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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

w. 먼루

Triigger warning

: 고어

 

 

 

“윤기야, 벚꽃이 참 예쁘지 않니.”

 

문득 들려오는 형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나뭇가지에 매달려 유약하게 흔들리는 벚꽃이 보였다. 팔랑거리며 떨어지는 꽃잎이 웃고 있는 형의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봄이 왔구나. 세상이 망해서 서로 죽고 죽이는 와중에도 봄은 오는구나 싶었다.

 

“이러니까 우리 되게 멀쩡한 세상에 사는 것 같다.”

 

형은 그 말을 하면서 천천히 무너져내렸다. 머리 위에 내려앉은 꽃잎을 떼어내서 손바닥에 올려놨다. 무게가 없는 꽃잎을 바람이 가져가자 이내 무릎을 끌어안고 울었다. 그것들이 소리를 들을까 봐 울음소리 하나 내지 않으면서.

 

“형.”

“여기 봐봐요.”

 

벚꽃을 꺾어서 형의 귀에 꽂아주었다. 사람의 것인지조차 모를 피가 덕지덕지 묻은 얼굴과 화사한 벚꽃이 이질적이었다. 형이 웃었다. 잠을 제대로 잔 지 한 달이 넘어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 머리였어도 하나만은 확실했다. 나는 형만 웃을 수 있다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다.

봄은 그것들이 창궐하는 세상에 오기에는 지독히도 낭만적이었다.

 

*

 

사방에서 시체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 얼굴을 가린 흰 천을 윤기가 신경질적으로 내렸다. 이거 아무 소용도 없는데요. 얇은 천은 아무런 냄새를 가려주지 못했다. 시체가 썩는 냄새도 숨에 섞여나오는 살아있는 사람의 냄새도. 일부만 남은 그것들이 지나가는 우리를 향해 그르렁거리며 다가오려고 버둥거렸다. 그래봤자 온전히 신체를 보전하고 있는 건 없어서 제자리걸음이었지만.

 

“오늘은 이 집 어때?”

“형의 로망이었던 집이네요.”

“이럴 때 아니면 또 언제 살아보겠어.”

 

정문에 서서 집을 올려다봤다. 빨간 지붕에 초록색 외벽이었다. 마당에서부터 현관까지 돌길이 이어져 있었다. 세상이 망하기 전이었으면 이 집은 얼마나 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형과 내가 밟고 있는 땅은 강남 한복판이니까 더럽게 비싸겠지.

 

“다음엔 수영장 딸린 집을 찾아볼까?”

 

현관과 창문이 부서지지 않았는지 확인하면서 집 주변을 돌던 형이 아직 정문에 서 있는 나를 돌아봤다. 형이랑 같이 있으면 어디든 좋아요. 분위기 따라 능글거리는 말을 한마디 던지고는 그제야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가끔 이런 대화를 주고받았다.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오글거리는 대화들. 사랑한다는 말이 담백하게 느껴질 정도로 저 밑바닥에서부터 심장과 목을 할퀴며 올라오는 날 것 그대로의 문장을 말이다.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지내는 날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안감에서 나온 버릇이었다.

당장 형과 마주 보며 웃고 있지만, 형이 열고 있는 저 현관문 너머에 그것이 있다면, 문고리를 돌리자마자 온몸으로 형에게 달려든다면, 당황한 형이 방어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내가 형에게 도달하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면 형은 그것에게 제 목덜미를 내어주고 말 것이다. 그럼 우리의 시간도 거기서 끝이 난다. 둘 중 누구도 끝내고 싶어 하지 않았는데 사람도 아닌 무언가에 의해 끝나버린다. 결말을 감당하는 건 남겨진 사람의 몫이다.

 

형이 없는 삶은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모든 게 다 사라지고 남은 건 서로밖에 없었다.

 

“근처에 그것들 얼마나 있었어요?”

“열셋 정도?”

“얼마 없네.”

“그럼. 얼마 없지.”

 

언젠가부터 그것들을 좀비라고 부르지 않게 되었다. 아마 처음으로 그것들로 변하기 전의 사람을 죽였던 때부터였던 거 같은데 더듬어봐도 그보다 더 정확하게는 떠오르지 않는다. 특히 나와 의사소통이 가능했던 사람을 도끼로 내리찍었을 시점에 딱 맞춰진 기억은 나에게 없다. 당시의 상황은 컷 편집을 해놓은 마냥 통째로 날아갔다. 그 뒤에 사흘 내내 사람의 눈동자만 봐도 헛구역질을 했던 망할 기억은 생생하게 남아있지만.

몸이 거부하여 삭제했던 기억을 억지로 불러올 필요는 없었다. 장면을 기억해내면 그동안 잊고 있었던 죄책감까지 한 번에 몰려와 나를 저 깊은 구덩이 속으로 끌고 갈지도 몰랐다. 그래서 찾으려는 일말의 행동조차 하지 않았다. 의식적으로 지우고 또 지웠다. 기억을 지우려 했다는 기억마저도 지우면서 끊임없이 같은 기억 속에 살았다.

 

“너는 저쪽 찬장 뒤져봐.”

“알겠어요.”

“그것들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조심하고.”

“내가 형인가.”

 

나는 부엌 쪽을, 형은 가장 안쪽에 있는 방부터 살피기로 했다. 우리가 찾는 건 먹고 탈이 나지 않을 정도의 물, 통조림, 그리고 공구 상자였다. 왼쪽에서부터 하나씩 찬장을 열었다. 다섯 번째까지 열었을 때 내가 찾은 건 두 개의 옥수수 캔이 전부였다. 에이씨, 신경질적으로 찬장 문을 닫았다. 아귀가 맞지 않는 문이 삐걱대다가 갑자기 가해지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경첩이 떨어졌다. 지지할 게 없는 문은 곧장 바닥에 처박혔다.

 

“무슨 소리였어?”

“그냥 경첩 문이 좀….”

“아…, 아…. 나는 설마….”

 

러그 하나 깔려있지 않은 바닥에 문이 떨어지면서 큰 소리를 냈다. 끝 방에 있던 형이 소리를 듣자마자 뛰어왔다. 얼굴이 온통 겁에 질려있어서 흰 종이 같았다. 별일 아니라는 말에 형은 한숨을 내쉬고는 비틀거리며 원래 있던 방으로 돌아갔다. 조각난 경첩 조각을 쥔 채로 뒤돈 형의 등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지옥 같은 세상에 적응해서 멀쩡한 척을 해봤자였다.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 우리가 눈뜨고 있는 곳이 예전과 같지 않다는 걸 잔인하게도 알아버린다. 그때 같았으면 저 멀리서 소리쳐서 물었을 걱정을 이젠 핏기가 희끄무레하게 남아 있는 얼굴로 뛰어온다. 혹시 숨어있던 그것들이 튀어나왔을까, 그래서 둘 중 누군가를 물어버릴까 하는 최악의 상황을 머리가 상황 판단을 하기도 전에 상상해버리고 만다. 살아남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는데 거의 다 쓰고 얼마 남지 않은 상상력은 이럴 때만 쓰였다.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따가움에 반사적으로 꽉 쥐고 있던 손에 힘을 풀었다. 찰그락 소리를 내며 모서리에 피가 묻은 경첩이 찬장 문 위로 떨어졌다. 경첩 조각을 쥔 채 마디 끝이 새하얘질 정도로 주먹을 쥐는 바람에 손바닥이 여러 군데 베였다. 펼쳐 본 손바닥에는 피가 고여있었다. 피가 새빨갛다는 사실에 상처를 치료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안도감이 먼저 들었다. 새빨간 피가 의미하는 점은 많았다. 아직 살아있다는 점, 그들에게 감염되지 않았다는 점. 그것들의 피는 내 것처럼 빨갛지 않고 거무죽죽했다. 피가 고여있는 손을 다시 쥐었다. 꽉 쥔 주먹 사이로 굳지 못한 피가 뚝뚝 흘러나왔다.

 

“형, 뭐 좀 찾았어요?”

“한 달 치 식량하고 물.”

“이번 집은 뭐가 많네요.”

“초반에 당했나 보지.”

 

형이 거실로 나오는 걸 발견하고는 재빨리 손을 등 뒤로 숨겼다. 다쳤다는 걸 굳이 광고할 필요는 없으니까. 적당히 손을 옷에 문질러 닦고는 아까 찾았던 옥수수 캔을 형에게 건네줬다. 형의 양손에는 못 보던 가방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이건 뭐예요?”

“여기에 먹을 거 들어있어.”

“아….”

“그리고 앨범도.”

 

식량도 물도 많고 가족 앨범까지 있는 걸 봐서 형의 말대로 정말 초반에 당한 집 같았다. 가족 앨범 따위를 챙기는 짓은 초반에 대피하려던 사람들의 공통점이었다. 그건 세상이 망한 와중에도 인간으로서의 무언가를 잃지 않겠다는 다짐일 수도 있고 헤어진 가족의 빈자리를 채우겠다는 욕심일 수도 있다. 나중에는 그것 또한 짐이 되어서 모두 버렸지만.

 

“…짐 챙기다가 당한 걸까요?”

“그랬으면 그것들이 집 안에 있었겠지.”

 

남의 집을 침입하고 뒤지고. 이런 행동들에 대한 죄책감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애초에 지금 도덕을 따지는 자체가 괴이한 거였다. 그런데도 가끔 서랍장 따위를 뒤지다 가족사진 같은 걸 발견하면 이게 다 뭐 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온 세계가 다 멸망해서 백신이 발명될 거라는 희망조차 없는데 이런 식으로 얼마나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까. 그것들을 모두 제거한다고 해도 삼십 년은 족히 걸릴 텐데. 죽고 싶지 않다며 아등바등 살아봤자 끝은 허무할 것이다. 그것이 그것들에 물려서 맞는 결말이든 자연사로 죽는 결말이든 간에. 그리고 아마 나는 스스로 죽음을 택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손은 착실하게 찾은 식량이 몇 일치나 될지 계산하고 있었다.

 

“여기 턴테이블도 있다 윤기야.”

“오랜만에 노래나 들을래요?”

 

턴테이블 옆에 있던 엘피판 상자를 형이 뒤적거렸다. 앞뒤로 몇 번 뒤적거리다가 중간쯤에 있는 엘피판을 꺼내서 턴테이블 위에 얹었다. 턴테이블 위의 픽업을 옆으로 치우더니 손가락으로 빙빙 돌렸다. 나는 그런 형을 거실 바닥에 앉아서 올려다봤다. 탁자에 한 손을 짚고 삐딱하게 서 있는 형은 비쩍 말라 있었다. 까만 머리가 한동안 자르지 못한 탓에 뒷덜미를 덮을 정도로 길었다. 그 밑으로는 새하얀 티셔츠가 보였다. 형의 희끄무레하게 질린 얼굴보다 내가 하얗게 질릴 정도로 쥐었던 주먹보다 더 하얬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떠오를 정도로.

 

“내 취향인 곡이 없어.”

“아쉽네요.”

“대신 너가 불러주라.”

 

미련이 남은 손으로 상자를 몇 번 더 뒤적이던 형이 내 옆자리로 와서 앉았다. 아직 따지 않은 맥주를 형에게 건넸다. 냉장고가 작동을 멈춘 지 오래라 캔은 미지근했다. 유통기한도 이년을 훌쩍 넘어서 알코올이 다 날아갔을 수도 있지만 뭐, 나쁠 건 없었다. 취해서 거리를 배회하다 그들에게 먹히는 상황은 상상하지 않아도 되니.

 

“이거 진짜 마셔도 되는 거야?”

“마시기 싫으면 말고요.”

“에헤이, 이 친구.”

 

손에 들려있던 맥주가 쏙하고 빠져나갔다. 손바닥에 이는 마찰이 따가워서 형이 캔을 제대로 쥐기도 전에 놔버렸다. 손에서 피가 다시 배어 나왔다. 형이 보기 전에 숨기려 했지만 이번엔 형이 더 빨랐다. 손이 덥석 잡힘과 동시에 형이 들고 있던 맥주캔이 바닥을 나동 그랬다. 현관문까지 굴러가면서 흰 거품을 왈칵 토해냈다.

 

“너 이거 뭐야.”

“아까 베였어요.”

“아까? 어디에.”

“경첩 떨어진 거요.”

“왜 나한테 말을 안 했어?”

 

우리가 다투는 주제는 매번 같았다. 자꾸만 서로에게 무언가를 숨겼다. 숨기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 숨기고 또 숨겼다. 그리고 사랑만을 얘기했다. 영화에서는 늘 속마음을 꺼내놓고 싸우다가 사랑한다는 말을 못 하고 죽었는데 우리는 그 반대가 되었다. 사랑하는 마음은 계속 얘기해도 그 무한함을 다 표현할 수 없음을 알기에 그것만을 외쳤다. 그리고 각자의 괴로움, 외로움, 두려움은 숨겼다. 나조차도 찾을 수 없게 숨기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다. 형도 나도. 결국에 우리는 사랑을 하고 있음에도 두려움에 떨고 외로움에 지치게 되겠지만 당장은 입 밖으로 꺼낼 수 있는 단어가 사랑밖에 없다.

 

*

 

형이 살고 싶어 했던 집은 지금에 와서도 살기가 좋았다. 사람이 많지 않던 동네라 그것들의 수는 적었고, 우리에게 필요한 물건은 많았다. 이곳에서는 오래 머물 수 있을 줄 알았다. 유독 크게 들리는 그르렁 소리에 창문을 가린 커튼만 열지 않았더라면.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언덕 너머로 시커먼 형체가 보였다. 형체는 하나에서 둘로 늘어나더니 이내 수십으로 늘어났다. 그것들의 떼가 마을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옆에서 자고 있던 형을 다급하게 깨웠다.

 

“형, 일어나봐요.”

“으응, 왜…”

“밖에 그것들 떼 있어요.”

 

떼가 왔다는 소리에 형은 몸을 벌떡 일으켰다. 어깨까지 올라가 있던 이불이 허리께로 흘러내렸다. 창문 쪽으로 다가오는 형을 위해 커튼을 살짝 젖혔다. 젖힌 틈으로 빛과 함께 그것들의 떼가 보였다. 그 뒤는 일사불란했다. 빠르게 새 옷가지 따위를 가방에 집어넣고 지퍼를 닫았다. 옷이 지퍼 사이에 껴서 끝까지 닫히지 않았지만 정리할 틈이 없었다. 대충 둘러메고는 침대 옆에 내려뒀던 무기를 챙겼다. 문소리조차 나지 않게 현관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밖으로 나왔다. 아직 완전한 밤은 아니라 길을 잃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것들이 더 가까이 오기 전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어둠이 무섭게 우리를 쫓아오고 있었다.

형이 사랑했던 빨간 지붕의 집을 그렇게 버려졌다. 이번에만은 정착해서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내 환상이 마음속에서 산산조각 났다. 조각이 마음을 갈기갈기 찢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앞서 걷고 있는 형의 등을 바라봤다.

 

*

 

목적지는 없었다. 그냥 아침에 눈을 뜨면 짐을 챙겨서 아래쪽으로 내려갔고 밤이 되면 아무 집이나 들어가서 쪽잠을 잤다. 어두운 탓에 주변에 그것들이 얼마나 있는지조차 파악할 수 없어서 교대로 현관문을 지켜봤다. 제대로 된 잠을 못 잔 지 한 달은 족히 넘었지만, 형도 나도 불평 없이 걸었다.

 

한 날은 해가 뜨기도 전에 일어나서 출발했는데 비가 내렸다. 해가 하늘 높이 올라갈수록 내리는 빗방울의 굵기도 굵어졌다. 더 걷는 것을 포기하고 눈앞에 보이는 집 중에 가장 안전해 보이는 곳으로 들어갔다.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털면서 화장실에서 나오는데 거실에 있는 큰 창문 앞에 무릎을 끌어안은 형이 앉아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새 수선을 머리 위에 얹어주고 나도 옆에 앉았다.

 

“뭘 그렇게 보고 있어요.”

“비 오는 거 구경하고 있었어.”

 

형은 여전히 창문 밖을 응시하면서 말했다. 형의 관심을 끌어보려고 옆구리를 간지럽혔지만 내 손을 가만히 잡아 올 뿐 시선은 움직이지 않았다. 최근의 형은 뭐랄까, 넋이 나간 사람 같았다. 말수도 줄었고 시선이 내가 아닌 허공을 향했다. 그런 형과 대화 하려고 시도해봤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밤만 보내려 대충 찾은 집은 방음이 제대로 되지 않거나 주변에 그것들이 너무 많아 대화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형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예상할 수 없다는 게 제일 겁났다. 형과 같이 지내면서 서로의 눈빛만 봐도 뭘 원하는지 읽어낼 수 있다고 농담도 쳤는데 이젠 모르겠다. 아니, 실은 알고 있었다. 형의 눈동자는 아무것도 담고 있지 않았다. 그것들처럼 그저 공허할 뿐이었다.

 

“형.”

“응?”

“행복해요?”

“글쎄.”

 

그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나는 현실에서 멀어지더니 끝없이 깊은 구덩이 바로 앞에 서 있었다. 구덩이 가장 깊은 곳에는 형이 있는데 난 형을 구하러 갈 수가 없다. 구덩이에 떨어지려고 하면 무언가 나를 뒤에서 잡아 온다. 뒤를 돌아보면 형이 날 잡고 있었다. 저 아래서 죽어가는 형을 구하려는 나를 막는 건 또 다른 형이었다. 둘 중 누가 진짜인지 구별할 방법은 나에게 없었다. 그래서 그냥 형의 이름만 하염없이 부르고 있으면 다시 현실이었다. 현실로 돌아오면 진짜 형이 내 옆에 앉아있었다. 내 허벅지를 베고 눈을 감고 있는 형에게 왜 나를 잡았냐고 묻고 싶었지만 묻지 못한다. 형의 입에서 죽고 싶다는 말이 나올 것만 같았다. 맞잡은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그냥 손을 더 세게 고쳐잡을 뿐이었다.

 

“그럼”

“….”

“노래 불러줄까요.”

“노래?”

“저번에 못 불러준 거 같아서.”

 

그것들이 발생하고 초반에는 세상이 온통 시끄러웠다. 그것들의 속성과 대피 방법에 대해 알려주는 뉴스와 라디오, 혼잡한 거리에 클랙슨을 울려대는 차, 온갖 총소리, 그것들의 그르렁거리는 소리, 목을 물어뜯기면서도 살고 싶다는 처절한 집념에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 그때는 안전한 집 안에서만 있어도 공포심에 떨어야 했다. 내 허벅지를 베고 누워있던 형을 끌어안고 같이 누워서 눈을 감으면 사위가 조용해졌다. 그것들이 그르렁대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처음 그것들이 나타난 지 이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그동안 많은 것들이 죽었다. 그것들의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것들이 정말 줄어들고 있다는 걸 깨달았던 날에는 형과 꽉 껴안고 울었다.

창문 너머로 빗줄기가 더 거세졌다. 조금 더 벚꽃을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을 모르는지 비는 야속하기만 했다. 봄비에 벚꽃 나무가 이리저리 휩쓸린다. 연약한 꽃잎은 물줄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바닥에 추락한다. 꽃잎이 추락해서 볼품없이 바닥을 굴러다니는 꼴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얇은 꽃잎이 내 속의 낭만을 베어갔다.

 

*

 

우리는 끊임없이 움직였다. 한곳에 정착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멈추면 그 순간부터 결국 도태되고 말 것이다. 마을이나 다른 무리를 찾아서 합류해야만 했다. 어디로 갈지 정하지 못해서 한참을 방황하다가 마지막에 정한 종착지는 제주도였다. 북쪽은 중국에서 넘어온 그것들로 막혀있었기 때문에 다른 나라로 넘어갈 수는 없었다. 제주도는 섬이니까 그 땅 위에 발붙이고 있는 좀비만 없애면 살기 좋은 곳이 될 거라는 꿈, 환상. 그것들은 물을 건너지 못한다. 발목까지 오는 얕은 개울조차 건너지 못하는 것을 형과 본 적이 있으니까 확실한 사실이다. 바닷가에 도착하면 일단 하루 자고 다음 날 해가 뜨자마자 두 명이 겨우 앉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어선을 구해서 바다를 건너면 됐다. 제주도에 있는 그것들을 모두 제거하면 형과 예전 같은 나날을 보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제주도까지 내려갈 계획을 세우면서 형은 오랜만에 웃었다. 반달 눈이 휘어지면서 애교살이 도톰하게 올라왔다. 세상이 망하기 전에 나에게 매번 지어줬던 웃음이었다. 윤기야, 나도 너 좋아해. 라고 속삭여주던 웃음. 눈동자에 그것들의 기운이 없어졌다. 나는 안전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기대감보다 형이 웃었다는 쪽이 좀 더 좋았다. 형과 마주 보며 환하게 웃었다. 한참 전에 져버린 벚꽃 내음이 집 안에서 나는 것만 같았다.

 

*

 

“윤기야, 바다야.”

 

“우리가 바다에 왔어.”

 

이주를 꼬박 걸은 후에 우리는 바다에 왔다. 2년 만에 다시 찾아온 바다는 여전히 광활했고 여전히 고요했다. 나는 어렸을 때 바다를 무서워했다. 정확히는 바다를 무서워 한 게 아니라 내 키보다 높이 치는 파도를 무서워했다. 지금에야 내 키보다 큰 파도를 보기 어렵지만 어렸을 때는 바닷가로 밀려오는 파도가 다 나보다 커 보였다. 그러다가 중학생 때 형이 기말고사가 끝나자마자 나를 데리고 부산까지 내려갔었다. 갈아입을 옷도 없고 그나마 입고 있던 옷도 교복이었던 나를 형이 다짜고짜 바다에 빠트렸었다. 가라앉을까 봐 버둥거리던 나를 모래사장에 앉아있던 형이 놀렸다.

 

거기 너 허벅지까지도 안 와, 바보야.

제가 왜 바보예요.

바다를 무서워하는 보물. 줄여서 바보.

보물은 또 왜?

넌 내 보물이니까?

아 오글거려요.

형의 진심인데 어떻게 오글거린다고 할 수 있어.

 

이 바다를 건너면 제주도가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근데 다른 선택지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배에 올랐다. 너 이거 조종할 줄 알아? 아뇨. 솔직히 말해서 좀 웃겼다. 저 너머에 태평양이 있을지 제주도가 있을지도 모르고 배를 조종할 줄 아는 사람도 없는데 무작정 배를 탔다는 사실이. 미쳐가는 세상에서 살다 보니 내 개그 코드도 점점 미쳐가는 것 같았다. 내가 웃어놓고 왜 웃었는지 몰랐다. 좋은 점 하나는, 형의 개그가 나한테 먹혔다.

 

우리는 결국 수영장이 딸린 집을 찾아냈다. 벽돌집이 골목마다 있는 동네였다. 형은 만족스러운 듯 손뼉를 치더니 정문을 흔들었다. 집주인이 잠가 놓은 것인지 문이 열리지 않고 덜컹 거리만 했다. 방어책을 조금이라도 구축하려면 문을 부수지 않은 쪽이 현명했기에 메고 있던 가방을 담장 너머로 던졌다. 가방이 잔디밭 위로 떨어지는 소리가 났음에도 집 안에서 그것들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제야 담장을 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정원은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기는 했지만, 원래는 잘 가꿔놓았던 티가 났다. 봄이 오면 담장 밑에 나란히 앉아서 형과 꽃을 심는 상상을 했다. 그 집을 떠나오고 나서 처음으로 그려본 미래였다. 상상한 풍경은 나쁘지 않았다. 그때쯤이면 동네에 있는 그것들은 처리할 수 있겠지. 그럼 한결 조용해질 거고 천천히 범위를 넓혀나가면 됐다.

형과 나는 이곳을 집으로 삼기로 했다. 세상엔 ‘집’이라는 개념이 남아있지 않았지만 우리는 우리의 두 번째 집이 생겼다.

 

이번 집은 운이 반만 있었다. 수영장이 딸린 예쁜 집이었지만 집 안은 텅텅 비어있었다. 서랍장을 다 꺼내서 뒤집어봐도 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 손에 들고 있던 페트병을 흔들었다. 얼마 남지 않은 물이 찰랑거렸다. 가방에도 한 병밖에 없으니 찾으러 가는 걸 미룰 수는 없었다.

 

“구하러 가야겠죠?”

“물?”

“네.”

 

형의 표정이 사뭇 비장했다. 오는 길에 대형마트가 있는 걸 확인했다. 그 안에는 물과 캔이 가득하겠지만 문제는 그것들이었다. 시내에는 그것들이 많았다. 대형마트나 백화점 쪽에는 배로 많았다. 그래도 가야 했다. 물 없이는 사흘도 채 버티지 못할 거였다.

형은 정원에 있던 삽을, 나는 우리가 들고 다니던 망치를 챙겼다. 물을 담아올 가방까지 메고는 서로 마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웃음이 터졌다. 그들에게 이목이 끌리지 않게 입을 손으로 틀어막고 허리까지 접어가며 웃었다. 우리가 시내에 나갈 때마다 하는 일이다. 만화 주인공처럼 비장하게 서로를 마주 보고 끄덕이기. 그리고 폭소하기도 있지만, 앞의 행동을 하면 자연스럽게 웃음이 나와서 굳이 말하지 웃음이 터진다. 이건 형의 의견이었다. 이게 마지막으로 보는 서로의 얼굴이니까 웃고 가자고 봄비가 내렸던 그 날 말했다. 형은 우리가 어떤 결말을 맞을지 생각하고 있던 걸까. 그래서 눈동자가 공허해 보였던 걸까. 끝은 결국 그것들이 되는 것일테니까.

 

*

 

“셋, 둘, 하나에 던져.”

 

마트 입구는 예상했던 대로 잠겨있었다. 마트 안에 있었던 사람들이 잠가놨을 것이다. 문 안쪽에는 진열대 같은 게 더 있을 것이므로 맨몸으로 문을 열 수는 없었다. 문으로 들어갈 수 없다면 창문을 깨면 된다. 형은 막힌 문을 확인하고 사라지더니 곧 상체만 한 돌을 들고 돌아왔다. 그게 뭐예요? 저 안에 던질 거. 그렇게 큰걸? 너를 던질 순 없으니까. 대신 너랑 크기 비슷한 거 가져왔어. 너가 던져. 형의 구호에 맞춰 돌을 던졌다. 창문이 큰 소리를 내며 와르르 깨졌다. 소리를 듣고 그것들이 몰려오기 전에 안으로 들어가서 물건을 빠르게 챙겨 나와야 했다.

 

“물하고 또 뭐 필요해요?”

“통조림, 라면 이런 거.”

“맥주는?”

“당연히 챙겨.”

 

효율적인 작업을 위해 형과 갈라졌다. 뭔 일 나면 소리 질러요. 알았죠? 형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확인하고는 마트 입구에서 왼쪽으로 갔다. 사람들이 많이 털어갔는지 예상보다는 통조림 캔이 적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한 달은 버틸 수 있었다. 가방 안에 캔을 최대한 많이 욱여넣었다. 저번에 옷이 걸려 고장 났던 지퍼를 고치지 못해서 가방 입구가 힘없이 열려있었다. 그 부분으로 캔이 떨어지지 않게 손으로 꽉 잡았다. 또 챙겨갈 만한 게 뭐가 있을까 둘러보며 형 쪽으로 가는데 얼굴이 따가웠다. 위에서 뭔가 떨어지는 것 같아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들었더니 낙후된 천장 틈으로 돌가루가 떨어지고 있었다. 무시하려다가 돌가루가 다시 한번 후두둑 떨어지자 걸음을 우뚝 멈췄다. 아무 자극 없이 천장에서 갑자기 돌가루가 떨어질 일은 없었다. 그렇다면 위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천장이 진동해서 돌가루가 떨어졌다는 말이다. 아까 창문을 깨면서 낸 큰 소리에 그것들이 일 층에 잔뜩 모였고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한 천장이 요동쳤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는 순간 저 멀리서 형의 비명이 들렸다. 꽉 잡고 있던 가방을 내팽개치고 형에게로 달려갔다. 그리고 목격한 광경을 나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형의 옆에는 천장이 무너져내린 파편이 있었고 형은, 형은.

비명을 지르는 형의 목이 그것에게 물어 뜯기고 있었다.

형이

그것에게

물렸다.

 

주변을 황급히 살피다가 형이 떨어트린 삽을 발견했다. 주워서 그것의 머리를 향해 가격했다. 그것은 머리를 맞고도 형의 목덜미를 놓지 않았다. 다시 한번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가 내려쳤다. 그것의 머리가 아작나면서 무를 대로 물러진 뇌가 같이 뭉개져 사방으로 튀었다. 그것을 온 얼굴에 그대로 뒤집어쓰고 쓰러지는 형의 몸을 받쳤다. 형의 목은 토가 쏠릴 정도로 역겹게 뜯겨나가 있었다. 정맥이 끊어져서 피가 솟구쳐올랐고 끊어진 힘줄이나 근육 따위가 지저분하게 목 주변에 널려있었다.

 

“형… 형…”

 

뜯겨나간 목덜미와 입에서 피를 울컥 토하는 형을 끌어안고 마트를 빠져나왔다. 집. 집에 가야 했다. 집에는 구급상자가 있으니까 형을 치료할 수 있을 거였다. 머리가 하얗게 질려갔다. 하얗던 형의 티셔츠가 붉은 피로 물들어갔다. 때 묻지 않던 순수함이 피에 절어버렸다. 마트에서 빠져나와 하염없이 걷다가 질질 끌리는 형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어제 비가 와서 축축한 잔디가 손바닥을 간질였다. 뭘 해야할지 모르겠다. 뇌가 그대로 정지해서 내 몸도 같이 멈춰버렸다. 푸른 잔디밭 위로 형의 붉은 피가 고였다. 내 티셔츠를 벗어 형의 상처를 꾹 눌렀다. 이걸로 지혈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형이 죽지 않았으면. 간절한 바람과 다르게 피는 끊임없이 나왔고 내 티셔츠를 다 적시더니 이내 내 손까지 빨갛게 물들었다. 눈물이 볼을 타고 죽죽 흘러내렸다. 제발 죽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형의 이름밖에 없었다. 눈물이 가득 고여 앞이 뿌예졌다가 볼을 타고 흐르면 다시 선명해졌다. 형의 얼굴이 흐려지는 그 짧은 순간이 무서워서 손등으로 눈물을 계속 훔쳤다. 형은 몸을 들썩이면 몇 번 기침하더니 내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나에게 뭔가를 속삭였다. 내 울음소리에 형의 목소리가 묻혀서 방금 말한 게 뭐냐고 물어보려는데, 형이 숨을 안 쉬었다. 호흡을 멈춘 몸은 급격히 싸늘해졌다.

 

“형.”

“아까 뭐라고 했어?”

“내가 못 들어서 그러는데 한 번만 더 말해주라.”

“장난치지 말고. 응?”

 

모든 게 다 꿈 같았다. 온통 붉은색뿐인 형도 나도 그냥 모든 게 다. 숨을 멈춘 형을 꽉 끌어안았다. 형이 차갑다면 내 체온으로 따뜻하게 만들어주면 됐다. 몇십 분을 그러고 끌어안았는데 형은 끝까지 따뜻해지지 않았다. 야속하게도 이건 환상도 꿈도 장난도 아니었다. 형의 몸을 천천히 잔디밭 위에 내려놓고 비틀거리며 마트로 되돌아가서 도끼를 들고 왔다. 이대로 둔다면 형은 그것이 되어 다시 살아날 것이다. 누워있는 형의 머리맡에 서서 도끼를 높이 쳐들었다. 내려치기만 하면 되는데 손이 굳어서 움직이지를 않았다. 형을 죽이고 싶지 않았다. 형이 그것으로라도 다시 살아나서 내 옆에 있어 줬으면 한다. 눈을 감고 누워있는 형이 금방이라도 눈을 뜰 것만 같았다. 그럼, 그럼 나는 형을 죽인 게 되어버린다. 감당하기 힘든 현실에 헉헉거리다가 도끼를 다시 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

 

 

 

형이 죽기 전에 뭐라고 했더라. 윤기야, 나 사실 조금 겁나. 였던가. 그것보다 더 전이었던 것 같다. 그럼 완전히 그것이 되기 전에 나를 죽여줘. 내 머리를 내려쳐. 이랬던가. 생각이 나지 않아 죽은 듯이 옆에 누워있는 형을 돌아봤다. 아, 맞다. 형은 진짜 죽은 거였지. 죽은 듯이 자고있는 게 아니라. 형이 그렇게 된 후로 기억력이 점점 흐려졌다. 형과 함께 봤던 벚꽃이 어땠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내가 꽂아준 벚꽃을 귀에 꽂고 환히 웃던 형이 선명했다. 눈을 깜박하니 그때의 형이 웃고 있었는지 울고 있었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차갑게 식은 형을 끌어안고 살아있을 때와 똑같은데 왜 살아있지 않냐고 따지고 싶었다. 내가 형을 끌어안아 몸을 다시 따뜻하게 데우면 살아날까, 하는 상상 속에서 살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옆을 돌아보면 아까와 변함없는 모습으로 눈을 감고 있는 형이 보였다. 제가 내려친 도끼로 인해 두 갈래가 난 얼굴의 형이.

 

어쩌면 우리는 그동안 낭만 속에서 살았을지도 몰랐다. 원래 어떤 색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피에 뒤덮인 도끼로 수없이 많은 그것의 머리를 갈랐다. 그중에는 우리와 같은 사람도 있었을까. 그저 절뚝거리던 것일 뿐인데 내가 착각하고 죽여버렸나. 난 살인을 한 건가. 난 살인을 한 걸까? 도끼를 쥐었던 왼손이 벌벌 떨렸다. 떨리는 손끝에서 핏방울 똑똑 떨어지며 바닥에 점선을 그었다. 나는 형을 죽였다. 의식이 있는 사람을 죽였다. 한순간에 내가 죽였던 모든 것들에 의문이 생겼다.

그것에 물리면 서서히 죽어간다. 사람이었을 적의 기억이 하나둘 소멸하고 사고하는 방법을 잊고 오직 살아있는 것의 살과 피만을 탐하는 본능만이 남는다. 그 본능 역시 사람의 것이 아니겠지. 그것들은 사람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에 물린 후 이성을 잃기 전의 것은? 그들은 사람일까 그것일까. 나는 그들마저 죽였는데 그들을 사람으로 정의 내린다면 어떻게 되지. 사람을 죽여놓고 그동안 너무 멀쩡하게 살아남았다. 사람을 죽여놓고 밤이면 촛불을 켜둔 침대 위에서 형에게 사랑보다 더한 것을 속살거렸다.

 

속이 울렁였지만 게워도 나오는 건 없었다. 이제는 저 자신마저 사람인지 확신할 수 없게 되었다. 푸른 하늘을 보고 누워있는 형의 몸 위로 벚꽃이 내려앉았다. 아주 거대한 벚꽃 나무 아래에서 형과 나는 죽음도 삶도 아닌 무의 공간을 하염없이 헤엄치고 있었다. 벚꽃 나무도 아름다웠고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은 더 아름다웠다. 지난해 형의 울음과 함께했던 봄이 다시 찾아왔다. 벚꽃 내음이 사방에서 진동했다. 옆에 놓여있던 흰 천을 얼굴에 둘렀다. 시체 썩는 냄새를 막기 위해 썼던 흰 천은 아무것도 막아주지 못했다.

 

“형.”

“석진이 형.”

“석진아.”

 

대답 좀 해봐…. 밀려오는 감정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형의 위로 쓰러졌다. 형이 정말 죽었다. 형에 관해서는 어떤 것도 후회한 적이 없는데 처음으로 후회를 했다. 형을 죽이지 말 걸 그랬다. 그것으로라도 살려둬서 내 옆에 두었어야 했다.

기저에 깔려있던 추악한 본능이 죄책감과 함께 엉켰다. 엉키고 엉킨 것들이 발끝에서부터 몸을 휘감고 올라왔다가 손끝에서 떨어지는 핏방울에 섞여 떨어져 나갔다. 피에 의해 씻겨나가는 추악함에 안도하고 있으면 죽은 줄 알았던 것이 다시금 꿈틀거리며 살아났다. 손을 베어 피가 멈추지 않게 하면서 그것을 죽이고 또 죽였다. 그런데도 다시 살아나 나를 까득까득 씹어먹으려 했다. 나는 이 자리를 평생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마실 물이라도 구하러 일어나는 순간 순회하던 추악함이 때를 놓치지 않고 나를 잠식하고 말 것이다. 지겹도록 증오한 피에 의해 나는 구원받았다. 피의 처음이 형이었으니 형이 나를 구원해주었다.

나는 이제 완벽한 괴물이 되었다. 사람을 죽였고 피를 탐하고 이성은 사라지고 본능만이 남았다. 김석진에게 구원받은 유일한 괴물이었다.

 

황망한 도로 한가운데에 나지막한 울음소리만 울렸다. 그 어느 날 형이 울 때는 울음소리를 나르느라 바쁘던 바람이 죽은 듯이 조용했다. 그것과 다를 바 없는 사람의 눈물에는 무엇도 관심 없었다. 형의 배에 얼굴을 묻고는 눈물을 울컥 토해냈다. 눈물이 거꾸로 숙인 얼굴을 따라 이마를 타고 내려갔다. 사랑한다는 말이 담백할 정도로 짙다고 생각했던 문장들이 실은 내가 가지고 있던 진심 중에 가장 가벼웠다. 형에게 진심을 다 줘버렸는데 형이 떠나버리면 나에겐 빈 껍데기만이 남는다는 사실이 두려워 가벼운 것을 무겁게 포장했다.

끝끝내 기억해낸 형의 마지막 말은 사랑한다는 거였다.

​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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