하잖아요.”

준호가 수긍하며 들고 온 커피를 건넸다. 태형은 습관처럼 매일 깎고 있는 나무 조각을 바닥에 내려놓고 커피를 받아들었다. 타닥타닥 타는 모닥불 앞에 다들 말이 없었다. 태형은 커피를 들이켜며 흔들리는 불빛을 빤히 바라봤다. 내일이면 다시 요새로 돌아간다. 기괴하게 몸을 비틀며 다가오는 썩은 살덩이를 당분간 보지 않아도 된다. 그래도 낮이면 푸르게 빛나는 들판과 나무 냄새, 모닥불 앞에 앉아 있는 이런 시간은 그리워질 것 같다.

 

 

 

엔진소리에 눈을 떴다. 어제 쉬이 잠을 이루지 못했던 탓에 늦잠을 잤다. 때맞춰 준호가 태형의 천막 밖에서 소리쳤다.

“태형아, 이제 곧 출발해! 빨리 준비해라.”

벌떡 일어나 천막 밖으로 나왔다. 단출한 짐은 진즉에 천막 밖에 꾸려두었다. 배낭을 둘러메니 꽤 많은 인원이 벌써 트럭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곧 출발하려는 듯 엔진에서 뿌연 연기가 끊이지 않았다. 태형은 마지막으로 맑은 물을 마시고 싶었다. 요새 안으로 들어가면 깨끗한 물이나 반짝이는 호수의 풍경은 볼 수 없을 테니.

 

 

새 소리가 가득한 호숫가로 다가갔다. 좀비만 아니라면, 이곳이 천국인데. 태형은 마지막으로 푸른 풍경을 눈에 담다 불현듯 몸을 움직였다. 이런 여유를 즐기려면 좀 더 일찍 일어났어야지. 낙오되지 않으려면 얼른 세수하고 트럭으로 돌아가야 했다. 차가운 물로 얼굴을 적셨다. 푸하 하고 숨을 내뱉는데 투둑 하고 나뭇가지 부서지는 소리와 인기척이 느껴졌다.

 

 

고개를 트는 순간 둔기가 눈가를 스쳐 머리를 내리쳤다. 이런 아침에 좀비가 있을 리 없는데. 습격자를 똑바로 보려고 자꾸 풀리는 눈에 힘을 줬다.

“..메시아..?”

“메시아는 없어”

눈앞의 목소리가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흐려지는 시야로 보이는 건...

 

 

 

 

“야아... 일어나봐..”

태형은 욱신거리는 머리를 붙잡았다. 골이 딩딩 울렸고, 눈을 뜨려 움직인 눈꺼풀이 쓰렸다. 어스름이 내리기 시작한 하늘이 보였다.

“정신이 들어? 괜찮아?”

옆에서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눈물이 그렁한 낯선 이가 태형의 팔 언저리를 잡고 있었다.

“누구야..으...”

“그것보다, 지금 어두워지고 있어. 빨리 움직여.”

 

 

태형은 이를 악물고 일어서 초소로 달렸다. 움직일 때마다 머리가 울렸다. 부대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남겨진 천막과 쓰레기들이 굴러다녔다.

“젠장...”

태형은 원래 지내던 천막을 찾아 들어갔다. 일단 불을 피워야 했다. 모닥불이 남아있던 자리를 찾아 나오니 아까 그 남자가 멀뚱히 서 있다.

“여기, 네 가방.”

태형은 거들떠보지 않고 부싯돌을 주워들었다. 남자는 가방을 든 채 태형의 주변을 맴돌았다. 그의 존재를 애써 무시하며 불을 피우고 총기를 점검했다.

 

 

“미안해... 배가 너무 고파서 가방에 먹을 게 있을까 하고 그랬어.”

태형은 별말 없이 나무 조각과 칼을 꺼내 들었다.

“네가 금방 일어날 줄 알았는데, 안 일어나는 거야. 그렇게 거기에 기절해 있다가 좀비한테 뜯어 먹힐까 봐 도망도 못 갔어...”

바람 빠지듯 웃으면서 태형이 눈을 치켜떴다.

“그래서 뭐, 고마워 라도 하라고?”

남자는 눈을 굴리며 턱에 호두를 만들었다. 태형은 그제야 불빛에 남자를 살폈다. 가녀린 몸으로 어떻게 요새 밖을 혼자 돌아다니고 있는 건지. 별로 경계해야 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태형은 남자를 본체만체하며 나무 조각을 깎기 시작했다. 남자는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더니 모닥불 근처에 앉았다.

“난 석진이야. 너는?”

“......”

요새로 걸어서 돌아가려면 열흘은 잡아야 했다. 그것도 밤에 제대로 잘 수 없으니 낮에 체력 보충을 하며 간다고 하면 더 걸릴지도 몰랐다. 총알이 얼마나 남았더라.

“네 가방 속에 있는 빵 내가 다 먹어버렸어. 나무 열매로는 먹어도 먹은 거 같지가 않아서 배가 고프더라고.”

반장님이 내가 트럭에 없는 걸 언제쯤 알까. 하지만 내가 낙오된 걸 알더라도 트럭을 돌리지는 못할 것이 분명했다.

“나 보름 만에 사람이랑 얘기하는 거야. 근데 눈은 괜찮아? 피딱지가 앉았어.”

날이 밝으면 초소에 혹시 남아 있을지 모르는 탄약과 식량을 뒤져야겠다.

“아..!”

태형이 반사적으로 석진의 손목을 틀어쥐었다. 어느새 곁으로 온 석진이 자신의 눈가에 손을 올리려 했다.

 

 

한 손에 잡고도 남는 손목이다. 누더기가 된 옷을 걸쳤어도 뽀얗고 말간 얼굴을 했다. 도무지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얼굴이었다. 석진이 몸을 비틀며 손목을 빼려 애를 썼다. 태형이 탁, 손에 힘을 풀었다. 잠시 제 손목을 살피던 석진이 이내 태형의 옆에 앉았다.

“뭐 만들어? 말이야?”

저에게 습격당해 겨우 깨어나 낙오된 사람 옆에서 또 재잘대기 시작한다. 속도 참 편하다.

 

 

 

 

태형은 새근새근 제 옆에서 자는 석진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초소를 떠나 요새 쪽으로 향한 지 삼 일째. 이 어리숙한 습격자는 계속 태형을 쫓아왔다. 밥때가 되면 배고프다, 정오를 넘기면 다리 아프다, 밤이면 춥다, 투덜거리면서도 태형의 큰 보폭을 맞춰 열심히 걸었다. 석진의 얼굴에 주황빛 모닥불이 어른거렸다. 겹쳐지는 얼굴이 있다. 하지만 설마.

 

 

뚫어져라 보는 눈빛을 느꼈는지 석진이 눈을 떴다. 나른했던 눈이 갑자기 커진다. 동시에 기척을 느낀 태형이 모닥불에 삐져나온 긴 장작을 꺼내 들며 재빨리 뒤돌았다. 태형은 눈앞에 이를 딱딱거리는 좀비를 마주했다. 진득한 액체를 뚝뚝 흘리며 벌어진 입속으로 망설임 없이 횃불을 쑤셔 넣었다. 끼이익---! 하는 소름 끼치는 비명이 조용한 숲에 울려 퍼지고, 사방에서 발을 질질 끄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석진을 보호하며 혼자 싸우기는 무리다. 태형이 석진의 멱살을 잡아끌었다.

“나무..! 위로 올라가, 어서!!”

오래된 고목으로 올라가 밤을 피하는 게 최선이었다. 석진이 아무것도 못 하고 서 있자 태형이 먼저 올라가 석진의 손을 잡아 위로 끌었다. 악취를 풍기는 좀비들이 바로 기저까지 다가와 있었다. 버둥거리며 올라가는 석진의 발목에 썩은 손이 스쳤다.

“아악!!!!!”

소리를 지르며 미친 듯이 발을 흔들어댄 덕에 석진의 한쪽 신발과 물컹한 고깃덩이가 툭 하고 떨어져 나갔다.

 

 

큰 줄기가 갈라지는 부분에 태형과 석진이 겹쳐 앉았다. 석진이 많이 놀랐는지 계속 훌쩍거린다. 올라오지는 못하고 나무껍질을 긁어대는 소리가 계속됐다. 태형의 한쪽 손을 꼭 잡고 있는 가는 손의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태형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작게 한숨을 쉬며 석진의 등을 쓸어주었다. 따뜻하고 커다란 그 손에 석진은 와락 태형의 목에 매달렸다. 뭐가 그리 서러웠는지 저도 모른 채 목 놓아 울어버렸다.

 

 

다리가 저려 감각이 없어질 때쯤 해가 밝아왔다.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나무 밑동에 몰려있던 좀비들도 어느새 사라졌다. 태형의 품에 기대 잠들었던 석진이 부스스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마주한 태형의 커다란 눈에 석진은 왠지 안심이 됐다. 태형을 올려다보는 눈가가 아직도 빨갛다. 태형은 석진의 이마에 가볍게 입 맞췄다. 그냥, 나무 위에서 마주하는 아침 해가 너무 눈이 부셔서 그래야 할 것 같았다.

 

 

 

 

“토끼 고기 지겨워.”

말과는 달리 오물거리는 통통한 입술은 열심히 움직인다. 태형이 물었다.

“이제 사흘이면 요새가 보일 거야. 그때까지 참아.”

“... 난 요새로는 안가.”

태형이 먹고 있던 그릇을 내려놓았다.

“걱정하지 마, 너는 가도 돼.”

여전히 무슨 소리냐는 얼굴이다.

“요새 근처까지만 같이 가다가 보내 줄게.”

 

 

 

원래 말이 없는 태형이었지만 오늘은 더 말이 없었다. 어제 한 얘기 때문인가 싶어 석진은 신경이 쓰였다. 잠시 쉬어 가자고 짐을 푼 태형이 갑자기 일어선다.

“어, 어디가?”

“... 토끼 고기 지겹다며. 아까 저쪽에 버려진 트레일러 있던데 살펴보려고.”

“같이 가!”

석진이 앉아 있던 통나무를 폴짝 건너뛰며 태형에게 다가갔다. 위험하니까 그냥 있으라던 태형이 앞장서는 석진을 더는 말리지 못하고 발을 뗐다.

 

 

조용히 하라며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 댄 태형이 우선 운전석 쪽을 살폈다. 아무것도 없었다. 트레일러 문은 닫혀 있었다. 문에 가까이 귀를 대고 있던 태형이 석진에게 물러나 있으라는 듯 손바닥을 내보였다. 조준 자세를 한 상태로 트레일러 문을 열었다. 한 발 트레일러 안으로 들어가 사방을 살폈다. 석진은 괜히 저도 긴장이 돼 침만 꿀꺽 삼켰다.

“비어 있는 거 같아, 이리 와.”

 

순간이었다. 석진을 향해 있는 태형의 뒤로 거무튀튀한 살점이 흘러내린 좀비가 덮쳐온 것은. 겹쳐진 두 인영이 옆으로 쓰러짐과 동시에 탕, 하는 소리가 사방을 울렸다. 좀비의 머리가 날아가며 썩은 살점이 사방으로 튀었다. 태형이 몸을 틀어 축 늘어진 몸뚱이에서 벗어났다. 석진은 전기를 맞은 듯 그 자리에 굳어 있었다.

 

태형의 목덜미의 핏줄들이 튀어나오며 검게 물들고 있었다.

“가! 도망가. 가까운 나무 위로 올라가...윽,”

말을 채 잇지 못하고 태형이 숨을 들이켰다. 뜨뜻한 혀가 상처를 덮었다. 석진이 태형의 상처에 입을 대고 피를 빨아내고 있었다.

“뭐, 뭐 하는 거야! 너까지 감염된다고!”

밀어내도 어디서 힘이 났는지 석진의 까만 머리통은 떨어지지 않는다. 아픈 상처를 따뜻한 점막이 빨아대는 기묘한 느낌에 태형은 숨이 가빠왔다.

 

 

한참을 춥춥 거리며 피를 빨던 석진이 고개를 들었다.

“안 변한다. 그지? 이제 괜찮지?”

“...너.. 뭐야?”

“이미 검게 변한 부분은 안 돌아오네... 여기 아퍼?”

피가 배어 있는 목덜미에 차가운 손끝이 닿았다. 흠칫한 태형이 재차 물으려 입술을 떼자 울망한 눈으로 저를 보던 석진의 입술이 덮쳐왔다. 어설프게 입을 맞댄 채로 가만히 있는 석진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역시. 기억 속 흐릿한 앳된 얼굴이 떠올랐다. 태형의 손이 석진의 뒤통수를 파고듦과 동시에 입술을 빨아들였다.

 

 

한 팔에 들어오는 얇은 허리를 쓸었다. 갈 곳을 모르는 석진의 혀를 감아 삼켰다. 사실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메시아. 좀비 바이러스에 영향을 받지 않아 추앙받던 존재. 좀비에 물린 뒤에도 변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좀비 떼의 습격으로 많은 이들이 변화하거나 죽고 난 다음이었다. 태형의 부모 역시 그중 하나였다. 어린 태형은 임시 피난처로 마련된 곳에서 웅크린 채 며칠을 보냈다. 괴물이 되어버린 아버지의 모습과 군인들의 총알에 투두둑 튀던 진득한 검붉은 액체들이 잊히지 않았다.

 

피난처에 설레는 분위기가 퍼졌다. 피해자들을 위로한다고 총독이 피난처에 온단다. 인간이 돼 인간이 아닌 존재, 메시아와 함께. 메시아의 손이라도 한번 잡기 위해 환호를 내지르는 사람들 사이로 태형은 멍하니 앉아있었다. 그때 눈앞에 떨어진 게 금박 장식이 붙은 손바닥만 한 장난감 말이었다. 사람들에 떠밀려 앞으로 가면서도 값비싸 보이는 장난감을 던진 뽀얀 얼굴이 놀란 태형을 향해 웃어주었다.

 

 

그때와 다를 것 없이 오동통한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대자 석진의 목안으로 신음이 터진다. 왜 여기 있는 걸까. 제2경비 초소로 발령받아 요새를 떠나온 지 삼 년이다. 그 사이 요새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숨이 달려 태형의 옷깃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태형이 마지못해 입술을 뗐다.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입술을 보니 다시 뒷목이 뻐근해졌다.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했지만, 수확이 꽤 괜찮았다. 통조림 수프와 깡통 햄, 참치 캔으로 저녁을 차렸다. 맛있겠다를 연발하며 부산스럽게 움직이던 석진은 막상 조리를 마치자 제가 든 그릇을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 왜 안 물어봐”

“물어보면, 대답해 줄 거야?”

수프를 마시던 태형이 고개를 들었다.

“좀비 바이러스에 영향을 안 받는 사람, 메시아잖아. 근데 너 메시아 아니라며.”

석진의 눈동자가 떨렸다. 어딘가 불안해 보였다. 태형은 다시 수프 캔으로 고개를 숙였다.

“됐어. 말 안 해도 돼. 분명한 건 네 덕분에 내가 살았다는 거...”

태형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천 꾸러미에 말을 멈췄다. 올려다본 눈앞에 석진이 웃통을 벗고 서 있었다. 모닥불에 하얗게 빛나는 석진의 몸이 보였다. 정확히는 잇자국으로 보이는 흉터로 얼룩덜룩한 몸이.

 

“요새에서 도망쳐 나와서가 아니라, 요새 안에서 훨씬 좀비한테 많이 물렸어. 내가 치료제가 될 수 있다고 해서... 그래서 참았는데, 그래도 실험쥐로 십 년이 넘었으면 할 만큼 한 거잖아.”

석진이 눈물을 훔치며 말을 멈췄다.

“메시아는 무슨... 나 그런 거 아니야. 그래도, 흑, 너 아까 죽는 줄 알고...흡”

태형은 석진의 손목을 잡아당겨 생채기 가득한 몸을 끌어안았다. 말랑하고 따뜻한 몸이 견디기에는 가혹한 고통이었을 것이다. 태형이 고개를 숙여 흉터를 핥았다. 석진이 아까 제게 해줬던 것처럼. 흉터 위로 울혈이 남을 때까지 그렇게.

 

 

 

 

옆자리가 허전해 석진이 번쩍 눈을 떴다. 고개를 돌린 곳에 태형이 짐을 꾸리고 있었다. 남은 통조림을 챙겨 넣으며 태형이 씩 웃었다.

“깼어?”

눈물이 말라붙은 얼굴이 쑥스러운 듯 배시시 웃었다. 석진이 허리를 잡고 끙차 소리를 내며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출발할 준비를 마친 석진이 우뚝 멈춰 섰다.

“...요새는 반대 방향인데...?”

“응, 너 요새 가기 싫다며.”

“....?”

“같이 있자고.”

의아해하던 얼굴이 환하게 웃으며 태형에게 달려왔다.

 

 

그래, 너만 있어도 나쁘지 않겠다. 나의 구원, 나의 천사.

밤새 깎아 그 자리에 두고 오던 나무로 된 작은 말들이, 이제야 주인을 찾았다.

ㅇ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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