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신
w. 늑때
너를 못 잊으면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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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건이 있은 지 십년도 더 지난 후였지만 나는 여전히 고삼처럼 예민하고, 불같은 미열을, 하늘을 나는 조증을, 깊은 바다의 우울을 모두 끌어안고 있었다. 손톱을 물어뜯던 버릇은 오래전에 고쳤다지만 나의 병적인 예민함은 취재진들 앞에서 극에 달하고 있었다.
[ 우리를 충격에 몰아넣었던 늑해고등학교 사건은 14년이 넘도록 수습이 되고 있지 않아 여전히 잊을 수 없는 기억 속에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피해자들의 시신을 드디어 유족의 품으로 돌려보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지... ]
극비리에 진행된다던 늑해고 사건의 프로젝트는 준비기간만 5년을 잡아먹으며 모르는 사람이 있는 게 더 이상할 정도였다. 특별 수사팀이 교문 앞과 학교 운동장에 천막을 치고 모여 저마다 분주했다.
" 야, 이대원! 여기로! 여기로 모셔와! “
취재진을 뚫고 군 병력이 길을 내기 시작했다. 검은 방패를 앞에 내세운 군인들이 인간 띠지를 형성하고 나자 담당자들이 저를 양 옆에 서 길을 안내했다. 학교 담 위로 덧대어진 철조망은 검붉은 색으로 흉흉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덧대고 또 덧댄 덕에 철조망보다 철벽이라 해야 맞았다.
" 여기 있는 씹새끼들 어차피 다 감빵 행이야. 내버려둬. “
안절부절 해 하는 제 옆의 담당자의 어깨를 툭툭 친 김 소장은 14년 만에 열린 교문 안으로 저를 데리고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아마도 신관이었을 건물은 반쪽이 날아가고 남은 반쪽마저도 타다만 뼈대만을 드러내고 있었다.
" 이미 다 들으셨겠지만 무리하실 필요 없고요. 간단한 진술이면 됩니다. 혹시 생각이 날 만한 게 있으시면 해서. 예예. 저 쪽으로 가서 이야기하시죠. “
다른 지역에서도 일어났던 전국적 사건이지만 이렇게 좁은 곳에서 많은 생명체 B들이, 혹은 생명체 B의 먹이가 되어 사람들이 죽어갔던 곳은 늑해고가 유일했다.
" 레이더 이상 무입니다. “
대원 하나가 와서 김 소장에게 보고를 하고 지나간다. 기술력이 발전한 지금이야 우리는 생명체 B가 내는 신호를 잡아 생명체 존재여부를 파악한다지만 그때는 매뉴얼조차 없었다. 사망자만 400여명에 달했던 아비규환의 현장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김석진, 저 혼자였다.
김 소장이 여러 부서와 인사를 나누는 동안 나는 14년만의 학교와 눈도장을 찍고 있었다. 본관은 아예 불타올랐는지 형체를 찾을 수 없었고 운동장만 덩그러니 남아 햇빛을 온전히 받아내고 있었다. 특별 재난 팀에서 왔다고 제게 인사를 건넸던 김 소장은 얼마 못가 욕 짓거리를 뱉었다.
“ 하, 나 이 씨발년들. ”
김 소장은 침을 운동장 모래 위로 뱉어내더니 플래시를 터트리는 취재진들을 잡으러 나섰다. 김 소장이 떠난 뒤 혼자 남은 나는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얼른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이 저를 우울의 바다로 처박아 넣을 때쯤 이였다. 나는 홀린 듯 교정의 나무 계단을 올랐다. 계단에 묻은 낡은 핏자국들은 이제 계단 본연의 색이라 봐도 무방했다. 이미 제겐 잊혀버린 일이였다.
봄이라고 꽃이 다 피는구나. 나는 교정의 구석, 조그만 꽃봉오리를 틔운 매화나무 아래에 섰다. 그 몇 뼘 안 되는 곳에 올라섰다고 저 멀리 농구골대와 낡은 구관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구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제 주위에 사람들은 많았지만 각자 할 일이 있었고 저를 신경 쓸 정도로 여유가 있어 보이는 이는 없었다. 머리가 아파왔다. 아마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내 말초신경이 내 머릿속을 긁어대는 탓이었다.
절대 너를 기억해냈다거나.
무엇인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서 라던가 하는 이유가 못 됐다. 그저 나는 한시라도 빨리 북적이는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구관의 현관문은 먼지가 앉았다 할 뿐 별다를 게 없었다. 내가 문을 밀자 끼익 하고 녹슨 쇠가 이는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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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걔네가 왜 가족을 찾아가는 줄 아냐? 생전 기억을 바탕으로 움직인대. 결국 뇌가 작동하고 있다는 거야. 생명체라는 거지. 그래서 좀비 생명체 B. 그렇게 규명한 거 아니겠냐. “
명호는 윤기의 책상에 제 걸상을 당겨 앉으며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얼마 전 일어났던 좀비 사건이야기였다.
으엑.
이어지는 명호의 설명에 석진이 얼굴을 구겼다.
" 그래서 살집이 뇌로 붙는데 이게 또 전혀 인간의 내장과 상관없는 새로운 기관을 만들어. 그래서 어제 뉴스에 나온 거 보면 머리 위에 머리 같은 게 하나 더 있었잖아. "
" 근데 왜 가족을 먹어? “
" 음....... “
" ........ “
" ....가정폭력 피해자가....죽으면.... “
" ...그 기적의 논리 진심이냐? “
" 뭐, 지적수준이 딸린다거나, 찾아가기 쉬웠다거나. 아- 몰라. 야, 민윤기 넌 어떻게 생각 하냐? “
안자는 거 알어, 임마. 명호가 석진의 옆에 엎드려 있는 윤기를 흔들었다. 30분 전부터 미동이 없던 구부정한 어깨가 느적느적 일어나 앉는다. 낮은 목소리가 웅얼댔다.
" 글쎄, 침대에 누워 자고 싶었나. "
윤기의 말에 명호가 혀를 찼고 석진이 깔깔 웃었다. 다시 책상에 엎드린 윤기가 입을 열었다. 딴 세상 이야기처럼 건조한 목소리였다.
" 대가리를 잘라도 움직이고. 대가리서 곤충 팔다리 마냥 기어 나오기도 하고. “
" ....... “
" 그래서 대가리를 잘라다가, “
" ....... “
" 불을 질러야 돼. “
" ....... “
정확히 3초 뒤에 명호는 그런 건 어디서 알았냐며 호들갑을 떨었고 당연하게도 출처는 유투브였으며 인류멸망이 다가오는 김에 우리 유투버나 하자 같은 시덥잖은 소리를 이어갔다. 그 동안 석진은 윤기의 눈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열아홉, 고3인 석진이 최근에 가진 가장 흥미로운 취미였다.
" 야 김석진. “
" 왜. “
" 사람 빤히 쳐다보지 마라. “
" 왜, 형한테 반하겠냐? “
" 부정 탄다. “
" 와, 민윤기. 내가 좀비가 되면 너 먼저 물 거야. 진짜. “
" 대가리 조심해라. “
" 그럼 내가 불을 지를게. “
야, 박명호. 결국 시뻘게진 얼굴로 석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엎드려 킥킥킥하는 소리가. 윤기의 어깨가 들썩였다.
그 날은 아침부터 봄비가 오락가락했다. 등교의 마지막을 알리는 안내문이 돌았다. 확실히 수업이 이대로 진행되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생명체 B와 관련된 사건은 경찰에 제보되는 수만 백 단위를 넘어섰다고 했다. 좀비가 나타났다며 전국이 떠들썩거렸다. 석진은 복도에서 캐릭터가 그려진 우산을 털어냈다. 아주 가늘게 내리는 봄비였지만 그렇다고 우산 안 쓰려니 꾸준히 멈추지 않고 내렸다.
뭐야, 괜히 아침자습 시간에 맞춰왔나. 교실 칠판에는 단축수업을 한다는 말이 적혀있었다. 두 명의 아이들이 앞자리에 앉아있을 뿐 교실은 썰렁했다. 하품을 쩍쩍하며 가방을 내려놓는데 1분단의 맨 끝자리, 책상 위에 푹 꺼진 검은 스포츠가방이 보였다. 오케이. 석진은 방금 우산 통에 넣어 둔 캐릭터 우산을 챙겼다. 석진은 예에. 하는 소리를 내며 두 걸음에 한 번씩 우산을 퐁퐁 폈다 접었다.
3년을 같은 반을 했더니 윤기를 따라다니는 건 하루의 식사시간쯤 되었다. 숨 쉬는 중요성에는 못 미쳐도 없어서는 안 될 시간이었다. 윤기가 있을 곳은 뻔했다. 매화가 가득 핀 교정을 지나 건물 뒤편의 작은 농구장으로 향했다. 모퉁이에 가려 농구 골대의 반쪽이 보였다. 통통이는 농구공 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야 미뉸기이-.
농구공을 튀기고 있던 윤기는 석진을 슥 한번 돌아본 뒤 슛을 던졌다. 노골이었다. 비까지 맞으며 저게 뭐람. 석진은 곧장 우산을 들고 윤기에게 뛰어갈 참이었지만 윤기가 틈을 안줬다. 퉁. 퉁. 농구공이 바닥에 튀면 수십 개의 물방울들이 같이 튀어 올랐다. 별 수 없이 석진은 벤치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 윤기야. 오늘 단축수업 한 대. "
듣고 있어?
어. 알어.
너 옷 다 젖어서 어쩔래?
체육복 입지 뭐.
윤기는 작년까지 농구부를 했다. 석진은 처음에 윤기가 답지 않게 농구부를 한다고 생각했다. 수업시간에는 늘 자던 윤기였으니까. 활동적인 윤기란 생각할 수가 없었다. 농구대회 때 이를 악물고 뛰던 민윤기가 어찌나 생소하던지. 그러니까 무언가에 매달려 목숨을 거는 민윤기가.
윤기는 다시 슛을 날렸다. 또 다시 노골이었다.
" 나 아버지 따라 가기로 했어. "
윤기가 튕겨져 나온 공을 붙잡아 그대로 날았다. 터엉. 하는 묵직한 소리가 울렸다. 덩크슛을 성공시킨 윤기가 골대에 매달려 있다 내려왔다. 윤기가 공을 주우러 가기 전에 석진이 일어났다. 윤기에게 우산을 씌운 석진이 으아. 하고 윤기의 교복셔츠를 검지와 엄지로 잡아냈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는 민윤기는 진짜 말 그대로 홀딱 젖어 안의 뒤집어진 런닝 브랜드표 까지 다 보였다. 석진은 트라이 런닝구 투쁠투 하던데. 같은 소리를 했다.
농구장 뒤, 구관 현관에서 석진이 우산을 접었다 피며 물방울을 튕겨내고 있었다. 가는 비라 우산을 쓸 때는 소리가 안 났었는데 현관에 서 있으니 건물을 타고 빗소리가 제법 들려왔다. 윤기가 머리를 털면 석진이 물이 튄다고 으악 으악 하는 높은 비명소리를 냈다. 1교시 시작까지는 꽤 남은 시간이여서 윤기가 머리를 말리는 동안 석진이 폰을 보며 주절주절 떠들어댔다. 생명체 B가 어쩌고. 박명호 겁쟁이가 어쩌고. 윤기는 별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 너는 눈치가 씨발 없냐. “
별안간 윤기가 화를 냈다.
" 그걸 왜 이제 말해? “
" 허..., 박명호가 쫄아서 안나온 걸 내가 어떻게 미리 말해? “
" 안 간다며. “
어딜?
너 아버지 따라 안 간다며. 윤기가 이렇게 제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은 또 오랜만이었다. 윤기는 아주 잠깐 석진을 노려보다가 고개를 돌리며 머리를 넘겼다. 젖은 머리를 뒤로 넘긴 윤기가 인상을 썼다. 뽀얀 이마가 근심걱정으로 가득 차 씩씩 화를 내고 있었다. 좀처럼 변화가 없는 윤기의 얼굴이 공격적이었다. 윤기의 가슴께가 오르락 내렸다. 마치 농구경기를 뛰는 것처럼. 그렇게 세상 긴박한 전투를 벌이는 듯 윤기의 미간이 가운데로 모여든다. 고교결승전이었나. 우승을 놓친 민윤기가 공을 주울 생각도 못하고 그런 표정으로 서 있었다. 석진은 무릎을 굽혔다.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모양새로 눈을 감았다. 윤기의 입술에 제 입술을 가져다 댔다. 윤기의 윗입술에 제 아랫입술이 빗겨 닿았을 뿐이었다.
" 악-!! “
윤기는 곧바로 석진을 밀어냈다. 비로 젖은 맨땅에 엉덩방아를 찧은 석진이 윤기를 노려봤다.
" 아, 미쳤어?! “
윤기는 벅벅 입술을 손등으로 닦아내고 있었다.
" 너야말로 미쳤냐?! “
" 아닌데? 파쳤는데?! “
우렁찬 목소리가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나쁜 놈. 웃지도 않네. 미동도 없는 무표정의 윤기를 보고 머쓱해진 석진이 몸을 일으켰다. 아침부터 꾸역꾸역 우산을 쓰고 온 보람도 없었다. 엉덩이부터 교복바지까지 흙탕물로 완전 엉망이 됐다. 야, 나는 체육복도 없는데. 입술이 대발 튀어나온 석진이 다리를 벌려 어기적어기적 현관 안으로 들어오는데 윤기가 자꾸 욕을 씹었다. 아 미안하다고. 석진이 윤기의 앞에 섰더니 윤기가 고개를 또 돌린다. 어허, 이거 봐라?
" 야, 민윤기. 삐졌어? 삐졌냐? “
건들건들 윤기에게 다가갔을 때였다. 석진의 앞으로 불쑥 윤기의 손이 올라왔다. 목덜미가 붙들렸고 이어 생각할 틈도 없이 두 입술이 맞닿았다. 아랫입술이 윗입술에 붙는 실수도 없이 윤기는 아랫입술은 아랫입술에 붙여 밀어붙이고는 석진의 윗입술을 벌려냈다. 아랫입술이 먹혀들고 혀가 밀려들어왔다. 비 냄새가 땀 냄새와 섞여 희미하게 윤기의 냄새가 났다. 윤기의 냄새를 맡으려 하면 할수록 숨이 막혀왔는데, 그럴수록 윤기는 석진을 밀어붙였다. 두 사람은 한동안 입술이 퉁퉁 부을 때까지 혀를 섞고 빨아댔다.
키스 후엔 둘 다 말이 없었다. 그러다 윤기의 교복을 각자 한쪽씩 잡고 돌리며 물기를 빼고 있을 때였다.
내가 널 못 잊으면 어떡하지.
그러면 어떡하냐, 석진아.
윤기는 그런 어울리지 않는 소리를 했다. 담담한 목소리라 더욱 그랬다. 어디 세상의 시름을 다 짊어지고는 해탈한 성인 못지않았다. 못 잊으면 못 잊는 거지. 무슨 말을 그렇게 서럽게 해. 내가 다 죄인 같게. 1교시 종이 울릴 때까지 우리는 윤기의 옷을 짜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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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이잉. 하고 시끄러운 사이렌이 울었다. 운동장의 무장한 군인들이 번쩍이는 사이렌을 머리 위로 높이 들었다. 갑자기 내리는 부슬비에 군인들이 천막 안으로 장비를 옮기던 참이었다.
" 야 철수해!! 접고 봉쇄 들어간다!! “
5년 동안 준비했던 프로젝트는 단 3시간 만에 엎어졌다. 생명체 B 레이더에 신호가 잡혔다. 6개월에 걸쳐 잡음하나 없던 레이더망이 큰 파형을 그려내고 있었다.
" 천막 조립해 넣을 시간이 어딨어?!! 두고 철수합니다..! 사람..!! 사람 먼저 챙겨 나가!! “
김 소장이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빗방울은 점점 굵어졌다. 어느 순간 김 소장은 소리치는 것을 멈추고 담배를 빨아들이는 것 마냥 입술을 모아 공기를 빨았다 내뱉었다. 눈두덩이가 찌그러져 주름이 겹겹이 잡힌 김 소장의 눈이 전쟁 통과 같은 운동장을 훑기 시작했다. 구급함을 챙기는 의료진들과 그 와중에 교문을 넘어 들어온 취재진과 대치하는 군인과, 공포에 떠는 이들과 비를 피해 장비를 옮기는 이들과....
김 소장이 코로 길게 숨을 뱉으며 쓰고 있던 군모를 벗어 손에 쥐었다. 김 소장의 머리에 빗방울이 그대로 닿아 머리카락이 젖어들었다. 김 소장에게 대원 하나가 뛰어와 고개를 꾸벅 숙였다.
" 1부대 학교 건물 중심으로 방어 대ㅇ.. “
김 소장이 대원의 뺨을 쳐올렸다.
" 증인 담당자 어디갔어. 당장 김석진씨 담당자 불러와. "
대원은 허둥지둥 담당자를 찾아 나섰다,
에이 시팔...김 소장은 비가 오늘 하늘을 올려다봤다.
내가 구관의 중앙계단쯤 왔을 때 비가 쏟아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유유히 이 어둡고 쾌쾌한 공간을 거닐었다. 머리는 이제 아파오지 않았다. 잊고 있던 기억들이 돌아오고 있었다. 1학년 때 나의 교실은 구관이었다는 것. 막 지은 신관을 사용하던 3학년들을 부러워했다는 것. 그리고 3학년에 올라 신관을 이용한지 막 한 달이 되었을 때, 교정에 매화가 폈고....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였다.
화아아아......
학교 구관 전체를 울리는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바람...?
바람소리라기엔 숨소리에 가까웠다. 나는 불현 듯 뒤를 돌아봤다. 오래된 학교 건물이라 일자형으로 쭉 뻗은 복도가 훤하게 트여있었으나 소리의 범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비 내리는 소리가 조금씩이 커짐에 따라 학교 안은 점점 어두워져 가고 있었다.
화아아아아....
다시 그 소리가 들려왔을 때 나는 숨소리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바로 제 귀 뒤쪽에서 퍼지는 숨은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지만 제 뒤에 서 있는 그것은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제 뒤에서부터 흘러나온, 아마도 제 뒤의 그것이 흘리고 있을 법한 찐득하고 붉은 액체가 제 발 아래를 적시고 있었다. 끈적이는 발을 움직여 나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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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숨소리가 내려앉는 고요한 종례였다. 교실의 절반이 휑했다. 1분단은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오지 않았다. 그 빈 책상의 끝에 민윤기는 그야말로 신개념 패션을 선보이고 있었다. 비에 젖어 시스루 교복을 입은 윤기는 오늘 만큼은 선생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듯 했다. 단축수업이라고 적힌 칠판을 두들기는 선생님께 좀처럼 집중을 못하는 것은 석진이었다. 얼굴의 반을 체육복 옷깃 사이로 집어넣은 석진이 코로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킁킁. 하고 체육복에서 나는 윤기를 냄새를 맡자 선생님의 말씀은 저 멀리 어디 아득한 이야기로만 들려왔다.
앞으로의 수업은 온라인으로 공지가 될 거라는. 시험에 나오는 문제를 설명하는 것도 아닌데 아이들은 그 비장한 목소리를 놓치지 않으려 집중했다. 다시 볼 날이 언제가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석진은 창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윤기는 1분단 맨 끝에, 저는 뒷문 쪽 4분단에 앉아 있었는데 여기서도 윤기의 짧은 속눈썹이 보였다. 그것 참 신기하지. 윤기야. 네 속눈썹이 하나하나 보이다니.
석진은 그만 픽 웃음이 샜다. 우스웠다. 일차적으로 민윤기가 저를 좋아한단 것이 우스웠고 두 번째로는 그게 나쁘지 않은 제가 우스웠다. 마치 바래왔던 것 같았다. 제가 꼬셔낸 것처럼 희열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제가 은근슬쩍 꼬셔댔을지도 모른다. 그래 이제 김석진은 인정할 때가 왔다. 민윤기가 보고 싶다는 마음과 이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존재하니까 그제야 진짜 사랑을 했다. 진짜 사랑은 무거워서 쿵쿵 자꾸만 윤기 쪽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확신하건데 민윤기는 그의 몇 곱절은 무겁게 들고 있을 터였다. 언젠가 민윤기의 사랑을 가볍게 본 죄로 입술이 죄다 뜯길 지도 모를 거라 생각하며 석진은 책상에 엎드렸다. 퉁퉁 부은 입술을 매만지며 창가를 바라봤다. 제 쪽을 돌아보지 않는 윤기를 보면 자꾸만 웃음이 났다.
선생님은 계속된 당부의 말씀을 하고 계셨다. 괴물을 조심해라. 가족 중에 누가 사라졌다면 문을 잠그고 누가와도 절대 문을 열지 말라. 말씀 도중 선생님의 폰이 울렸고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잠시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전화를 받았다.
" 예. 명호어머님. “
선생님이 교실 문을 열고 나가자 아이들은 이 침묵을 견디지 못했다. 아이들의 속삭이는 소리가 교실을 매웠다.
선생님은 복도 창가 앞에서 왼쪽으로 두 걸음 그다음엔 오른쪽으로 두 걸음. 가만히 서 계시질 못하고 걸음 옮기며 전화를 받으셨다. 명호의 어머니는 걱정되는 말투로, 명호가 학교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선생님은 아직 종례를 마치지 않았다며 명호의 부모님을 안심시켰다. 그러나 뭔지 모를 찝찝함이었다. 제자리에 서서 전화를 받지 못하는 이유와 같이. 선생님은 전화를 하는 내내 불안함을 버리지 못했다. 그도 그럴게 뭔가 이상했다.
체육복에서 나는 윤기의 냄새를 맡고 있을 때였다. 드르륵하고 교실 뒷문이 열렸다.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뒷문에 쏠렸다. 윤기의 냄새를 뚫고 썩은 내가 났다. 교실로 들어온 후 석진의 쪽으로 고개를 돌린 적이 없던 윤기가 석진을 쳐다봤다. 윤기의 눈이 크게 뜨였다. 석진은 엎드려 있던 상체를 일으켰다. 윤기야, 신기하지. 네 속눈썹이 하나하나 보인다니까.
흐화아-....
이상한 소리가 석진의 뒤에서 들려왔다. 입김을 뿜어대는 짐승소리 같기도, 앓는 소리 같기도 했다. 석진이 뒷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명호의 교복이 엉망이었다.
“ 명.... ”
명호를 불러봐야 대답을 할 것 같지 않았다. 비정상적으로 튀어나온 명호의 어깨 한 쪽이 들썩이더니 명호가 고개를 들었다. 명호의 턱 아래로 목이 반쯤 뜯겨 나가 붉은 근육조직들이 징그럽게 드러나 있었다. 그래 명호는 학교폭력을 당한 일도 없는데. 그래 집으로 가는 길보다 학교 찾아오는 길이 쉬웠나보다. 그래, 그랬나봐. 석진은 입술을 달싹이는 것조차 어떻게 하는 것이었더라.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아이들의 비명소리가 난무했고 명호의 얼굴에서 핏덩이가 덩어리 져 떨어졌다. 턱 한쪽이 다 흘러내리는 명호가 석진에게 다가오더니 크게 입을 벌렸다. 공포영화라 그러면 눈물부터 나는 쫄보에게 비명은 사치였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은 기적이었다. 그러니 석진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크아아아악-
어머니도 아버지도 형도 그 누구도 떠오르지 않는 검은 화면이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아픔이 느껴지지 않자 석진은 감았던 눈을 떴다. 아이들이 복도 밖으로 쏟아져 나간 후였다. 명호의 몸통만 덜렁 남아 목 줄기에서 피를 쏟아내고 있었다.
" ........ "
명호의 몸통 뒤로 윤기가 명호의 머리통을 안아들고 있었다. 사물함에 기대앉아 얼굴에 피 칠갑을 한 윤기는 넋이 나간 사람 같았다.
" 석지나... “
" ........ “
" 라이터.... 라이터 있거든... “
" ....... “
" 내 가방에 라이터.... “
" ........ “
" 석지나... 나.... “
" ...... “
" 라이터.... “
명호의 머리통을 잡고 있던 윤기의 한 쪽 팔이 늘어졌다. 왼쪽 어깨가 찢겨나가 어깨뼈를 드러낸 윤기는 석진이 처음 눈을 뜬 그 순간부터 울고 있었다. 석진이 뒷걸음질을 쳤다.
" 라이터...아니 석지나... 나 오붕만..아니 일분만... “
" ....... “
" 일분만... “
벌어지지도 않는 입으로, 다 뭉개져 가는 발음으로 윤기는 그렇게 빌었다.
" 일분만.....아니 삽십초만.... “
" ....... “
" 석지나.... “
석진은 더듬이는 걸음을 옮겼고 그대로 달렸다. 복도에는 선생님은 반장의 위에 올라타 내장을 긁어먹고 계셨고 1층에서는 아이들끼리 서로를, 또는 서로에게 먹고 먹히고 있었다. 빈자리로 남을 줄 알았던 아이들은 결석을 피하기 위해 학교로 돌아왔다. 학교 밖으로 나가려던 아이들은 제 반으로 찾아가려던 생명체 B들에게 뜯겨 먹히고 있었다. 찢기는 듯한 비명소리. 살려달라는 아우성. 배고픔의 울음소리. 석진은 복도를 빠져나와 운동장을 가로질렀다. 저도 모르는 새 눈물이 났다.
널 못 잊으면 어떡하지. 어떡하지 윤기야.
석진은 엉엉 울며 달리고 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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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
제 몸집에 족히 스무 배는 되어 보였다. 복도 통로를 가득 채운 크리쳐는 팔이 부를 만한 게 네 개, 두 다리라고 부를 만한 것은 끔찍한 근육을 죄다 드러낸 체였다. 머리 위로 또 머리가 자라고 머리에서 또 머리가 자란 것인지 핏줄이 불거진 살 더미들이 위로 쌓이고 쌓인 상체가 천장에 눌려 구겨졌다. 그 중에 가장 큰 살덩이가 쩌억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벌어진 살덩이 안으로 알 수 없는 장기들이 펄떡이고 있었다.
화아아아아아....
거기가 숨구멍이구나.
이 거대한 크리쳐와 마주친 순간에는 공포도, 두려움도, 불안함도 아무것도 느낄 수 가 없었다.
정말 그 어떤 실감도 나지 않아서. 여기 있는 것이 열아홉의 나인지. 아니면 기억을 잃은 나인지. 너인지. 생명체 B인지. 무엇인지.
흐화아아아아아.....
언제까지고 이렇게 서 있을 수는 없었다. 저를 기다려준 이 거대하고 엄청난 크리쳐에게 이제 제가 인사할 차례였다.
널 못 잊으면 어떡하지.
" 윤기야. "
투툭. 하고 살점이 찢기는 소리가 났다.
윤기는 내 말에 답하듯 아가리를 크게 벌려냈다. 마치 나를 집어삼킬 듯이.
나도 그래. 윤기야.
-fin